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_ 시베리아 횡단 열차 여행의 세 번째 프롤로그, 날기까지
※ 프롤로그에는 여행 관련 정보가 거의 없으니 넘기셔도 좋습니다.
부족한 상태에서 짐을 싸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었다. 원래 짐을 최대한 줄이는 걸 좋아하고, 가진 옷도 별로 없어서 짐 싸는 게 그렇게 힘들었던 적은 없었으나, 이번에는 극한의 추위에 대한 대책을 세우기 위해 물건을 구입해서 짐을 싸려니 골치가 엄청 아팠다. 게다가 돈을 버는 입장이 아니라 함부로 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낭비나 구매 실패를 싫어하는 성격이라 더 심했다.
오프라인에는 마음에 드는 게 없거나 비싸서 온라인으로 주문했지만, 뭔가 맞지 않아 반품하는 등, 집을 떠나 본가로 가기 전까지 쇼핑한다고 정신이 없었다. 안 하던 걸 하려니 더 힘에 부친다. 아무 섬유나 다 입을 수 있으면 좋을 텐데 겨울 옷에 많이 쓰이는 아크릴 섬유는 나와 도저히 안 맞아서 고생이다. 그건 조금이라도 들어있으면 장기간 착용했을 때 토할 것 같다. 게다가 살은 갈수록 쪄서 과도한 슬림핏은 들어가지 않아 치수를 자세히 봐야 된다.
이렇게 되니 그냥 있는 것으로 어떻게 해결하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지만, 그랬다간 시베리아 한복판에서 고생할 것이 눈에 훤했다. 기차나 건물 안이야 따뜻하겠지만 해가 지고 돌아다니려면 지금 가진 걸로는 부족한 게 확실해 보였다. 그래서 계속 준비하자니 스트레스가 계속 쌓인다. 쇼핑이 힘들어서 여행을 취소하고 싶다는 생각도 몇 번 들었을 정도였다.
다행히도 출발 전 당시 내가 생각하던 타협점에 거의 맞춰서 준비를 마칠 수 있었는데, 결론적으로 대부분의 방한용품은 제대로 쓴 적이 없었다. 생각보다 한겨울의 러시아는 춥지 않았다. 자세한 건 나중에 쓰겠지만, 이후 결과론적 생각이긴 해도 돈을 낭비했다는 죄책감이 들어 오랫동안 우울했었다. 그래도 당시 내가 내릴 수 있었던 가장 합리적인 판단을 바탕으로 한 소비를 한건 맞았지만.
그렇게 짐을 겨우 다 싸고 여행 약 1주 전에 본가로 갔는데, 여행 직전에 설 연휴가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집안은 예전에 비하면 많이 간소화되기는 했지만 설을 쇤다. 친척들이 다 본가에 모이기 때문에 미리 가서 청소와 정리를 해야 하고, 설음식 장만도 도와야 하기에 명절에는 미리 가는 편이다. 물론 이럴 때 가장 힘든 사람은 부모님이시고, 돕는 건 당연한 거지만, 이번에는 정신적으로 워낙 지쳐있던 상태라 상당히 대충 했던 걸로 기억한다. 계속 힘들었다는 이야기를 해서 미안하지만, 정말로 심각했고 워낙 지배적이라 이를 빼고는 설명이 거의 불가능하다.
거기다 부모님과 함께 있으니 진짜 곧 간다는 것이 실감되어 불안감은 더 커져만 갔는데, 그걸 표출할 곳이나 방법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속으로는 엄청 썩어 들어가고 있었다. 거기에 내가 참 나약하고 겁이 많은 성격이라는 걸 다시 깨닿게되다보니 자기 비하까지 열심히 하게 되었다. 거기에 떠올리고 싶지 않은 과거의 나약했던 모습들마저 계속 떠올라 괴로웠다. Sanity수치가 바닥으로 내려갈 때 탄력을 받으면 진짜 끝도 없이 내려간다.
그렇게 괴로워하던 와중, 고맙게도 설을 맞아 고향으로 내려온 친구들이 얼굴 한번 보자고 연락을 해주었다. 원래 만나려고 미리 계획을 했으나, 각자의 스케줄이 미묘하게 안 맞아 사실상 포기했었는데, 우연히 그날 서로의 스케줄이 잘 조정되어 오랜만에 여럿이서 볼 수 있게 되었다. 문제라면 내 고향의 친구들이 아니라 내가 다니는 대학교 쪽에 살던 친구들이라 멀리 가야만 한다는 것이었는데, 지금 안 보면 앞으로 보기 상당히 힘들어질 것이고, 심약해져 있던 내가 그들을 정말 보고 싶었기 때문에 먼 거리를 이동했다.
그러고 보니 해가 바뀌고 나서 사람들을 거의 만나지 않고 있었다. 가장 친했던 친구가 취직하여 멀리 가버린 것도 있고, 다른 사람들도 취직 준비에 열중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빈도가 잦아들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나의 인맥 풀이 좁은 것과 더불어, 먼저 연락하지 않는 성격으로 인해 더 악화되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가뭄이 덕분에 해결되었다. 비록 짧은 시간이긴 하지만, 그들과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내며 나의 스트레스와 불안감은 상당히 해소되었다.
돌이켜보면 내가 그 정도로 나약해진 건 내부에 쌓인 압력을 밖으로 내보낼 곳이 없었기 때문인 것 같다. 여행을 준비하는 동안 주변 상황은 심각하게 급변하고 있었다. 나는 드디어 마지막 학기를 앞두게 되었고, 주변 사람들은 하나씩 잘 되어서 떠나거나 정체를 겪고 있었다. 거기에 단기적으로는 실수로 일으킨 개인적인 사고의 수습 때문에 혼란스러웠던 반면, 장기적으로는 금전적 위기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공포가 서서히 옥죄어왔다. 그런 종합적인 사태를 보지 못하고 모든 걸 여행의 탓으로만 돌린 건 그만큼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여유를 살짝이나마 가지게 되자 마음은 상당히 평온해졌다. 현실에 대한 인식이 좀 더 객관적이게 되면서도 쓸데없이 부정적으로 치닫던 내 정신도 안정되었다. 그러면서 괜히 인간(人間)에 '사이 간(間)'이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면서, 좋은 시간을 함께 보내주는 친구들이 고맙다는 생각이 새삼 떠올랐지만, 이번에도 표현하지는 못 했다.
그렇게 심적으로 다사다난한 날들을 겪으며 여행 출발일이 되었다. 거품 낀 불안감은 가셨고, 내가 할 수 있는 준비는 모두 마쳤기에 큰 걱정은 되지 않았으나, 여행 스케줄을 주도해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에 부담감은 여전히 다소 있었다.
나는 예전부터 책임과는 거리를 계속 두고 싶어 하는 사람이었다. 가장 큰 이유는 책임감을 느끼게 되면 그 정도가 과해진다는 것 때문인데, 그러면서도 자신감과 능력이 많이 부족하여 항상 이처럼 부담을 크게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행동이 과장되거나 왜곡되어 문제가 된 적도 수차례 있었다. 그러다 보니 나는 나 자신을 책임과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판단하여 계속 멀리해왔지만, 지금처럼 피할 수 없는 경우에는 잘할 수밖에 없다. 사실 고작 해외여행 따위에 그정도의 책임감과 부담감을 느낀다는 게 우습기는 하지만.
이른 아침부터 출발하여 KTX를 타고 인천공항으로 갔는데, 그러다 보니 예전 유럽으로 여행 갔을 때가 떠오른다. 그때도 이른 시각 KTX에 앉아 공항에 도착할 때까지 스마트폰으로 쉴 새 없이 최대한 더 많은 정보들을 검색하고자 하였다. 사실 주요한 정보는 다 조사한 시점에서 그때 검색하는 것들은 현지 가서 부딪쳐 가며 얻을 수 있거나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자국어로 물어보는 것도 잘 못하는 내가 외국에서 잘할 리가 없다는 걸 스스로도 잘 알고, 쓸모없어 보이는 정보가 예상치 못한 데서 도움을 준 덕이 몇 번 있었던 터라 마지막까지 찾아본다.
그러면서 키릴 문자 읽는 것도 공부한다. 사실 출발 전까지는 의지가 그다지 생기지 않아서 열심히 공부하지 않았지만, 발등에 불이 떨어지니 열심히 보게 된다. 그리고 이는 생각보다 큰 도움이 되었는데, 러시아어로 어떻게 읽는지만 알게 되면 대충 뜻을 유추할 수 있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단어를 거의 공부하고 가지 않았지만, 현지 메뉴판에서 Вино를 보고 Vino를 유추해(발음이 같다) 와인임을 알게 되는 등, 응용하기 좋았다.
그렇게 열중하다보니 시간은 빠르게 흘러 금방 인천공항에 도착해버렸다. 공항은 아무리 일찍 와도 시간이 부족한 장소인 것 같다. 여유롭게 도착해야겠다고 생각해서 일찍 가도, 할 것 다 하다 보면 빠듯해진다. 이번에는 약 3시간 전에 도착했는데, 체크인하고 밥 먹으니 거의 시간을 다 써버려서 면세점 구경은 하지도 못하고 게이트로 향해야만 했다. 개인적으로 공항에서 살짝 빈둥거리며 시간을 보내는 것을 좋아하는데, 이상하게 우리나라 공항에서는 그래 본 적이 별로 없다.
그러고 보니 공항의 식당에서 밥을 먹은 적이 없다. 먹고 싶었던 적은 많았다. 그러나 가격 대비 가치가 지나치게 떨어지는 경우가 많거나, 해외인 경우 굳이 공항에서 식사를 먹을 필요는 없다고 판단되는 경우가 많아서, 대기 시간이 길더라도 공항 내 편의점에서 때우거나 굶거나 펍에서 맥주 정도만 마시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그런지 공항에서의 식사는 상당히 이질적인 느낌이 들었다.
그런 이질적인 느낌을 뒤로하고 탑승구로 갔다. 드디어 출국이다. 사실 출국은 별게 아니지만, 그때까지 사서 걱정한 것이 너무 많아서 '드디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돌이켜보면 정말 별 것 아닌데도 엄청 스트레스를 받았다. 기존에 가지고 있던 이미지라는 것이 그렇게 무섭다. 그 편견을 뚫기가 정말 힘들다. 그래도 진짜 갈 때가 되니까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이 든다. 그러나 그런 안일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는 것 자체가 큰 안도감을 주었다.
드디어 긴 프롤로그를 마치고 러시아로 간다.
설명에 ⓒ가 붙어있는 사진과 타이틀만 직접 찍은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