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울고 있다.
시댁에서 돌아오는 차 안, 서러움이란 것이 폭발해 내 콧물이 용암처럼 폭발하던 날. 주차장에 차를 세우자 남편이 엎드려 운다. 남자가 엉엉 우는 것을 1열에서 본 것은 처음이다.
"야, 네가 왜 울어?"
"그럼 너는, 네 부인이 그런 취급을 받는 데 좋냐?"
그는 한 번, 울어주었다. 그러나 본인의 옛집에서 나를 위해 어떤 것도 하지는 못했다. 일명 B급 며느리, 시댁에 가지 않고도 완벽한 명절을 보냈죠,라고 해 사시 하게 웃는 비범한 김진영 씨의 이야기는 생소하지 않았다.
B급 며느리, A급에 미치지 못한 며느리를 지칭한다. 아무개 며느리에 비해 모자라다는 뜻이거나, 짱구에 나오는 B급 음식 같은 키치 한(Kitsch : 나쁜 예술) 느낌도 된다. 이 책은 한 여자가 한 남자를 만나 어떻게 B급이 되었냐에 관한 남편의 관찰일지다.
"난 시댁에 가면 손님이야."
"응?"
"나는 오빠네 집에서 어려워해야 할 사람이야. 시부모님 입장에서 나는 오빠보다 더 멀리 있는 사람이잖아?
나는 오빠랑 결혼한 사람일 뿐이야.
그분들은 나를 잘 모른다고.
낯선 사람이 집에 오면 좀 어려워해야 하는 것 아냐?"
호빈 씨는 이상한 아내 때문에 괴롭다. 진영 씨는 관습적인 며느리 역할을 거부하고 시어머니는 그녀가 괘씸하다. 남편은 방관자의 갑옷을 입고(싸움에 임하지 않으며 자기 보호에 능함) 아내를 시댁이라는 사자 우리에 던진다. 그녀는 맹수 무리와 13대 1로 뜨고도 결국 우리 안에 선을 그어 유유히 자신의 자리를 만든다. 하여 배운 변태인 호빈 씨는 두 여자 사이에 끼여 죽을 맛이면서도 남다른 아내에게 더 두들겨 맞고 싶은 강렬한 쾌감을 느낀다. 그의 표현대로 B급 며느리 진영 씨는 목구멍에 강제로 부어지는 사이다 같은 존재인 것이다.
"나는 어머니가 B급 며느리 진영을 계기로 새로운 관계 맺음과 삶의 방식을 이해했으면 좋겠다.
어머니에게 뜻하지 않은 고통을 주어서 미안하다.
하지만 나는 이제 어머니 품을 떠났다.
어머니도 그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어머니의 삶을 응원한다."
-- B급 며느리 남편 선호빈의 고백
남편 호빈 씨가 자신은 이제 어머니를 떠났다,라고 한 것과 부인인 진영 씨의 나는 손님이야, 는
이 책이 선사하는 발칙한 기쁨이다. 시어머니는 A급 며느리로 일생을 가족을 위해 헌신했고, (대학 때까지 아들 자취방으로 반찬을 나르셨다는 전설이) 아들의 결혼 후에는 김치를 종류별로 갖다 바쳐 며느리네 밥상을 한국인의 밥상으로 승격시켰다. 그러나 대장금이 환생하여 상을 차려준다 해도 상대가 거절할 수 없는 호의는 곤란하다. 며느리 때문에 집안이 파탄 났다며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방구석에서 눈물을 찍고 있는 쓸쓸한 어머니의 이야기는 그래서 메인에서 탈락했다.
이런 류의 사이다를 원래 좋아하지 않거나, 우리 엄마가 나를 키운다고 얼마나 고생했는데, 라는 당신은
높은 확률로 꼰대, 일 가능성이 있다.(통계는 없음)
그냥 결혼을 했을 뿐인데, 신분제에 강제 편입되고 등급이 매겨지는 현실은 옳지 않다. 반사해 줄 테다. 나를 판단하는 모든 '너'의 등급은 정육점 아저씨보다 내가 더 매섭게 매겨줄 수 있다.
진영 씨는 어쨌거나 이제 시댁에 간다. 나는 아직 그러지 못하고 있다. 얼마나 시간이 더 필요한지 나조차 모른다. 부부상담에서 공인받은 공식 피해자는 내가 분명한데, 비공식 피해 호소인들이 발톱을 숨기고 으르렁거린다. 어쩌겠나. 내 남편은 선호빈도 아니라서, 나는 아직 갈 길이 먼 걸.
'B급 며느리'의 책장을 경쾌하게 넘기니 깜깜한 터널의 초입에 돗자리를 깔고 새우깡을 먹는 기분이다.
난 항상 새우깡을 좋아했었다.
계절이 바뀔 때면 놀란다.
옷장을 정리하다 십수 년 전 미혼 일 때의 스커트를 또 또! 발견하게 되기 때문이다. 못 버리는 성격이 아닌데, 버리지 못하고 있다. 안 버리는 이유는 그 시절의 내가 소중하기 때문인 것 같다.
티브이에 나오는 딸 같은 며느리, 효부, 연예인의 인스타에 어쩌고 저쩌고 시댁에서 예쁨 받는 것(강아지도 아닌데) 블라블라. 내게는 먼 이야기다. 착한 그녀들의 미담이 왜 목에 걸리나 했더니,
"뭔가 강제를 당하고 있는 개인과 집단을 보면 단지 그것만으로도 기분이 나빠진다."
무라카미 류의 소설 'Sixty Nine'의 문장이 떠오르는 것이다. 아니 강제는 아니고,라고 태클을 걸어온다면 인정하겠다. 고부관계를 다룰 때, 나는 정상인의 범주를 넘어선다. 효, 라는 글자가 싫다. 일방적인 것은 아무튼 싫다. 내 아이들에게는 효도할 생각 마라고 한다. (애들이 어려 엄마를 아낌) 효도는 극혐이야.
우리는 그냥 서로 사랑하는 거라고. 좋으면 좋다 하고 싫으면 싫어하는 게 어때서. 왜 누가 누구에게 일부러 잘해야만 하는 것인지.
나는 며느리를 쉬고 있다.
파업을 하면 누군가는 일을 더 할 수밖에 없다. 그 사실이 불편하지만 도울 길은 없다. 이래저래 인정받는 A급들과 나는 운명적으로 척을 지고 있다. 연민하고 미워한다. 그래, 나는 모났다. 그리고, 아직도 B급 며느리에게 가정 파탄범의 죄를 씌워야 후련한 백두혈통보다 무서운 순혈 A급들에게 말한다.
"네, 당신 말이 다 맞습니다. 효부는 너의 것."
[사진 출처 : 픽사 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