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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서연 Jan 10. 2019

2. 죽을 뻔 했다

볼리비아에서 장염걸린 이야기



죽다 살아났다. 우유니를 떠나서 수크레로 온 날, 이 곳에서 2박을 하며 천천히 둘러볼 생각이었다. 점심에는 짜파게티를 끓여 먹었고 저녁에는 간장계란밥을 해먹었다. 쌀에 윤기가 없어 약간 부족 하긴 했지만 썩 나쁘지 않았다. 후식으로는 청포도를 먹고 기분 좋게 잘 준비를 하는, 여행 중 소소한 즐거움이 모여있는 그런 날이었는데…..     


으......

몇 시간 후 엄청난 복통으로 잠에서 깼다. 손발이 저리고 오한이 들었다. 짜파게티와 간장계란밥은 죄가 없을 테니 청포도가 문제였나 싶다. 혼자 1kg나 쳐 먹었으니 배가 아픈 것도 당연하긴 한데 아파도 너무 아팠다. 그 날 밤 화장실은 30번 쯤 갔다. 수크레에서 가장 오랜 시간 머물렀던 곳이 어디냐고 묻는다면 단언컨대 파차마 호스텔 1번방 화장실이라 대답하겠다. 여기 화장실은 벽과 변기가 가까워 벽에 이마를 기대고 포도 몇 알에 나가떨어지는 인간의 나약함과 삶의 엿같음에 대해 성찰해보기 좋다. 내가 여기서 내 쉰 한 숨 만으로도 마추픽추가 구름에 쌓이고 흘린 눈물만으로도 우유니 소금 사막이 물에 젖을 텐데. 다음날이 되니 상태가 더 심해져 아무것도 못 먹고 방에만 있었다. 중간에는 정신도 한 번 놨다. 화장실에서 울부짖고 나오는데 갑자기 열이 확 오르고 식은땀이 나더니 눈앞이 잘 안 보이고 이명이 들렸다. 정신 차려보니 방바닥에 누워있더라. 얌전히 쓰러진 건지 다친 덴 없었다. 혼자 쓰러지고 혼자 깨어나서 내 인생의 첫 실신을 증명해줄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게 그 와중에 서러웠다. 여행 중 처음으로 한국에 가고 싶었다. 집도 그립고 이은희 소아과 원장님도 그리운 밤이었다.     


다음날 아침에는 볼리비아 병원에 갔다. 병원에 들어서자마자 사람들 이목이 집중되었다. 볼리비아 병원은 카운터에 어디가 아픈지 말하고 돈을 내야 진료를 받을 수 있다. 병원비 먹튀하는 사람이 많은건가 ....선결제 시스템에 약간 당황했지만 돈을 내고 자리에 앉아 기다렸다. 지나가는 의사들이 '저기 앉아 있는 동양인이 내 환자는 아니었으면' 하는 눈빛으로 본 것 같은데 착각이겠지. 한 시간쯤 기다리니 내 차례가 됐다. 의사쌤은 친절했지만 영어를 못했다.  볼리비아 의대 시험은 영어 1등급이 필요없나 생각했다. 어디가 아프냐고 해서 말하는데 스페인어가 딸려서 내 아픔을 충분히 묘사 못하는 게 너무 억울했다. 내가 과일을 잘못 먹은 것 같다고 말하자 의사선생님은 씻어 먹었냐고 물었다. "네 씻었는데...."라고 대답하는데 시장에서 과일가게 아줌마가 먹어보라고 준 과일들이 생각났다. 좋다고 받아먹은 과거의 나를 한 대 패고 싶었다. 의사선생님도 그 과일들이 위생상 문제가 있었을 거라고 말했다.     


병원비는 그리 비싸지 않았지만 약값이 너무 비쌌다. 약 4종류를 사는데 6만원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이것저것 주워 먹다가 맞은 타격이 너무 크다. 수크레는 저렴한 맛집들로 여행자들에게 유명한 도시인데 아무것도 못 먹게 생겼다. 2박으로 잡은 일정도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 대장이 날뛰면 곤란하니 진정될 때까지 2박을 추가 했다. 다행이 4일 동안 대장의 비위를 맞춰준 결과 상태가 호전됐다. 그 이후로는 아무거나 주워 먹지 않는다. 경험은 사람을 성장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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