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러운 어머니의 발병으로 여행이 불투명해졌다. 여행을 가도, 안 가도 마음이 불편한 상황이었다. 내색도 못하고 며칠을 끙끙대는데 남편이 병원 검사는 자신이 모시고 가겠다며 다녀오라는 것이 아닌가! 이럴 수가!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다. 다른 때 같으면 내가 먼저 여행을 취소하겠다고 했을 텐데 이번엔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그때의 난 몹시 불안정했고 모든 것이 힘에 겨워 일도 그만 둔 상태였다. 그냥 나만 생각하고 싶었다. 그렇게라도 해서 그 시기를 넘기고 싶었다. 남편도 그걸 느끼고 있었나 보다.
혼자 보내는 것이 영 불안했는지 남편이 인천공항까지 동행해 주었다. 난 극구 사양했지만 영 못 미더웠나 보다. 솔직히 긴장이 많이 되긴 했다. 비행기 타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데 혼자, 게다가 환승까지 해서 20시간 넘게 가는 건 생각만으로도 숨이 막혔다. 하지만 이 고비를 넘기면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내 본연의 모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엄마를 보낼 때까지 모든 짐을 혼자 져야 했던 난 지쳐서 결혼과 함께 남편 뒤에 숨어 버렸다. 그게 편하기도 했지만 오랜 시간 그렇게 사니 내가 사라진 것 같았다.
가까스로 화물용 짐과 음식이 든 보냉 상자를 붙이고 출국장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남편이 잘 다녀오라며 뺨에 입을 맞췄다. 어라? 밖에서 이런 모습은 처음이었다. 주변 사람들이 우리만 쳐다보는 것 같아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난 쑥스러워 잘 다녀오겠노라며 서둘러 안으로 들어갔다.
어찌어찌 출국 수속을 하고 면세점에서 콩알이에게 줄 화장품만 사고는 줄곧 게이트 앞에 앉아 기다렸다. 쓸쓸했다. 콩알이도 이런 느낌이었을까? 어머니 문제가 겹쳐 그랬는지 가볍기만 할 줄 알았던 발걸음이 커다란 쇠사슬을 채워 놓은 듯 무거웠다.
비행기를 타자마자 떡실신하듯 잤다. 소란스러운 분위기에 겨우 눈을 떠 보니 어느새 아부다비에 다 와간다고 했다. 또다시 걱정이 됐다.
‘비행기를 놓치지 않고 제대로 갈아탈 수 있을까? 변수가 생기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다행히 생각만큼 공항이 거대하지는 않았다. 3시간을 여기서 뭘 해야 하나 싶어 면세점을 두 바퀴나 돌았지만 비행까지 아직 두 시간 이상 남아 있었다. 그런데 너무 졸렸다. 여기까지 오는 내내 잤는데도 의자에 앉자 저절로 눈이 감기려 했다. 할 수 없이 조그만 커피 부스에서 커피 한 잔을 샀다. 여유를 만끽하는 여행자처럼 카페에 앉아 있고 싶었지만 후덜덜한 가격에 그러지도 못했다. 테이크아웃만 가능한 커피 부스에서 샀는데도 우리 돈으로 12,000원이 넘었다!
강박증 환자처럼 확인에 확인을 하고는 일찌감치 게이트 앞에 앉았다. 혹시라도 기내가방을 잃어버릴까 싶어 꼭 그러쥐고 앉았는데 계속 잠이 왔다. 커피도 도움이 되지 못했다. 비행까지 아직도 1시간 넘게 남아 있었다. 잠깐 눈을 붙여도 될 것 같았다.
퍼뜩 눈을 떴다. 어느새 잠이 들었었나 보다. 깜짝 놀라 시간부터 확인했다. 30분 이상을 잤나 보다. 그래도 제시간에 깨 다행이다 싶었다. 그런데 출발 20분 전인데도 탑승 안내가 없다. 이상했다. 벌써 탔어야 하는 시간인데! 때마침 내 앞을 지나가던 직원한테 물었다. 직원은 태블릿을 들여다보더니 게이트가 바뀌었다고 하는 게 아닌가! 심지어 내가 있는 곳의 정반대 쪽 끝에 있는 게이트라고 했다. 그 말이 끝나기가 내 주변에 있던 몇몇 사람들이 무섭게 뛰기 시작했다. 덩달아 나도 뛰었다. 여기서 비행기를 놓친다는 건 상상도 하기 싫었다. 난 대문자 J에, 트리플 A형이 아닌가? 숨이 턱에 닿도록 뛰어 우린(?) 간신히 비행기에 탔다. 뛸 때는 몰랐는데 자리에 앉고 보니 슬슬 화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잠들기 전에 두 번이나 확인했는데, 직원한테 물어보기 전에 본 안내 전광판에도 처음 게이트 그대로였는데 이게 웬 날벼락인가? 내가 잠들었을 때 방송을 했던 걸까? 그렇다면 전광판에도 정정을 했어야 마땅했다.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맨체스터 공항에 도착했다. 수하물 2개에 기내가방 하나를 끌고 요크로 가는 기차를 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