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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양b Apr 03. 2024

내 나이 마흔, 처음으로 백수가 되었습니다

안식년이 생기면 뭘 하고 싶으세요?


첫 직장에 입사해서 벌써 15년.

대학교 졸업 전에 취업을 했으니 취준생 시절에도 대학생 신분을 유지하고 있었고,  직장에서 계속해서 근무를 했으니 육아 휴직을 제외하고 저는 일을 쉬어본 적이 없습니다.


일은 잠시 쉬었지만 쉽지만은 않았던 육아휴직이 끝나고 워킹맘으로 지낸 지 약 3년.

복직 초기엔 출근길의 온전한 혼자만의 시간을 즐거워했고 점심시간엔 뭘 할까 매일 설레기도 했어요. 복직 후 2년간은 칼퇴를 해도 지장이 없는 업무를 맡게 되어 워킹맘으로 살기에 그나마 괜찮은 환경이었지요.


3년 차가 되어 부서이동을 하면서 직책도 업무도 책임과 부담이 많아졌어요. 안팎으로 챙길 일이 많아지니 겉으로는 일도 육아도 다 잘 해내는 것 같아 보여도 안으로는 곪아가고 있었습니다. 일도 육아도 살림도 내가 원하는 기준치에 미치지 못해서 팀원들에게도, 아이에게도 남편에게도 미안함이 커져만 갔지요.


연차가 있으니 맡은 회사일은 그럭저럭 해나갔으나 팀장이라는 직함에 맞게 팀원들을 세세하게 챙기지는 못했어요. 육아는 가 주로 하다 보니 남편이 청소나 저녁 준비를 담당했는데 그 때문인지 는 아직도 요리가 늘지 않아 결혼 7년 차인데도 남편에게 제대로 된 밥상을 차려준 적이 거의 없습니다. 살림도 늘 제자리걸음이고.


그중 제일 마음에 걸렸던 건 아이 문제였어요. 종일반에 익숙한 우리 아이는 차라리 어릴 때는 인식하지 못하고 지내다가 커가면서 일찍 집에 가는 친구들과 본인을 비교하기 시작했어요. 동네에 친한 친구가 두시 반에 하원한다는 말을 듣고는 잠시 충격을 받은 듯했고, 같은 종일반에서도 시 반에 가는 아이들을 보며 부러워하더라고요. 우리 아이는 빨라도 6시 정도는  되어야 하원을 했거든요.


"엄마, 나도 종일반 안 가면 안 돼? ㅇㅇ이는 두 시 반에 집에 간 대고 ㅇㅇ이도 네시 반에 집에 가"


일찍 하원하고 싶으면 할머니, 할아버지가 데리러 갈 수 있다고도 설명해 주었으나 아이는 꼭 "엄마"가 "4시 반"에 데리러 오길 바란다고 했지요. 원하는 게 명확하고 그 또래 아이가 바라기에 그리 큰 욕심도 아닌데 들어줄 수 없는 상황에 가슴이 아팠습니다.




더 늦기 전에 일을 쉬며 아이와 더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질 때쯤 우리에게 둘째가 찾아왔어요. 더 이상 아이가 혼자가 아니라는 것과 육아휴직을 쓰면 첫째와도 더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사실에 기뻐하며 지내던 중 둘째를 대상으로 육아휴직을 쓰기로 한 시점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 아이와 이별을 하게 됐어요.


평소에 운동도 건강관리도 꾸준히 한 터라 나름 건강에는 자부심이 있었는데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하고 슬픈 와중에도 "지금은 잠시 쉬어가야 할 때이다"라는 마음의 울림이 절실하게 느껴졌어요.


어린 나이에 입사해서 그동안 조직을 위해 열심히 일했고, 몸과 마음을 바쳐서 일한 결과가 이거라면 더 이상 진심으로 일을 좋아할 수 없겠다고 판단했습니다.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이대로 계속 근무한다면 연봉도 계속 오를 테고 조금 있으면 승진 대상도 되겠지만 지금 나에게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장기적으로 볼 때 지금 쉬어가는 게 맞고 아이에게도 필요할 때 엄마가 옆에 있어줘야지 사춘기 되고 시간을 보낸다고 될 일이 아니다.


남편에게 제 마음을 설명하고 1년간 쉬겠다고 의사를 전달하자 그동안 고생 많았다며 흔쾌히 동의를 해주었습니다. 당분간 가장의 무게감이 커질 텐데 찬성해 준 그에게 참으로 고마웠어요.


조직에도 누가 되지 않도록 인사 시즌에 맞춰서 휴직신청을 했고, 제 사정을 잘 알고 계시기에 윗분들도 직원들도 잘 쉬고 오라며 좋은 마음으로 보내주셨습니다.




연봉도 승진도 포기하고 어렵고도 비싸게 얻은 안식년. 이 귀한 시간을 소중히 잘 쓰기 위해 하고 싶은 일과 나만의 우선순위를 정리해 봤어요.


건강 회복을 위해 얻은 휴직이니 1순위는 : 건강!

공동 1위로 언제나 우선순위인 : 아이와 밀도 있는 시간 보내기

하고 싶은 일이었던 : 주부로 살아보기

꿈으로 그려봤던 : 작가로 살아보기

시간 있을 때 여러 운동 배우기 : 골프, 요가, 수영

마지막으로 : 외국어 공부


하고 싶은 일이 많지만 우선순위를 정하 고나니 하루를 계획하며 중요한 일, 먼저 해야 할 일들이 명확해지더라고요.


해야 하는 일 말고 온전히 내가 하고 싶은 일들로 이루어진, 내 우선순위에 따라 1년을 지내면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요?


태어나서 처음으로 의무감과 책임감에서 조금 벗어나 시간의 사치를 충분히 누리며 사는 요즘. 하루하루 귀한 시간을 소중히 사용하려고 노력 중이고 그래서 내일이 너무 기대됩니다.


여러분은 1년간 안식년이 주어진다면 어떤 걸 해보고 싶으신가요?



+

다음 글에서는 알찬 백수의 하루를 다뤄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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