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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SJ May 09. 2022

16-7. 남미여행의 마침표

[아바나]



쿠바에 왔으면 시가는 사야지


쿠바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게 바로 시가 아니겠는가! 비흡연자인 나도 피워보고 싶게 만드는 마성의 매력.. 어디에서 시가를 사면 좋을지 호스트에게 추천받기로 했다. 호스트 아주머니는 고급 호텔 내 입점해 있는 시가 판매점에서 구매하는 편이 안전하고, 품질도 가장 믿을 만하다고 알려주셨다. 아침식사를 마친 우리는 곧장 El Floridita 근처에 있는 호텔로 향했다. 우리가 지나온 아바나 거리와는 다르게 이곳은 백화점이나 복합브랜드몰처럼 보였는데, 현대적이고 세련된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공산권 국가에서 맛 볼 수 있는, 달콤한 자본주의의 맛이라고나 할까..? 가볍게 주변을 둘러보다가 거대한 기둥 사이로 고급스러운 시가 판매점을 발견했다.



오늘도 푸짐한 조식



호스트가 왜 이곳을 추천했는지 단번에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매장의 위치와 외관, 직원의 복장, 진열된 시가들과 인테리어까지.. 모든 것들이 시너지로 작용해서 우리의 머릿속에 안전한 거래를 할 수 있다는 신뢰감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이곳에는 영화에서만 보던 멋진 시가들이 브랜드별로 진열되어 있었다. 좋아 보이는 시가는 역시나 가격대가 비쌌다. 수중에 있는 돈을 모두 털어야 시가 한 대를 겨우 살 수 있을 만큼 비싼 녀석도 있었다. 다행히 저가브랜드 시가도 있어서 한시름 놓았다. 가장 저렴한 시가의 경우 시가 한 대에 한화로 대략 5~6천원 정도의 가격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시가를 구매하려면 한 대에 대략 1만원대 후반의 가격대에 형성되어 있으니 이와 비교한다면, 쿠바의 시가는 매우 저렴한 편이긴 했다. 물론 여기까지 오는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는 건 비밀.. 시가 구경을 충분히 하고 각자 세워둔 계획에 맞게 시가를 구매했다.

시가에 대한 짤막한 소감을 풀어보자면 이러하다. 훈연향이 진하게 풍겨온다. 담배 냄새라면 질색하는 나도 시가향은 마음에 쏙 들었다. 시가에 코를 대고 향을 스윽 맡아보면 장작처럼 두툼한 나무를 은은하게 불에 구운 다음 부드러운 바닐라 향을 첨가한 것처럼 좋은 향이 올라온다. 시가를 피우기 전에는 일반 담배처럼 칼칼하고, 독성이 강할 거라고 예상했지만, 실제로는 전혀 달랐다. 앞서 설명한대로 부드럽고 은은한 훈연향이 입안에 사-악 맴돌고, 달짝지근한 바닐라의 잔향이 혀 끝에 오래도록 남아 있다. 무엇보다도 인상적인 부분은 시가를 한모금 빨아들인 후 내뱉으면 연기가 상당히 많이 나온다는 점이다.

시가는 일반 담배와는 다르게 빠른 속도로 태우는 게 아니라 천천히 향을 음미해야 한다고 들었다. 그래서 시가를 빨아서 연기를 흡입하는 게 아니라 시가를 불을 붙인 채로 입에 물고 있으면서 잔잔하게 올라오는 향을 즐기는 게 올바른 시가 사용법이라고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다. 두 방법 모두 해보니 각자의 장점이 있었고, 시가를 피워 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본인에게 맞는 방법대로 하면 될 듯 하다. 사실, 방법이 어떠하든 시가를 피울 수만 있다면 그것만으로 좋다.

시가를 구매하고 나니 호스트의 추천을 받아 이곳으로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골목길 암상인에게 갔더라면 운좋게 저렴한 가격에 시가를 샀을 수도 있었겠다. 허나 품질 검증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 비싼 돈을 주고 쓰레기를 살 위험이 매우 높다. 게다가 뜨내기 관광객들을 등쳐 먹으려는 사기꾼들이 판을 치는 아바나 바닥에서 시가 하나 싸게 사려다가 자칫 신변에 위협적인 일이 생길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우리는 워낙 안전지향적인 여행을 추구해온 터라 다행히도 그러한 상황에 처해본 적은 없었고, 앞서 말한 내용은 과잉 걱정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호텔에 있는 시가 판매점에서 구매하고 보니, 조금 돈을 더 지불하더라도 시가는 꼭 검증된 곳에서 사는 편이 여러모로 좋았다. 대체로 가격이 높을수록 값어치에 맞는 품질을 보장받을 수 있긴 하다. 이번 여행에서 얻은 교훈 중 하나다.



쿠바에서 모셔온 시가



시가를 구매하고 돌아오는 길에 길거리 기념품 가게에 들러 시가 커터를 구매했다. 나무 재질로 만든 시가 커터를 샀는데, 저렴한 가격대에 맞는 성능이었다. 시가 쇼핑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 짐을 챙기고 밖으로 나왔다. 공항까지 가기 위해 호스트에게 부탁해 택시를 예약하려는데 뜻밖의 난관에 봉착했다. 바로 영어를 전혀 할 줄 모르는 호스트에게 “공항까지 가는 택시를 구하고 싶습니다.” 를 전달해야 했다. 남미여행을 떠나기 전 단기간에 스페인어 학원에서 공부한 K를 필두로 모든 인원이 다함께 짤막한 단어와 바디랭귀지를 써가며 설명했다. 마치 가족오락관의 퀴즈 코너를 보는 듯 했다. ‘너희들 대체 뭐하니?’ 호스트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웃고 있었다. 여러 차례 반복하여 설명하니 차츰 이해하는 듯 보였다. 다행히 호스트는 우리가 원하는 내용을 파악했고, 어디론가 전화를 하더니 택시를 불러주었다고 말했다. 만약 호스트가 끝까지 알아듣지 못했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생각만해도 아찔하다. 마지막 난관을 넘어선 이 순간, 가족오락관 우승한 것보다 더 기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어느덧 우리를 공항으로 데려다 줄 택시는 광장에 도착해 있었다. 정겨운 호스트 아주머니와 사진을 찍고 인사를 나누었다. 택시에 타기 전 아쉬운 마음으로 광장을 눈에 담았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올드카, 한적한 혁명광장과 듬직하게 서 있는 호세 마르티 기념탑, 그리고 아바나의 다채로운 풍경.. 아쉬움 가득한 한숨을 내쉬며 창 밖을 감상하고 있었더니 어느새 공항에 도착해 있었다. 


남미여, 잘 있거라!


공항에 도착하자 불현듯 쿠스코에서의 악몽이 떠올랐다. ‘이번에는 문제없겠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비행기 표를 여러 번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다행히 일정에는 문제가 없었고, 모든 게 정상이었다. 항공사 데스크에서 체크인을 진행했고, 티켓 발권과 수하물 서비스 모두 깔끔하게 처리됐다. 무거운 짐을 수하물로 처리하고 나니 몸과 마음이 한결 개운해졌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비행기 시간에 잘 맞춰 탑승하는 것만 남았다.





남은 화폐(cuc)도 처리할 겸 면세점으로 향했다. 많은 면세점 중에서도 주류 면세점으로 향했다. 럼의 나라답게 아바나클럽이 종류별로 전시되어 있었고, 샘플러도 있었다. 나는 아바나 클럽 3년산 한 병만 구매했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구매하지 않고 돌아가려고 했으나 쿠바에서 럼을 사지 않고 한국으로 돌아간다면 후회할 것 같아서 기념삼아 구매하기로 했다. 하지 않고 나중에 후회하는 것보다는 하고 나서 후회하는 편이 낫다! 아바나 클럽 3년산을 사 온건 잘한 일지만, 아바나클럽 7년산은 사오지 않은 건 아쉬움이 남는다.. 각자 쇼핑을 마치고 간단히 배를 채울 겸 공항 내 패스트푸드점에서 샌드위치를 먹었다. 페퍼로니가 한가득 들어가 있는 짭짤한 샌드위치는 트리니다드에서 먹었던 모네다 피자보다 좀 더 나은 수준이었다. 저렴한 만큼 양이 많진 않았지만, 출출한 배를 채우기에는 나쁘지 않은 편이었다.


페퍼로니가 들어가 있는 샌드위치



공항에서 꽤 오래 시간을 보냈는데도 비행기 탑승시간까지 아직 많이 남아있어서 와이파이 카드에 남은 시간을 모두 사용할 목적으로 인터넷을 즐겼다. 많은 사람이 모여 있어서 인터넷 속도는 원활하지 않았다. 인내심을 갖고 느긋하게 인터넷을 이용하다가 비행기 탑승을 알리는 방송이 울렸다. 게이트 앞에 질서있게 줄을 서서 기다렸다. 한 발자국씩 걸음을 옮길 때마다 아쉬운 마음이 커져만 갔다. 짐을 싣고, 비행기 좌석에 앉으니 비로소 여행이 끝났다는 사실이 실감났다. 이윽고 모든 승객이 탑승을 마쳤고, 기내 방송이 울려퍼지더니 비행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활주로 앞에 선 육중한 비행기는 얼마간 멈춰서서 호흡을 한 차례 가다듬고 난 후 활주로를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쿠바 상공을 향해 서서히 떠오르더니 아바나 시내가 레고처럼 보이기 시작했고, 어느새 구름의 높이까지 올라와 있었다. 한 달 동안 이어진 남미여행의 마침표를 찍는 순간이었다. 남미여, 잘 있거라!

아바나 공항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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