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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angpa Jun 14. 2018

어떤 남자와 결혼해야 할까

2017년 8월 17일

고민 상담이 있었다. 


괜찮은 남자기는 한데 확실한 직장이 아니라서 고민입니다. 어른들은 남자가 못 벌면 자격지심 생겨서 문제라는데 어떻게 할까요.     


가부장제도의 사회에서 위너들은 소수다. 마음대로 여성을 선택할 수 있는 소수의 능력/권력 남성이 있고, 그중에서 인성까지 좋으며 자신이 선택한 여성에게 최선을 다하는 정말 극소수의 남자가 있(..을 걸?). 그리고 그들에게 선택받은 운 좋은 여자들이 이 시스템의 승리자들이다. 그다음 승리자는 '돈은 많이 벌지 못하더라도 충분히 먹고 살 만큼 벌며, 자신의 부인과 가족에게 최선을 다하는 자상한 남자'가 있다. 이들도 사실 소수에 속한다. 이들에게 선택받은 소수의 운 좋은 여자들 역시 시스템의 승리자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특히 살기 힘든 사회에서는 병으로 가장의 노동력을 잃거나, 아이들이 아프거나, 그 외 천재지변을 견뎌낼 부가 없으면 쉽게 망하기도 한다.     


남자와 여자 모두가 행복한 이 소수의 시나리오는 거의 예외에 해당하니 차치하고, 가부장제도의 대다수는 '마음대로 여성을 선택할 수는 없는 보통의 남자들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선택 한도 내에서 제일 괜찮은 한 명의 여성을 차지하고, 그녀를 적당히 (착취하면서..라고 하지만 그냥 '살림시키고'라고 하자) 후사를 남기며, 능력이 되면 바람도 슬슬 피우는 것'이 남자 입장에서 최고 시나리오 되겠다. 살다가 병 등으로 노동력을 잃거나 하면, 여성을 맞벌이로 내몰아서 집안일 플러스 맞벌이로 악랄하게 착취하기도 한다. 

인류 역사상 이 모델이 제일 흔했다. 한국도 뭐 남편님은 책 읽느라 고상하게 앉아계시고 부인은 육아 살림 바느질로 돈벌이까지 다 하던 거 생각하면 뭐 ;ㅁ;     

그러므로 가부장제도 내의 여성에게 최고의 루트는 (뭐 말 안 해도 당연하지만) 엄청난 미모로 능력 있고 인성 좋은 남자에게 선택받음 되겠다. 하지만 말했듯이 이건 극소수의 여성에게 해당되고, 예쁘다고 해서 꼭 이 루트를 타는 것도 아니다. 


그다음 루트는 '가족을 먹여 살릴 정도의 성실하고 자상한 남자'가 되겠다. 재혼의 옵션은 초혼보다 훨씬 더 초라하고, 인생 딱 한 번 있는 선택으로 여생이 결정되다 보니까 결혼은 가볍게 결정할 일이 아니다. 그러니 여성들은 '적당히 괜찮은 남자' 선별법에 골머리를 앓는다.     


남자 입장에서 보자. 말했듯이 슈퍼 능력남은 극소수이고 대부분은 말 그대로 평균적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이들에게 사치란 -> 

1) 내 능력으로 허락된 선택의 폭을 어떻게든 넓히는 것 

2) 그녀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것 

3) 다른 남자를 선택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 

4) 후사를 남기는 것 

5) 바람도 슬슬 피우는 것... 

정도 되겠는데 이걸 보면 왜 페미니즘에 그렇게 거품 물고 반대하는지 이해가 간다. 


페미니즘은 

1) 남자 네가 나를 선택하는 게 아니라 나도 의사가 있다. 네 학벌이나 능력이 어쨌든 간에 너를 거절할 수 있다 

2) 너도 같은 집에 사는데 좀 같이 가사 육아하자 

3) 내가 원한다면 난 이혼할 수 있다. 다른 남자 선택할 수 있다. 남자 너도 바람피우면서 나보고 바람피운다고 ㅈㄹ하지 마라 

4) 애 낳기 싫으면 안 낳을 거다. 피임할 거다. 너한테 안 묶일 거다 

5) 바람피우면 이혼할 거다. 아, 나도 바람피울 수 있다는 식으로 그들이 누리던 것을 싹 다 뺏어가겠다는 협박이다 보니 펄펄 뛸 수밖에.     


아, 이 사람들에게 더 좋은 시나리오도 있구나. 원래는 슈퍼 리치 능력남한테 갈만한 미모의 여성인데 이상하게 자기가 이쁜 걸 모르고 보통남자인 자신에게 현모양처로 와서 사는 것. 그러니 이들 입장에서는 후려치기도 시전해 볼 만하다. 너 사실 그렇게 안 이쁘고, 너 원하는 남자 없어라는 이론을 납득만 시키면 엄청난 이득인데, 먹히나 안 먹히나 한 번 도전해보는 거. 이건 노력 없이 선택폭이 확 늘어나는 셈이니 그야말로 로또.     


이렇게 말하면 남자만 나쁜 놈 같아 보이는데, 어느 시스템에서나 인간은 자신에게 최대 이익이 무언가를 찾는다. 여자도 마찬가지다. 이 시스템에서 여성이 이기는 방법은 '예뻐지는 것'. 그리고 최대한 괜찮은 남자를 고르는 것. 이 시장에서 여자는 최대한 꾸며서 확실하게 능력/권력이 있는 남자를 선택하고, 아니면 능력/권력이 있어 보이는/앞으로 생길 것 같은 남자를 선택한다.     

이걸 가지고 '여자는 생물학적으로... 세계 어딜 가나 남자 능력을 보는 속물...' 어쩌고 헛소리하는 사람들 있는데, 본인은 사회에서 좋은 직장이라는 곳에서 일 할 수 없고, 인생 단 한 번 초이스로 나를 먹여 살릴 사람이 정해진다고 생각해보자. 아니면 간단하게, 회사 한 번 찍으면 거기가 평생직장이라고 하면, 진짜 그 회사가 망할지 안 망할지 확인 안 할 건가? '잘해줄게' 사장 한 마디 믿고 평생 고용계약서 쓸 건가?     


본론으로 돌아와서. 우리는 거의 다 평균이니까, 평균 여자로서 슈퍼 능력남을 빼고 남은 남자 풀을 보자. 두 가지를 볼 수가 있다. 경제적인 능력, 혹은 나를 향한 애정 (아니면 인성). 간단히 말해서 이 험한 여혐 사회에서 나와 내 새끼들을 먹여 살릴 수 있을 건지, 나를 버릴 건지를 가늠해야 한다. 여기에서 어른들의 현명한 조언이 나온다. "마음 있으면 지갑이 열린다" "돈 못 벌면 남자 자격지심에 더 난리다". 

결론은 정말 돈이 있거나, 돈이 없다면 자기가 쓸 수 있을 만큼 많이 쓸 정도로 널 좋아하면 나중에 버림받고 학대 당할 확률이 낮다...라는 아주 단순한 결론. 맞는 말이다. 돈으로 남자의 가치를 평가하는 사회에서 못 버는 남자는 자격지심에 시달릴 가능성이 높다도 맞다. 자존감이 낮은 이는 분노나 원망감이 많을 수 있고, 주위 사람들에게 보통 퍼붓는다. 어차피 사람 인성은 알기 힘들고, 경제적으로 힘들면 성격 더러워짐을 감안할 때, 잘 버는 남자를 선택하는 쪽이 훨씬 낫다.     

바로 이래서 페미니즘으로 남자도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말이 나온다. 여자를 일 못 하게 하고, 결혼에 인생을 걸게 하고, 그 위험 때문에 잘 버는 남자만 선택하려고 하고, 남자를 그저 수입으로만 판단하게 하는 것이 가부장제도다. 여자가 편하게 일 할 수 있으면 남자의 부양의 의무가 줄어든다. 가난하더라도 인성이 훌륭한 남자와 결혼할 때 위험 부담이 훨씬 낮아진다. 남편이 직장에서 짤리면 부인인 나는 굶어 죽는 거 아닌가 하는 걱정도 줄어든다. 여성의 선택이 훨씬 쉬워진다. 그들이 그렇게 싫어하는 '김치녀'들이 점차 없어진다.     


그러나 페미니즘이 '아냐 니네한테도 좋아'라고 약 팔아 봐야, 가부장제도에 익숙해진 남자들은 의심이 가득하다. 지금 시스템에서는 자신만 돈을 잘 벌면 된다. 그러면 마음대로 여자를 선택할 수 있고, 자신이 선택한 여자는 쉽게 떠나지 못한다. 지가 나가서 벌어봐야 얼마 벌 건데. 아이 낳으면 완전히 발목 잡힌다. 애까지 낳은 이혼녀를 사회에서 충분히 멸시해주니까 쉽게 오간다. 남자인 내가 이혼하고 싶지 않은 이상은. 이들에게 페미니즘이 말하는 세상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여자를 사귀는 게 더 까다로워지고, 하지만 내가 남자로서 해야 하는 건 그대로 다 해야 할 거 같고, 그런 그녀는 자신을 쉽게 떠날 수 있고, 다른 남자와 쉽게 잘 수 있고, 낙태도 쉽게 하고, 발언권과 선택이 점점 더 커지는 게 싫다.     

그러므로 그들은 페미니즘 욕하기로 돌아간다. "예전 같으면 남자 성욕 채우는 노리개일 것들이 권리 좀 생겼다고 빽빽" (실제로 며칠 전 달렸던 댓글) 등의 말이 그래서 나온다. 내가 돈 벌어서 여자를 마음대로 선택하는 게 불가능하면, 여성을 후려치고 깎아내려서 나를 선택하게 압박하려 한다. 돈만 밝히는 여자들을 욕하고, 나를 선택하지 않는 여성을 욕한다. 그게 자신에게 제일 유리한 선택이니까.  

   

자, 그럼 진짜 정말 본론으로 돌아가서. 어떤 남자를 선택할까. 가부장제도가 아직 펄펄 기운 넘치고 여혐력 넘치는 한국 사회에서 여자의 최선의 선택은 아직까지도 위에서도 말했듯이 능력+좋은 인성남. 이게 불가능하면 '내 여자 먹여 살린다' 마초남 혹은 '돈은 없어도 내 가족에 충성 다한다'라는 자상남. 마지막으로 아주 가끔 눈에 띄는 '여성 존중 개념남'. 그런데 판단하기 쉽지 않다면, 그리고 최소한 여자 혼자 밥 벌어 먹고사는 게 가능하다면 혼자 사는 쪽이 이득인데, 이걸 알아차린 한국 정부가 '혼자 잘 벌어서 잘 먹고 사는 싱글 여성들을 후려쳐라' 캠페인 중이라 글쎄.    

 

결론: 

남자 능력 보는 게 싫다면, 안 봐도 되도록 좀 협조 좀 해주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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