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화라는 단어를 체감하기엔 조금 이른 나이 삼십 대 초반,육아에 찌들어서 몸도 마음도 지하 100층에서 허덕일 때였다.
아이를 안고 나가면 늦둥이냐고 묻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오랜만에 만난 친구는 왜 이렇게 폭삭 늙었냐고 했다.
체질에 맞지 않는 육아를 하느라 가뜩이나 우울한 마당에 이런 말들을 들을 때마다 그냥 어디론가 사라지고 싶었다.
푸석푸석한 머리카락, 부쩍 늘어난 새치. 그리고 눈가에 막 생기기 시작한 주름...
도대체 다른 사람들의 눈에 나는 몇 살처럼 보이는 걸까?
마흔? 마흔 후반? 아니면 설마.. 50대?
오... 노!!!!! 그건 아니야. 그래 그건 아닐 거야.
거울 속 여자는 갈수록 우울해져 갔다.
오랜만에 중국 친정에도 다녀와야 하는데 도저히 이 몰골로는 갈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를 데리고 마트에서 장을 보던 중 대문짝만 하게 쓴 활자가 눈에 들어왔다.
마트 1층에 새로 생긴 피부과 앞에 커다란 광고판을 본 것이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래 이거야! 내게 필요한 건 보톡스였어.
그거 한방이면 내 모든 고민이 싹 사라질 것 같았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선뜻 들어가지지 않았다.
피부과 앞에서 얼마나 서성이었는지 유모차에서 잠투정하던 아이도 어느새 잠이 들고 이때다 싶었던 나는 결국 비장하게 피부과 문을 열어젖혔다. 무슨 정신으로 상담을 하고 주사를 맞았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주사가 생각보다 아팠다는 것 외에는.
집으로 돌아온 나는 시도 때도 없이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내 입으로 떠벌리지 않는 이상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것 같았다.
얼마나 다행인가.
가슴을 쓸어내리며 감쪽같이 예뻐질 일만 남았다며 혼자 흐뭇해했다.
하루가 가고 이틀이 가면서 정말 눈가에 주름이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다. 너무나 기뻤지만 아무에게도 말할 수는 없었다. 속으로 혼자 낄낄대며 친정 갈 준비로 바삐 보내던 어느 날, 문득 거울로 바라본 내 얼굴표정에서 뭔가 부자연스러움을 느꼈다. 잔뜩 굳어있는 표정을 풀어보려 거울을 향해 씩 웃어보았다.
헉--
분명 나는 웃고 있는데 눈 주변 표정은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입만 웃고 있는 꼴이었다.
있는 힘껏 더 크게 웃어보았다. 기괴한 얼굴이 날 마주하고 있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게 아닌데.. 이러려고 내가 보톡스를 맞은 건 아닌데...
울고 싶었다. 아무리 구겨보려 해도 구겨지지 않는 내 얼굴이 무서웠다. 내 맘대로 표정을 지을 수 없다는 사실이 악몽처럼 다가왔다.
그렇게 속앓이를 하면서도 몇 년 만의 친정행은 쉽게 포기할 수 없었다.
다행히도 3살 난 아들 재롱에 정신이 팔려 친정식구들은 아무도 내 얼굴에서 별 낌새를 채지 못한듯 했다.
가족사진을 찍을 때 경직된 내 표정을 보고 이모가 딱 한마디 하긴 했지만.
"얘, 사진 찍는데 너 표정이 왜 그러니? 좀 웃어라."
그 말을 들었을 때 얼마나 식겁했는지 모른다. 혹시라도 이모가 눈치챘을까 봐 혼자 전전긍긍한 거 생각하면 지금도 식은땀이 난다.
보톡스 악몽에서 완전히 벗어난 건 몇 개월 후였다. 차츰차츰 눈썹이 움직여지고 눈꼬리에 자연스럽게 표정주름이 잡히기 시작했다. 주름이 그렇게 반가울 수도 있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깨달았다.
감사한 마음이 저절로 생길 정도였으니 그동안의 맘고생은 말해 무엇하랴.
벌써 10년도 더 된 얘기다.
이제야말로 보톡스가 필요한 나이가 되었지만 그때 그 악몽 같은 기억이 너무나 생생해서 아마 앞으로도 보톡스와 친해질 일은 없을 거라 감히 장담해 본다.
아니다, 너무 섣부른 판단인가?
그럼 조금만 더 늙어보고 그때 가봐서 얘기하지 뭐.
#노화 #보톡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