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애니 Mar 25. 2024

28년 만의 휴가(5)

지나간 시절은 늘 아쉽다

 새소리에 눈을 떴다. 처음 들어보는 새소리에 홀려 나도 모르게 창문을 열었다. 작은 뒷마당은 나무와 꽃들이 가득했고 가장 키 큰 나무 꼭대기에 2마리의 새가 지저귀고 있었다. 불현듯 이곳에 오기까지의 마음고생이 눈 녹듯 사라졌다.

창문을 열어 놓은 채 전기포트에 물을 끓였다. 커피를 마시며 시계를 보니 6시가 안 된 시간이었다. 간만에 한 번도 깨지 않고 푹 자서인지 컨디션이 아주 좋았다. 씻고 아침을 먹으러 다이닝룸에 들어서자 식사 중이던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내게 쏠렸다. 어색한 미소로 아침인사를 하고 테이블에 앉았다. 모르는 사람들과도 인사해야 하는 이 나라의 특성을 부담스럽게 여겼던 날들이 떠올랐다. 하지만 오늘은 그 조차도 즐겁게 느껴진다. 음식 맛없기로 유명한 영국이지만 있어야 할 것들은 다 있는, 성의 있는 식사였다.

 콩알이가 데리러 왔다. 하늘은 더없이 푸르렀고 요크의 아침은 상큼했다.

 “지난주까지 계속 비 오고 날이 안 좋았는데! 엄마 온 지 아나 보다!”

 콩알이의 안내를 따라 요크 시내로 향했다. 기분이 묘하다. 예전엔 엄마, 아빠를 따라다니던 딸이 이제는 나를 데리고 다닌다. 대견하기도 하고 서글프기도 했다. 내 손길이 필요한 일이 점점 더 줄겠지….


 미국 뉴욕의 어원이 된 도시인 이곳은 영국의 피렌체라고 불릴 만큼 중세 도시의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다고 한다. 지나다니는 자동차만 없애면 당장이라도 중세 배경의 영화를 찍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낡고 오래된 것들이 더없이 아름답게 느껴졌다.

 요크 대성당도 변함없이 그대로였다. 20년 전에 분명히 왔던 곳인데, 변한 것이 없는데 처음 온 것 마냥 새롭다. 그때는 애들 쫓아다니느라 겨를이 없었나 보다. 대성당 한쪽은 공사 중이었지만 내부 투어가 가능했다. 영국 최대 규모의 스테인드 글라스를 자랑하는 실내 장식과 규모가 놀라면서도 이 규모를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눈물 어린 노고가 있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대성당을 나와 걷다 보니 예전에 갔던 바이킹 센터 앞이었다. 그 당시 비싼 입장료를 내고 들어갔는데 8살이던 감자가 어찌나 무서워하던지 달래기에 지쳐 얼른 나왔던 기억이 떠올랐다. 남자애가 그렇게 겁이 많아 어떡하냐며 타박했던 것 같기도 하다(늦었지만 미안하다, 감자야. 엄마도 자식을 키우는 건 처음이라 그랬어). 콩알이가 들어갈까 물었지만 난 고개를 저었다. 여기에 서서 그때를 추억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지나간 시절은 늘 아쉽다.

매거진의 이전글 28년 만의 휴가(4)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