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왜 다른 사람들은 동그랑땡을 안 먹어?”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집에서 자주 먹던 동그랑땡이 학교 급식이나 식당 메뉴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는 것이 어느 순간 의아했다. 어린 시절 우리 집은 큰집이었다. 명절과 제사 때는 물론이고, 할머니·할아버지의 생신 때면 많은 인원의 친척들이 우리 집에 복작복작 모였다. 그 특별한 날들은 늦잠도 잘 수 없고, 사촌 언니·오빠, 동생들에게 방을 내어줘야 하는 불편함이 따랐지만, 그 모든 것을 상쇄할 만큼의 설렘은 할머니가 진두지휘해 만든 음식을 먹는 일이었다.
행사 며칠 전부터는 많은 음식을 준비하기 위해 큰엄마, 작은엄마들로 구성된 10명 남짓한 ‘준비팀’이 우리 집에 모인다. 준비팀의 총주방장인 할머니와, 부주방장 격인 우리 엄마는 준비팀이 모이기 전까지 장보기부터 재료 손질까지 직접 하곤 했다. 나는 꽤 어렸을 적부터 행사 음식 준비 과정을 곁에서 지켜보았는데, 돌이켜보면 이것이 내가 독립해서 내 자신을 먹이고 키워나가는 삶을 유지해 나가는 데 큰 힘이 되었다.
많은 음식 중 내가 꼽는 대표 메뉴는 ‘동그랑땡’이다. 우리 집 동그랑땡의 메인 재료는 ‘돼지고기’뿐만 아니라 ‘녹두’였다. 돼지고기와 각종 채소를 섞어 완자를 만들고, 여기에 두 번째 주인공인 녹두가 더해졌다. 할머니는 내가 대학생이 될 때까지 늘 맷돌로 녹두를 갈았다. 거실 한쪽에서 들리던 ‘갈갈갈갈갈’ 소리, 그리고 맷돌을 돌리는 중간중간 붉은 치자를 넣어 색을 더한 연 노란 녹두 반죽은 지금도 눈앞에 선하다.
한쪽에서는 최소 세 개의 프라이팬이 지글거렸다. 식용유뿐만 아니라 참기름을 아낌없이 두른 팬에 한 국자씩 동그랗게 녹두 반죽을 올리고, 그 위에 돼지고기 완자를 얹은 뒤 다시 녹두 반죽으로 덮는다. 할머니가 만든 동그랑땡은 늘 크기와 모양이 일정하고 흐트러짐이 없었지만, 엄마를 비롯해 다른 친척들이 만든 동그랑땡은 크기도 모양도 제각각이었다. 나는 어른들로 구성된 준비팀에서 유일한 아이였다. 그래서인지 나에게는 고기완자를 동그랗게 만드는 정도의 역할만 주어졌다. 꽤 엄격하게 준비팀을 통솔하는 할머니 눈치를 보느라 표현한 적은 없지만, 나도 프라이팬으로 예쁜 모양을 만들어보고 싶은 마음이 항상 있었다.
그렇게 완성된 ‘녹두 옷을 입은 동그랑땡’은 녹두의 고소함과 돼지고기의 육즙이 어우러져 입안 가득 깊은 풍미를 남겼다. 나도 모르게 계속 먹다 보면, 할머니는 가끔 무서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행사일에 손님들과 같이 먹어야 해’라는 무언의 압박을 주곤 하셨다. 사실 큰 손인 할머니 덕에, 동그랑땡은 행사일이 지난 몇 주간은 원 없이 먹을 수 있었다. 그럼에도 나의 입은 항상 우리 집 동그랑땡을 찾았다. 나는 학교 급식 메뉴란에서 ‘동그랑땡’을 발견하면, 늘 ‘녹두 옷을 입은 동그랑땡’을 기대했다. 그러나 내가 아는 그 동그랑땡은 어디에도 없었다. 나는 그것을 볼 때마다 마음속으로 ‘가짜 동그랑땡’이라 부르곤 했다. 내게 진짜 동그랑땡은, 반드시 녹두 옷을 입고 있어야 했다. 나중에야 그것이 할머니만의 레시피임을 알게 되었다.
세월이 흐르며 맷돌을 돌리는 것이 힘에 부친 할머니는 맷돌질을 우리 부모님께 넘겼다. 그리고 그녀의 동그랑땡 모양이 자꾸 삐뚤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언젠가부터는 ‘준비팀’은 할머니 없이도 꽤 그럴싸한 동그랑땡을 만들어 냈다. 시간이 흘러 할머니가 우리 곁을 떠나신 뒤에는 친척들이 모이는 일은 줄어들었고, ‘휘이이잉’ 믹서기 소리가 맷돌 소리를 대신했다. 이제는 우리 엄마와 아빠가 2인 준비팀이 되어 우리 가족을 위해 소량의 음식을 준비하시곤 한다.
우리 집 거실을 꽉 채웠던 준비팀도 이제는 구성되기 어렵고, 맷돌도, 할머니의 손맛도, 할머니의 눈빛도 이제는 다시 볼 수 없지만 내 오감은 여전히 그 분위기를 기억한다. 총주방장이었던 할머니는 음식의 맛을 신경 쓸 뿐만 아니라, 행사 전체를 기획하고 운영하는데 온 마음을 다했던 것이다. 그래서일까, 그런 할머니 덕에 나는 괜찮은 음식을 알아보고 즐기는 미식가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누군가에게 정성껏 요리하여 음식을 대접하는 기쁨을 몸소 배웠다. 나는 언젠가부터 요리를 통해 사람들과 연결된다. 나의 이런 모습에서 할머니를 발견한다.
업무상 해외에서 혼자 4년 정도 지냈던 시절이 있었다. 해외에서 맞이하는 한국 명절이 되면 내 어린 시절 보았던 ‘준비반’의 모습이 아르거리 곤 했다. 나는 현지의 아시안 상점에서 동남아산 녹두를 구해 믹서기로 갈고, 치자 대신 주황빛을 낼 수 있지 않을까 싶어 김칫국물을 넣고, 돼지고기와 채소를 섞어 완자를 만들었다. 현지에서 올리브 오일보다 비싸게 구한 참기름을 두르고 동그랑땡을 부치자 익숙한 냄새가 퍼졌다. 오감으로 배운 ‘녹두 옷을 입은 동그랑땡’을 만들어 현지에서 알게 된 한국인 지인들과 나누어 먹곤 했다.
그리고 이제 어느덧 나는 엄마가 되었다. 올해 추석에는 두 돌을 바라보는 아이에게 '녹두 옷을 입은 동그랑땡'을 부쳐 주었다. 돼지고기와 채소, 국산 녹두를 손수 준비해 프라이팬 앞에 서서 온 마음을 담아 만들었다. 비록 할머니의 맷돌도, 손맛도 없지만 내 기억 속 맛과 향을 이어가며, 아이의 몸과 마음에도 이 순간이 의미 있는 추억으로 남기를 바란다. 문득 궁금해진다. 할머니 역시 그 위 세대로부터 이 동그랑땡을 물려받았던 걸까? 그렇다면 지금 내가 만드는 ‘녹두 옷을 입은 동그랑땡’은 또 다른 세대로 이어질 작은 다리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