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갑작스러운 편지에 조금은 놀라셨나요. 저는 정한아 작가의 소설 ‘달의 바다’를 읽고 따님과 할머니의 팬이 된 독자랍니다. 물론 당신은 등장인물이라 이 책을 펼쳐보지 못하실 테지만, 이야기 속에 언제고 숨 쉬고 계실 것을 생각하면 우리가 있는 곳이 그렇게 달리 느껴지지 않는 것 같아요.
이십 대의 어느 날, 저는 이 책을 만났어요. 한 권의 소설이 정말 저를 옴짝달싹 하지 못하게 붙잡더군요.
책장 속 오랜 동무, 소설 '달의 바다'
여느 엄마와 달랐던 당신은 적금, 등산, 단골손님 등에 믿음을 가진 남편을 만나 좌절하였지만 무지개, 꿈, 비극, 아름다움과 같은 색깔로 아이를 물들였지요.
그녀는 학창 시절 1등을 놓치지 않았고 장학생이 되어 대학을 다녔어요. 예뻤고 목소리는 우렁찼으며 남자들은 그녀를 흠모했어요. 탁월했죠. 그녀가 비범한 사람으로 성장한 것은 놀라울 일도 아니었어요.
생의 순간순간 당신은 딸의 선택을 존중했어요.
그렇다 해도 딸이 미혼모가 되고 이어 새로운 남자 친구와 결혼해 미국으로 떠났을 때에는 걱정이 되셨을 거예요. 그리고 끝내 아이만 홀로 한국으로 돌려보내 졌을 때, 얼마나 가슴이 아프셨을까요. 똥배가 아니었어, 하고 당당히 아이를 출산했던 그녀가 남자를 택하고 자식을 놓아버리다니요. 한국행 비행기에 쓸쓸히 태워졌을 아이를 생각하니 완벽한 타인인 저는 그녀가 잠시 미워지기도 했답니다. 당신의 가슴은 아마도 무너졌을 거예요. 인생을 실패한 것이 아니라고, 다만 실수와 오류를 감당하고 있다는 걸 안다 해도 말이에요.
그 후, 무려 13년간 그녀는 가족에게서 증발되었어요.
그랬던 그녀가 NASA의 우주비행사가 되었다며 당신께만 몰래 보내온 편지는 제가 만난 편지글 중 가장 아름다운 것이었답니다.
"동물들이 다시 가길 원치 않았던 우주로 인간들은 끊임없이 되돌아가요.
우주에 다녀온 뒤 다음 비행을 포기했던 비행사는 지금껏 단 한 명도 없었죠.
그건 인간만이 자기가 선택한 삶을 살기 때문일 거예요."
달에 다녀온 이야기를 풀어놓을 때면 마치 제 몸과 영혼의 일부가 달의 한 자락에 닿아 있는 듯 황홀한 느낌이었죠. 우주비행사를 꿈꾸지 않은 것이 한심해질 정도였다니까요. 한 인간에게는 작은 발걸음, 인류 전체에게는 큰 도약, 이라는 말을 남긴 그녀의 선배 비행사 닐 암스트롱도 그처럼 멋진 문장들을 써내지는 못 했어요. 분명 따님은 어느 우주비행사보다 달을 오래 바라보았던 거예요.
저도 편지라면 떠오르는 게 있어요. 제 집에는 색종이로 만든 우체통이 있는데요. 엄마에게 매일 편지를 써주겠다며 아이가 만들어 둔 거예요. 요즘은 비어있는 날이 더 많지만 그 편지함은 제 기쁨이랍니다.
우체통 입니다만
희한하게도 아빠에게는 편지를 쓰지 않네요. 그는 고기, 절약, 조기퇴직 등에 믿음을 두고 있답니다. 맞아요. 할머니와 저 사이에 얄궂은 남편이라는 공통점이 있음을 인정해요. 예를 들면 이런 거죠. 크리스마스와 생일에는 꼭 편지를 써 달라고 했는데, 돌아오는 것은 안마기나 중고 핸드폰인 거요. 꽃을 매번 잊는 건 물론이에요. 할머니라면 제가 평행선을 바라보는 것 같은 좌절감의 일부를 그나마 낭만으로 꾹꾹 눌러 포장한 거라는 걸 눈치채셨겠죠. 우리의 편지가 그렇게 어두울 필요는 없으니까요.
지금쯤이면 그녀는 달로 완전히 이주하였을 테죠.
워낙 비밀스러운 프로젝트라 세상에 알려지지 않아야 했지만 꿈에 가까이 간다는 것은 어떨지 무척 궁금해요. 우리가 알고 있는 달은 밝고 따뜻한 곳이잖아요. 달빛이 내 마음을 대신한다는 대만 가수 등려군의 살랑대는 노래 가사처럼요. 바라만 보는 것과 실제 가보는 것은 다르겠지요. 혹여 실망스러울지도요. 그래도 그녀는 가보는 것을 선택했어요.
우주로 편지를 부칠 수 없으니, 후의 이야기는 우리의 마음속으로만 상상해야 해요. 그래도 그녀가 영영 떠나버리기 전에, 할머니의 손녀가 미국으로 가 대신 그녀를 만나고 온 것은 참 다행스러운 일이지 뭐예요. 편지 속에서만 만날 수 있었던 그녀의 삶을 가까이 들여다볼 수 있었던 것은 과오가 많았던 저의 지난 인생에도 큰 위안이 되었답니다.
독자인 저는 홀로 다음 장을 펼쳐볼 수 있는 특권을 가지고 있잖아요.
그녀의 삶은 풍파가 멈추지 않는 바다와 같았어요. 엄마인 당신께는 숨길 수밖에 없는 그런 것들요. 편지를 보내는 친구로서 살짝 알려드리자면, 부, 성공, 명예와는 멀어졌을지언정 그녀의 밝음, 긍정, 생을 대하는 자세는 무너지지 않았어요. 안심하세요. 할머니의 아이는 아름다웠어요. 당신의 가르침 그대로.
끝으로 할머니, 드리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요. 그녀가 있는 곳, 달에 대해서 말이에요.
얼마 전 다큐멘터리를 보았는데요. 지구와 달은 원래 하나였다고 해요. 40억 년 전 소행성이 지구와 크게 충돌해 많은 잔해들이 생겼고, 그 조각들이 100년을 부유하다 지은 집이 달이 되었다는 것이죠. 까마득한 옛날, 누구의 이야기도 시작되기 전에, 신이 이 세상을 빚을 때부터 계획한 듯 말이에요. 그러니 그녀가 달을 집으로 선택한 것, 그리고 감당해야 했던 아픔들에 대해 너무 오래 슬퍼하지 마세요. 때때로 따님이 너무나 그리울 때에 그녀와 우리가 아주 다른 곳에 있지 않다는 것을 기억해 주셨으면 해요. 그녀의 마지막 편지를 인용하며 마지막 인사를 대신합니다. 아름다움과 위로가 필요한 어느 날에 저는 다시 달의 바다를 유영할게요.
부디, 기쁘고 평안하시길.
“ 생각하면 엄마의 마음이 즐거워지는 곳으로, 아, 그래요, 다이아몬드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달의 바닷가에 제가 있다고 생각하세요.
그렇게 마음을 정하고 밤하늘의 저 먼 데를 쳐다보면 아름답고 둥근 행성 한구석에서 엄마의 딸이 반짝, 하고 빛나는 것을 찾을 수 있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