2016년 4월 14일
젊은이들에게 잘 하는 조언 중에 "네가 사랑하는 것, 열정을 바칠 수 있는 것을 찾아서 하라"는 말 있는데 그리 좋은 조언은 아니다. "네가 미치도록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해라"가 그리 좋지 않은 조언인 것과 마찬가지로 그렇다.
우리 중 대부분은 (모쏠분들 쏴리) 10대, 혹은 20대에 정말 좋아하지만 잘 맞지 않는 사람과 연애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미친 듯이 사랑하고 원하는 남자를 만났다고 하자. 이 남자와 있으면 일 분 일 초가 솜사탕이며 짜릿한 행복이라고 하자. 이 남자와 결혼할까? 모든 것을 다 올인 할까? 이런 사랑이 다시 올 리가 없는데 다 포기하고 확 질러버릴까?
정말 너무나 사랑하고 죽으라면 죽을 수 있는 남자이지만 -
몇 달에 한 번씩 술 취할 때마다 팬다면? 도박을 조금 좋아한다면?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이지만 돈이 안 될 때, 다른 이들보다 내 능력이 떨어질 때, 일 환경이 힘든 것이 그렇다.
어차피 행복이란 건 그 강도 보다는 총 시간 수로 승부 난다. 하루 24시간 중에 1분 죽도록 행복하고 나머지는 괴로워 미친 삶보다, 밥때 잘 챙겨 먹고 잘 자고 그럭저럭 수준에 맞게 할 일 있어 바쁘고 친구와 만나면서 70% 정도 계속 행복한 게 좋다. 나이 들수록 더 그렇다. 나에게 평소에 잘 해주지만 술 마시는 때리는 남자와 같이 살면, 안 맞는 시간은 룰루랄라 행복할까? 아니지. 언제 또 맞을까 눈치 보게 되지.
내가 즐기는 일을 하는 게 그렇다. 매달 근근이 살다가 일 년에 몇 번은 돈이 많이 모자라서 보릿고개라고 하자. 그럼 그때만 힘들까? 아니지. 이번 달도 돈이 모자라려나, 누구한테 빌려야 되나, 다음에도 이럴까, 계속 걱정하게 된다. 일상의 행복까지도 좀먹게 된다.
그렇게 안달하면서 일 년 일 년 보내보니까 내 목숨 바쳐도 괜찮을 듯하던 대단한 사랑도 죽더라. 내가 아무리 좋아하는 글쓰기라도 밖에 내놓았다가 온 동네 사람들에게 계란 세례 받고 비웃음당하면, 일 년에 몇 번만 그렇다 하더라도 매일 화면 대하기가 무서워지더라. 나보다 잘 하는 사람이 너무 많음에 절망하고, 나름 쌔빠지게 노력했는데 하늘이 내린 천재 같은 애들 옆에 서면 한없이 비참해지고, 그런 애들도 실패함에 더 절망하면서, 어릴 때의 순수한 기쁨도 같이 죽더라. 그렇게 그리고 싶었던 그림이고 하루 종일 그림만 그리면 행복할 것 같았으나 클라님의 횡포에 이건 진짜 아니다 싶은 시안 몇 번째로 다시 하다 보면, 이전에 포토샵 프로그램만 시작해도 설레었던 마음은 너덜너덜해진 거다.
Michael Sandel의 책 중에 What Money Can't Buy란 글을 얼마 전에 읽었다. 내가 누군가를 위해 맛있는 쿠키를 구웠다. 그걸 건네받은 친구가 "수고했어. 자, 만원 가져." 하면 어떨까? 순수하게 좋아해서 만들 때는 즐거웠는데, 거기에 가격을 붙이는 순간 나의 노력은 친구를 위한 마음에서 만 원짜리로 전락했다. 우리가 좋아하는 많은 것들이 그렇다. 돈을 더 받는다고 해서 풀리는 문제도 아니다. 그저 만들어서 같이 나누고 싶었던 마음과, 시장 경제로 평가해서 돈 받는 시스템은 심장의 정반대 쪽에 있다. 그냥 그릴 때는 좋았던 그림이, 팔려고 내놓으면 그것이 내 자존심, 내 가치, 내 노력의 객관적인 지표가 된다.
그래서 인생의 즐거움은 업으로 삼으면 안 된다고 하더라. 덕업일치하여 크게 성공하신 분들은...
어쩌다 보니 우연하게 만난 남자/여자가 출중한 스펙에 노후 보장 되셨으며 인격 훌륭하신 부모님에 나밖에 모르는 능력남/녀였다...라는 정도이니 우리 너무 부러워하지 맙시다. 내가 미친 듯이 사랑하는 단 하나를 찾다 보면, 인생의 그 많은 소소한 즐거움은 아직 퍼펙트 파트너를 만나지 못한 자들의 자기 합리화가 되거든요. 70, 80퍼센트로 행복해도 뭐 괜찮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