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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angpa Jun 12. 2018

내 가족의 노예

2017년 5월 22일

아래에 왜 흑인들의 범죄율이 높다는 말, 혹은 '이건 흑인들의 얘기다'를 강조했는지 묻는 분이 계셔서


얼마 전에 필리핀 출신의 기자가 쓴 '내 가족의 노예'란 글을 읽었다. 그 사람의 부모는 미국으로 이민 오면서 '가정부(domestic)'로 그 집에서 일하던 롤라를 데리고 왔다. 가정부라고 했지만 사실 노예였다. 어렸을 때 데리고 와서 돈 한 푼 받지 못하고, 자유를 박탈당하고 그 집에서 하녀로 살았던 것. 

롤라는 미국에 와서도 계속 그렇게 살았다. 아이 다섯을 다 키우고 집안일을 도맡아 하면서 50년이 넘게. 그 기자의 어머니는 의사 수련하느라 정신 없었고, 아버지의 직장 이전과 부모의 이혼, 재혼 등등 파란만장한 과정을 겪는 중에서 롤라는 늘 그 집의 구박덩이 노예였다. 자신의 방이 없어 거실 구석에서, 빨래 위에서 자곤 했다. 자세한 얘기는 링크 여기 (영어) [1].

이 가정에서 롤라만 빼면 칭찬받을만한 이민 가정이다. 어머니는 어려운 환경에서도 결국 의사가 되었고 아이 다섯도 잘 성장했다. 그렇지만 롤라가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남편이 완벽하게 내조했거나, 친정 어머니가 완벽 희생했거나 하지 않으면.  


이 이야기가 남아공과 연결되는 이유는, 보통 남아공의 '백인' 사회에서의 남녀 관계는 상당히 이상적으로 평등하기 때문이다. 흑인 사회는 망했다. 여혐은 말할 것 없고 성에 대한 인식 자체가 폭망이다. 이것을 겉으로만 보고 '역시 흑인들은 안 돼' '흑인들 도덕 개념 하고는' 어쩌고 헛소리할 수 있겠으나 이건 바로 '메갈이 저렇게 나대니 여혐이 생기지' 따위의 개소리에 필적한다. 

백인이 남아공에 도착한 시작부터 흑백 관계는 평등하지 않았다. 치안만 봐도 백인 지역은 치안이 훌륭했고 흑인 지역은 신경 1도 쓰지 않았다. (더 정확히 말하면 흑인 니네끼리 알아서 해란 식으로 떠넘겼다). 그러니 범죄율은 높았고 검거율은 낮은 상황이 최소 지난 백 년 지속된 것. 흑인들에게 주어진 일은 남자는 막노동, 여성은 메이드가 제일 흔했다. 자, 여기에서 이상할 정도로 평등한 백인들의 남녀 관계가 설명된다. 가사 노동과 육아를 전담할 메이드가 보통 있었다. 가사/육아 노동으로 부딪힐 일이 없는 거다(아, 또 꼭 따지자면 백인 남자는 다 군대에 갔고 흑인들은 안 갔다. 하지만 이걸 가지고 불공평하다, 흑인들은 왜 군대 안 가냐 하는 백인 남자는 당연히 없었다. 자신들이 찍어누르는 흑인 남자들에게 총을 쥐어주고 싶진 않았을 테니). 웬만한 백인 가정에는 그들만의 롤라가 있었다고 봐야겠다.


이렇게 '평화'와 '평등'이 조성된다. 몇백 년 전 서구 상류사회를 보면 평등은 아니더라도 여성에 대한 기사도 정신은 있었다. 물론 상류층 여성에게만 해당되었고, 이것은 노동자 계급의 노동 전담 역할이 컸다. 부엌에서 일 안 해도 되고 아이 안 봐도 되고 그 외 가사 노동이 제외된 상태에서 여성은 대접을 받을 수 있었던 것. 남아공 백인 가정에서도 가사와 육아 노동이 흑인들의 착취로 이뤄지면 여자는 마음 놓고 출근이 가능하고, 집에서 있더라도 가사에 짓눌리는 독박 육아의 압박은 없다. 그리고 여기에서 가사와 육아를 돌보는 흑인 메이드들은 보통 자식들을 몇백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조부모나 친척에게 맡기고 남의 집과 남의 자식을 돌보며 산다.

가족이 있다면, 아이가 있다면, 가사와 육아를 담당하는 누군가가 있다. 그 사람이 남편과 가사 분담 문제로 싸우는 아내든, 자식에 대한 사랑을 볼모로 잡혀있는 조부모든, 숨겨진 가족의 노예든, 사회 시스템에서 허락하는착취 노동이든 하여튼 누군가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담당해주는 덕에 그 노동에서 풀려난 사람은 사회에 나가서 일을 할 수도 있고 정치에 참여도 할 수 있고 성평등이 어쨌다 논할 수도 있다.


나를 포함한 많은 엄마들은 노동의 댓가를 돈으로 지불한다. 베이비시터, 방과후 케어, 청소담당, 내니 등등. 돈을 내고 존중해준다고 해서 꼭 문제 끝이냐 하면 그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식으로 가사와 육아는 저임금 노동 정도로 치부되고, 고학력/중산층/주류 여성이 집에서 아이를 보면 고귀하고 칭송받을만한 희생 봉사지만 저학력/빈곤층/이민자 여성이 집에서 아이를 보면 아이 싸지르며 세금 축낸다, 집에서 논다 소리 듣는다. [2] 페미니즘의 반쪽의 승리라고 해야 하나.


가사와 육아 노동 얘기 없이는 성평등을 논할 수 없다. 누군가가 그 노동을 떠맡아서 이루어진 평화나 평등은 의미가 없다. 그런 의미에서 남아공의 백인 사회의 의외로 이상적인 남녀 평등 역시 허구. 역사적으로 흑인들에 대한 철저한 착취로 이루어진 환상. 그리고 흑인 사회 내의 여혐과 여성상대 범죄 역시, 구조적인 방치와 착취가 어떻게 같은 나라 안에 사는 이들을 그렇게 다르게 갈라놓을 수 있는지 증명하는 사례라고 생각한다.




[1] 내 가족의 노예 (영어)

https://www.theatlantic.com/magazine/archive/2017/06/lolas-story/524490/


[2] 가사와 육아에 대한 시선 만화

https://i.pinimg.com/originals/b5/c1/bb/b5c1bbde8b1a7589a510cf339ec08ca5.jpg


(노파심에 더하자면 남아공 백인 사회의 남녀 관계가 완벽하게 동등하다 이런 건 절대 아니고, 못 사는 나라고 주위에 여혐/ 불평등이 엄청난 것을 고려할 때 의외로 여성에 대한 편견이 적고 성범죄 등에 대해서는 서구와 비슷한 태도를 보인다는 것. 여성의 사회 진출도 활발한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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