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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angpa Dec 31. 2017

'나는 프로그래머다' 인터뷰 이후

2016년 7월 31일

얼마 전에 나는 프로그래머다라는 팟캐스트에서 인터뷰를 했다. 그 후에 본 감상 중에: "아이 뭐야. 초딩 때 남아공으로 이 민가서 영어가 더 편한 사람이네. 아 짜증이야. 나 같은 말 못하는 어버버 외노자와는 출발선이 다르잖아." 완전 샘남.


자. 나 역시 영국에 외노자로 왔다는 건 차치하고.

나는 남아공에서 거의 20년을 살았다. 유색인종으로, 여자로, 인종차별로 전 세계에 명성을 떨친 남아공에서 학교를 마치고, 공대 1년 다니다가 취업하고, 대학교 중퇴하다시피 하고, 계속 일을 했다. 그러니까 내 커리어의 첫 10년은 - 고졸, 유부녀 (결혼을 23살에 했음), 유색인종, 여자...로 한 거다.

영국오기 전에 학사는 마쳤다. 무려 전공이 정외과. 영국에서는 듣보잡인 아프리카 잡대에서 마친 전공. 그리고 유부녀, 생긴 건 아시아계인데 아프리카 출신 외노자.

뭐, 네. 영어는 잘 해요. I got THAT going for me, which is nice.

남아공에서는 한국에서 넘쳐나는 정부 지원 코딩 학원도 없고, 인터넷 속도는... 음. 말하지 말자. 브렉시트 이전에 날 제일 열 받게 할 수 있는 토픽이 남아공 인터넷 상황이었다고만 하고 넘어가자.

영국에 와서 이민법이 바뀌고 석사 필요하고 머 어쩌고 해서 석사 시작한 거고, 옥스퍼드에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 석사를 몇 년 전에 마쳤다. 그러니까 내 커리어 10+ 년은 학벌 버프 없이 쌓은 거고, 솔직히 말해서 IT에서 학벌, 특히 석사 어디에서 했다 이런 건 진짜 별 소용없다. 면접까지 가는 데만 좀 도움 된다.

기술적으로 정치적으로 후진 남아공에서 20년을 유색인종 여자로 썩고, 거기에서 고졸 유부녀로 IT 경력 쌓아서, 영국에 아프리카 학사를 가진 아프리카 외노자로 와서, 역시 유색인종 외노자 여자로 취업해서, 일하면서 석사 마치고 애 낳고 지금까지 온 게 -

이래도 자신과 출발지점이 다르니까 (영어 할 줄 알잖아!!) 내가 이룬 건 별거 아니다라고 생각하시는데.

나도 사실 동의한다. 그리 어렵지 않았다.


1. 언어


우선, 한국어-> 영어는 정말 진짜 어렵다. 언어 진짜 잡다하게 많이 공부해 본 사람으로서 하는 말이다. 이 장벽 넘기가 쉽지 않고, 말만 통하는 게 아니라 영어권 정서와 문화 이해하는 게, 기술직이라도 필요하다. 동료들이랑 사적인 얘기 안 할 건가? 농담 안 할 건가?

영어가 가능하다는 것, 그 동네 사람들의 정서를 이해하고 편하게 지낼 수 있다는 것, 정말 큰 이점이다.


2. 노동 분위기


나 그렇게 부지런한 사람 아니다. 그렇지만 커리어 17년 동안 회사 다니면서 늘 따로 공부하는 게 가능했다. 난 학사 석사 다 파트 타임으로 마쳤다. 중간 중간에 IT 관련 온라인 코스 듣고 하는 것도 다 일하면서 했다. 참 많은 회사들을 거쳤지만, 그 모든 회사들이 그게 가능할 정도로만 일을 시켰다. 지금도 난 하루 아홉 시간 근무 딱 지키고 주말이 완전히 비니까 이렇게 글 쓰고 책 읽고 앉았지, 매일 야근시키고 주말 없고 하면 학사 석사 끝내는 건 택도 없었다.

아, 그리고 임신하고 아이 둘 낳고 또 그 아이들 키우는 동안 직장에서 그 어떤 차별도 겪지 않았다는 점도 추가.


3. 입시


이거 좀 엉뚱한 얘긴데, 난 고등학교 1년을 두 번 했다. 외국 나오면서 보통은 한 학년 꿇기 마련인데 난 그냥 바로 들어갔거든. 마침 아프리칸스도 제 1외국어로 해야 한다 해서, 부모님한테 난 1년 번 셈이니 아프리칸스 고등학교 기숙사에 들어가서 고등학교 1학년 내용 다시 하겠다고 하고 갔다. 6개월 하고 나서 음 별로 효과가 없군, 해서 나온 다음 집에 있으면서 내가 과외 선생님 부르고 내가 교과과정 혼자 공부했다. 그때 라틴어도 배우고, 별 희한한 책도 다 읽고, 뭐 그러다가 다시 영어 학교로 들어가서 고2 고3 마쳤다. 그동안에도 내가 하고 싶은 공부 하고 읽고 싶은 책 다 읽었다. 한국에 있었더라면 과연 가능했을까 하는 생각 많이 한다. 난 내가 싫은 공부는 정말 못하거든. 끈기도 없고.

외국 남자 개발자들 보면 대학 가기 전에 이미 5~8년 개발 경험이 있는 애들이 많은데, 한국에서는 입시에 신경을 썼다면 그냥 불가능한 얘기다.


4. 여자로 공대가기. 남초 직장


내가 과연 한국에서 공대에 갔을지, 개발자로 일했을지는 잘 모르겠으나, 공대에 가고 남초직장에서 일했다면 내가 겪은 환경과는 아주 달랐을 거라고 확신한다. 길게 말 하지 않겠다.


자. 똑같은 말 몇 번 반복한 것 같지만 다시 정리해보자.

한국에서 영어 못하는 개발자로 일하면서 해외에 나가려는 상황은, 무려 후지고도 후진 아프리카에서 인종차별 받으며 자란 유색인종 여자가, 있는 건 영어 할 줄 아는 것밖에 없고 그나마 고졸에 일찍 시집가서 취업하려는 여자가 개발자로 경력 쌓으면서 공부하려는 것보다.... 힘들다. 두 번째 케이스 스터디인 내가 보증한다. 그만큼 한국인에게는 영어가 어렵고, 한국 노동시장이 후지고, 여자로 살기 힘들고, 입시 준비 드럽고, 대입을 실패하거나 첫 취업 잘못하면 돌이키기가 힘들다. 아프리카보다 훨씬 잘 사는 나라인 한국이지만, 개개인에게는 절대로 쉬운 나라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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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른 글에 썼던 내용 더하자면 -

나도 이기적인 사람이니까 내가 월급 50만 원짜리 고졸 유부녀에서 지금까지 온 건 내가 잘났기 때문이고 내가 노오오오력을 이빠이 해서라고 말 하고 싶은 충동 있다. 그랬다면 내 글의 톤은 많이 달라졌을 거다. 그리고 아무런 의미가 없었을 거다. 상대방을 이해 못 하고, 하려는 마음도 없고, 자신이 운 좋았던 상황을 이해 못 하고, 이래저래 도움을 준 사회의 세팅과 특혜를 무시하고 개인의 성공으로만 쓴다면, 그 정도로 자기애 필터가 강한 사람의 메시지는 단 하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나나나난나난난나난ㄴㄴ나나나나나나나나나나나나나~~~ 오마이갓 아임 퐌타스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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