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억이 올랐다

by 콩나물공주



그 전화는 20년 전, 평범한 퇴근길에 걸려 왔다.


“○○아파트 ○○동 ○○호 소유주시죠?

5억 5천에 매수 희망하시는 분이 있어요.”


하마터면 비명을 지를 뻔했다.

그 집은 2억 1천에 계약한 분양권이었다.


“저희는 입주할 건데요.”

“그럼 6억이면 파시겠어요?”

전화를 끊고, 한참을 앉아 있었다.


4를 쓰고 0을 이어 썼다.

일, 십, 백, 천, 만...

손이 멈추지 않았다.


그날 저녁, 회를 포장해 술상을 차렸다.

“4억 올랐대?”

남편이 술잔을 탁 내려놓았다.


“10년 치 내 연봉이야.”

나는 두툼한 광어 한 점을 입에 넣었다.

“두 채를 샀어야 해. 그럼 8억이잖아.”

남편이 잔을 만지작거렸다.

"너무 욕심내지 마."


나는 소주를 들이켰다.

쓴 기운조차 달게 느껴졌다.

욕심? 지금이 기회야.

난 꼭 10억 부자가 될 거야.”


며칠 뒤 도착한 책 상자를 뜯었다.

아파트 투자, 경매, 땅.

일곱 권이었다.


서재는 이미 가득 차 있었다.

여고 시절부터 모아 온 천여 권의 책들.

눈을 감고도 어디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손이 먼저 가는 자리들이 있었다.


나는 시집을 꺼냈다.

종이가 바삭 소리를 냈다.

몇 페이지는 접힌 자국이 그대로였다.

잠깐 멈췄다.

시집을 종이박스에 담아

베란다 구석에 밀어 넣었다.


박스 위에 큼지막하게 적었다.


<※중요※ 절대 버리지 말 것>


새 책이 늘어갈수록

베란다에 박스가 쌓였다.


입주하자 아파트는 6억 5천만 원으로 뛰었다.

주식, 적립식 펀드 수익률도

200%에 가까워졌다.


회사에서도 이야기가 돌았다.

“자기, 그거 얼마에 들어간 거야?”

“혼자만 알지 말고, 나도 좀 알려줘.”

나는 점점

‘돈 잘 버는 사람’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주말마다 모델하우스를 둘러봤다.

그날, 그 집이 눈에 들어왔다.

현관 바닥이 반짝였고 조명이 밝았다.


“52평인데 서비스 면적까지 하면 70평이 넘어요.”

주방이 넓었다.
한쪽에 또 다른 주방이 있었다.

옆에서 따라오던 사람이
한 번 열어 보세요, 앉아 보세요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현관 벽에 버튼이 있었다.

눌렀지만 작동되지 않았다.

“엘리베이터 버튼이에요.”

옆에 있던 사람이 말했다.

손을 바로 뗐다.

큰 방은 둘로 나눌 수 있다고 했다.

나는 나누지 않는 쪽을 생각했다.


집에 돌아와 누웠다.

눈을 감아도
그 집이 보였다.


뭐? 이 집을 월세를 주자고?

남편이 놀라는 건 당연했다.

마룻바닥에 작은 스크래치만 생겨도

손에 물집이 잡히도록 문지르던 사람이었다.

새시 비닐도 뜯지 않은 집이었다.


그해 결국, 나는 남편을 설득했다.

그리고 그 집을 분양받았다.

계약금을 맞추기 위해

막 입주한 집을 월세로 돌리고,

우리는 외곽 전셋집으로 옮겼다.

부족한 돈은 대출로 메웠다.


이사 간 집은 저층이라 볕이 잘 들지 않았다.

출근 시간은 더 길어졌다.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가려면

질퍽한 공사장을 지나야 했다.

타워크레인이 머리 위를 천천히 돌아갔다.


아이는 어린이집 버스를 탈 때 울고,

내릴 때도 울었다.


주말, 마트에서

아이가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토끼를 보고 있었다.

한참을.


그날 저녁 우리는

볕이 들지 않는 전셋집으로

토끼를 데리고 왔다.


이전 01화자산 50억인데, 홈쇼핑 상담직도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