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양사로, 그리고 나의 부엌으로 #3
정관스님은 이어 요리를 모두 끝내고 각 테이블을 돌며 참여자들과 교감하였다. 어떻게 이곳을 오게 되었는지, 음식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앞으로 삶의 계획은 무엇인지, 정해지지 않은 주제로 대화가 오갔다. 스님이 각 참여자들과 교감을 하는 동안 같은 테이블을 공유하는 참여자들 간에도 유대가 생겼다. 나와 남편도 마주보고 앉았던 두 젊은 여성과 음식을 나누며 조심스레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둘은 오랜 친구로, 그중 한 친구가 결혼을 앞두고 있어 우정여행을 왔다고 했다. 우리 부부는 장거리 부부 생활과 나의 귀국 후 한국에서의 소소한 결혼 생활에 대해 이야기했다. 대화를 나누기 전, 요리를 함께 만들면서 느꼈던 낯선 사람들 사이의 삐걱거림과 어색함이 어느새 사라지고 서로 간의 거리가 가까워지는 느낌이었다.
나는 업무상 헝가리에서 거주했었다. 현지에 있는 많은 한국 기업인들과 교포들은 나의 업무상 고객이었다. 그런 고객들과 친구처럼 지내는 것이 조심스러웠다. 한편으로는, 언어와 문화가 통하는 한국인 친구가 있으면 좋을 텐데 하는 갈증이 있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와 밀접하게 업무를 하고 있는 상부기관 담당자와 사적인 식사를 하게되었다. 연차와 나이, 장거리 부부 생활을 한다는 점 등 비슷한 부분이 많아 반갑긴 했지만 업무상 인연이기에 처음에는 조심스러웠다. 그렇지만 점차 우리는 서로를 ‘헝가리의 장금이들’이라고 칭하며 서로의 집을 오가며 손수 만든 음식을 나누어 먹었다. 그녀가 먼저 헝가리 근무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갈 때, 우리 둘은 눈물을 보일 정도로 가까워져 있었다.
정관스님과의 시간을 통해 나는 스스로를 먹이고 살려내며, 낯선 땅에서 알게된 사람들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도 진심으로 연결되기 위해 애썼던 나날들을 떠올렸다. 정관스님은 미국과 호주에서 사람들을 불러모았다. 아직 헝가리에서 오지 않았지만 린다도 그녀의 요리가 궁금하다고 했다. 음식을 통해 사람과 사람이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이 새삼 놀라운 일임을 깨달았다. 스님은 자신의 수행방식 중 하나인 요리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는 것만 같았다. 또 세상은 그런 그녀에게 다양한 문화와 민족들과 교류할 기회를 주었다. 나 또한 음식을 통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인연을 맺곤 했었다.
사찰음식이 궁금해서 찾아간 백양사에서, 나는 헝가리 생활을 돌아보며, 음식과 요리를 통해 살아냈던 나의 삶을 되돌아볼 수 있어 감사했다. 그런 영감을 받은 것은 정관스님이 풍기는 무언가 덕분이었다. 그녀의 눈과 피부, 몸짓에서 느껴지는 생기 있는 에너지와 빛이 나를 응원하는 듯했다. 사람을 마음을 동하게 하고 에너지를 주는 이들의 원천은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스님으로서 수행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그녀만의 방식이 그녀를 빛나게 하고 나에게까지 영감을 준 것 같다.
나의 삶의 방식과 흔적이 누군가에게 힘이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의미 있을까. 내가 헝가리에서 나를 위해 했던 음식을 지인들에게 나누었던 그 순간이, 지인들에게도 좋은 기억으로 남았길 희망해 본다. 그리고 린다가 한국을 방문한다면, 백양사는 물론이고 우리 집에 초대해서 그녀가 좋아했던 ‘반숙 계란이 동동 떠 있는 순두부찌개’에 ‘진짜 한국의 맛’과 ‘나의 삶의 소중한 흔적’들을 듬뿍 담아 만들어줄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