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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angpa Dec 31. 2017

아프리카에도 샴페인 바가 있다. 한국에 빈민촌이 있듯이

 얼마 전에 가난에 대한 글을 올렸다. 양파 니가 가난을 어찌 안다고 가난한 사람들을 이렇게 기만하냐 류의 댓글을 몇 개 봤다. 내가 이 사람들을 알지 못하니까 이 사람들도 나를 잘 알지 못한다고 가정하고, 필진 소개인 '런던 IT 인' 정도로 나를 판단한다고 가정하겠다. 


 난 아프리카에서 거의 20년 살았다. 거기에서 찢어지게 못 살았냐 하면, 부모님이 사업으로 쫄딱 망한 몇 년도 (부모님이 친지들에게 돈을 빌려와서) 사실 백인 지역 집에서 잘 버텼고, 학교에는 사정해서 장학금 처리로 잘 다녔고, 밥 굶을 일 없었다. 좀 서러울 때가 아예 없었다면 거짓말인데 내가 워낙 무던하고 둔한 성격이라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갔다. 


 내가 남아공 떠나기 전에 우리 집에서 일하던 아줌마는 (그렇다! 나는 서른까지 집안 청소, 설거지 거의 안 하고 자란 공주다!) 우리 집에서 일하면서 새로 집을 샀다며 좋아했다. 무려 자기가 처음으로 '수도'가 달린 집에서 살 수 있게 되었다고 했었다. 아, 정말 멍하더라. 아프리카 살면서 찢어지는 가난은 어느 정도 안다고 자만했었는데 그건 생각도 못했다. 


 역대급 또라이 무가베가 집권하는 짐바브웨의 학교 선생님들은, 몇 년 전에 들은 얘기로 한달에 2달러를 받는다. 그걸로 생활이 가능하냐면 당연히 아니지. 그렇다면 어떻게 살림을 꾸리는가? 학교에서 선생님으로 일하면 남아공으로 여행하는게 훨씬 쉬워진다. 그래서 학교 선생님들은 돌아가면서 남아공에 일하러 간다. 남아있는 선생님들이 출장(?) 간 선생님들의 가족을 건사하고, 출장간 선생님들은 거리에서 자고 먹을 것을 최대한 아끼면서 무슨 잡다한 일이라도 하여 돈을 모아 다시 돌아간다. 짐바브웨에서 남아공까지 오는데에 여자들은 거의 다 강간을 경험한다고 보면 되고, 남녀 가릴 것 없이 강도를 당한다. 


 이 한 문단을 얼마나 흥미롭게 읽었는지 모르겠으나, 보통 사람들은 모르는 나라 나오면 거기부터 신경 끈다. 보통 인간은 “내 기분을 낫게 하기 위한 가난 포르노”, 그러니까 나보다 못한 사람을 보면서 와! 난 그래도 낫지 않나? 역시 난 고등학교때 공부 열심히 해서 안 가난해 하는 식이 아니라면 가난에 별로 관심 없다. 가난한 나라에 살면서 어쩔 수 없이 일상적으로 가난을 접해야 하는 사람의 경우에도 점점 무신경해지고, 어쨌든 내 손의 가시가 더 아프다. 고등학생인 나도 내가 미국으로 유학 못 가는 집안의 현실이 훨씬 답답했지, 현실적으로는 훨씬 더 심각한 남아공의 빈부 격차에는 그리 분노하지 않았다. 아프리카 정치와 역사를 공부해도 그랬다. 


 사람의 뇌는 분류 기계다. 수없이 쏟아져 들어오는 시그널을 어떻게 빨리 분류하고 쓸데 없는 건 갖다 버리기를 계속적으로 배운다. 그러면서 이기적인 필터링이 점점 강해진다. 내 일이 제일 힘들고 내가 제일 고생한다. 나와 관계없는 일은 드라마틱하게 재미 없지 않는 이상 필터된다. 요즘 처럼 살기 힘들 때엔 그게 당연하기도 하다. 하지만. 


 사유는 가능하잖아. 거리에서 구걸하는 사람은 왜 그 자리에 앉게 됐을까. 이 사람은 저녁에 뭘 할까. 심심할 때 뭐 할까. 나랑 똑같이 눈코입 달린 사람이고, 어렸을 때는 내가 내 새끼 이뻐하는 것처럼 부모님이 이쁘게 키웠을 텐데 언제부터 일이 꼬였을까. 사실 나도 부모님을 믿고 돈 빌려줄 사람 없었으면 거리 나앉았을 수도 있지. 미국에서도 중산층이었다가 병에 걸리고 집 잃고 홈리스로 전락하는 이들 많은데, 거리에 나앉는 순간부터 예상 수명이 확 줄어든다. 그런 생각 하지 않나? 


 시리아는 2000년대만 하더라도 비민주적이진 않아도 콘크리트급으로 안정적이랬다가 급작스레 무너진 케이스다. 지구온난화 현상으로 가뭄이 심하고 온도가 올라가니 작물이 다 망해서, 이전에는 잘 살던 농부들이 난민이 되어 도시로 몰려들고, 실업률이 올라가고, 뭐 그러다가 정치적인 불안으로 이어졌다고 어디서 짧게 읽은 기억이 난다. 나야 뭐 그냥 기사 읽고 지나갔지만, 그게 한국의 농민이라고 생각해보자. 농부들의 70% 가 망해서 서울로 올라왔다면. 이전에는 그럭저럭 잘 살던 중산층 농민이 아이들까지 다 안고 메고 서울의 거리를 헤맨다면. 


 그래봤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시리아 난민 모금에 얼마 돈 기부하고 “그래도 뭔가 했다”는 식으로 자기 위안 삼는 것 뿐이지만, 그래도 그에 대해서 생각은 할 수 있잖소. 물론 내가 사는게 제일 걱정되고 제일 급하다 해도 생각도 못하는 건 아니잖소. 다 같은 사람인데. 


 그 글에서 “가난한 이에게 근성이 없다”고 한 말은, 사실 선진국들이 아프리카 국가들에게 자주 하는 말이다. 빅토리아 시대때 영국인들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한 말이기도 하고, 지금 현재 미국과 한국에서도 나오는 말이다. 구조적인 착취, 거기까지 오게 된 역사, 그 역사에 기여한 자기 잘못은 나 몰라라 하고 그냥 ‘네가 그따위니까 그런 거야’로 돌려버린다. 그러면 쉽다. 내 잘못도 아니고, 가난한 건 그 사람이 불성실하다는 증거다. 게다가 그 논리로는 내가 안 가난한 건 내가 성실하고 잘났다는 증거다. 이렇게 일석 다조의 기쁨을 주는 논리다. 나한테만. 


 나도 이기적인 사람이니까 내가 월급 50만원짜리 고졸 유부녀에서 지금까지 온 건 내가 잘났기 때문이고 내가 노오오오력을 이빠이 해서라고 말 하고 싶은 충동 있다. 그랬다면 내 글의 톤은 많이 달라졌을 거다. 그리고 아무런 의미가 없었을 거다. 상대방을 이해 못하고, 하려는 마음도 없고, 자신이 운 좋았던 상황을 이해 못하고, 이래저래 도움을 준 사회의 세팅과 특혜를 무시하고 개인의 성공으로만 쓴다면, 그 정도로 자기애 필터가 강한 사람의 메시지는 단 하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나나나난나난난나난ㄴㄴ나나나나나나나나나나나나나~~~ 오마이갓 아임 퐌타스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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