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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angpa Jun 15. 2018

개발자들의 소풍

2017년 9월 30일

개발자들을 데리고 노는 것은 참 힘들다. 집돌이 집순이들이 워낙 많고, 단체의식도 희미한데다가 눈치 빠르게 윗사람 말 따라 으쌰으쌰도 없기 때문이다. 보스가 "가자!" 하는데도 별생각 없이 "난 별로" 하는 애가 반이 넘는다. 억지로 끌고 가서도 어 재미없네 그냥 집에서 놀래 하고 가는 애들이 쏙쏙 나온다. 개발자들 리드하는 걸 고양이들 다루기와 비슷하다 하는데 진짜 그렇다. 냥이 일개 소대 모아놓고 "냥이 여러분 소풍 어디로 갈까요? 집사가 모시겠습니다!" 했을 때의 뚱한 표정과 비협조를 상상하면 뭐 대강.     


어쨌든. 놀이공원 소풍 가기로 결정됐다 했을 때 양파 역시 '아 난 그런덴 별로' 라고 하고 피하려고 했다. 그런데 우리 팀의 보살 뫄뫄가 "양파 너 곧 미국으로 가면 팀원들이랑 이렇게 놀 기회도 별로 없을 텐데..쩜쩜쩜.. 그래도 볼 수 있을 때 쩜쩜쩜.."     

...하는 바람에;; 이눔! 감히 죄책감 유발 신공을 쓰다니.     


살다 보면 똑똑하고 일 잘하고 개발도 잘하는데 사람들 관리도 잘하고 인간성까지 좋은 그런 인간 말종을 만날 때가 있다. 그리고는 난 같은 인간인데 왜 이런 슈레기지 자학하게 되는데 있는데 뫄뫄가 그렇다. 유알어 보살. 직장에서 꽤 먼 놀이공원에 무려 과반수를 출동시키다니, 유알어 리얼 보살. 게다가 어디어디 모이라고 공지하고 전화해서 오는지 확인하고 오기 싫은 애도 살살 구스르고 새로 온 신입도 안 어색하게 잘 챙겨주고. 보살보살.     

나 봐. 딴 사람들이 위화감 느낄까 봐 살도 적당히 찌고 얼굴도 적당히 평범하고 인성도 적당히 더럽... 아 그만하자.     


어쨌든.     


소풍에서의 이야기 


#1     


리드: "야! 이거 타러 가자! (엄청 무서운 롤러코스터)"

개발1: "저는 용감하게 빠지겠습니다."

개발2: "저도 무서워서..."

개발3: "이런 거 말고 좀 쉬운 거 없나요?"

양파: "이것들이! 입장료가 얼만지 알아!! 우리를 위해서 입장료를 내주신 주주들을 생각해봐! 최고 비싸고 좋은 걸로 다 세 번씩 타고 와!"

개발2: "양파 너부터."

양파: "아 난 겁이 많아서..."     


#2  

   

개발: "내 여친이 스타트렉 별 관심 없었는데, 매일매일 십 분씩 보여줬어. 그 이상 더 보여주면 잠들어서, 맨날 잠들기 전까지 보던 곳에서 틀어줬지!! 한 달 만에 여친도 팬이 됐어!"     

뭔가 끔찍하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고.     


#3     


우리 팀에서 옷 젤 잘 입는 남자 둘은.... 당연하지만 이태리 남자들이다! 그중 한 명이 어제 왔는데, 핏이 괜찮은 청바지에 셔츠에 가죽 잠바다. 게다가 선글라스를 꺼내는데 휴고 보스!?     

양파: "너 개발자 치고 좀 패셔너블하다? 디자이너였어? PM이었어?"

개발: "나 이태리 기준으로 옷 진짜 못 입는 거야. 내 셔츠 봐."     

납득했다. 그의 셔츠는 체크무늬였다. 핏이 나쁘지 않긴 하지만, 역시 공대생 셔츠는 체크.     



     

뭐 그렇게, 가기 싫었지만 다행히 잘 놀고 왔다는 얘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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