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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기억 하나

by 순임이



결혼초에 있었던 일이다.

명절도 아닌데 무슨 일때문이었는지 시댁에 가서 며칠 지낸적이 있었는데...

그날은 남편도 볼 일 보러 나가고 시누이는 출근하고, 시어머니랑 단둘이 남게 되었다.

세상에 불편해도 그렇게 불편할 수가 없었다.

시어머니는 편히 쉬라고 했지만 도무지 그럴 수가 없었다. 부엌에서 뭔가를 하고 있는 시어머니에게 도와드릴가요 그런 얘기조차 선뜻 나오지 않았다.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안절부절못하고 있던 그때, 세탁기에서 마침 세탁완료를 알리는 멜로디가 울렸다.


그래, 빨래를 널면 되겠구나 싶어 얼른 베란다로 향했다.


세탁물 하나하나 탈탈 털어서 정성껏 널고 또 널었다. 끝없이 나오는 꽤 많은 양의 빨래를 다 널고 돌아섰는데 마침 시어머니가 주방에서 나오고 있었다. 빨래 다 널었어요 하고 말을 하려던 찰나, 시어머니는 나를 지나쳐 베란다로 들어가더니 내가 정성껏 널어놓은 빨래들을 다시 걷고 있었다. 어안이 벙벙해서 가만히 지켜보는 내게 시어머니는 가타부타 아무 말이 없었다. 빨래를 다 걷는가 싶더니 그것들을 도로 세탁기에 집어넣었다. 피죤을 집어드는 순간 뒤늦게 알아챘다. 아.. 헹굼을 추가로 해야 하는구나.

그렇게 시어머니는 헹굼버튼을 눌러 세탁기를 작동시키고는 다시 볼 일 보러 주방으로 들어갔다.


무안하고 뻘쭘했던 나는 그 헹굼이 끝나도록..

헹군 빨래를 시어머니가 다 널도록...

오랫동안 시누이 방에서 나오질 못했다고 한다.





그 많은 양의 빨래를 하나하나 걷어들이던 슬로모션같던 순간,

흡사 무성영화 속 한 장면같기도 한 그것은 오랜 세월동안 내 기억속에서 무한재생되고 있었던것 같다.

아직도 세탁기주변을 서성대고 있는듯한 그 마음을 이제는 그만 소환하고 싶어서 이 글을 적어보았다.




#기억 #시어머니 #무성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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