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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니 Jul 11. 2021

오랫동안 회사사람이기만 했던 사람이 인간적으로 보일 때

동네의 한 조용한 카페에서의 시간

오랫동안 알고 지내왔어도, 어느 순간 갑자기, 정말 새삼스럽게, 그 사람 자체가 보인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예컨대 철저히 직장 동료로서 안부를 주고받던 사람이 사실은 '인간 000'이라는 사실이 훅 다가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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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있어서 첫 회사는 첫사랑과 비슷하다.

어리숙했지만 가장 열린 마음으로 모든 일을 받아들였고,

다시 돌아갈 수 있대도 그럴 생각은 없지만, 너무나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이후 회사를 고를 때는 항상 그 회사가 기준이 된다. 그리고 '그 때 이렇게 했으면 더 좋았을 걸'하는 미련 한 스푼.


그 곳에서 만난 첫번째 팀장님 또한 나의 첫 사수였으므로, 아직도 내가 일을 할 때면 항상 마음속에서 그 팀장님이 말을 한다. '미리 단정짓지마', '엑셀은 타이핑하지 말고 할 수 있는건 죄다 함수를 써!'

한 때는 그의 깐깐함과 히스테릭한 애티튜드에 못이겨 퇴사를 고민하던 적도 있었는데,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아무것도 모르는 생판 신입에게 이렇게 정성스럽게 가르쳐준 그가 고맙기만하다. 나를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줬는데 그깟 친절이 뭐 대순가.(진심맞다)


그는 내가 아직 그 회사를 다니고 있는 동안에 먼저 퇴사를 했다. 처음에는 솔직히 좋았고, 그와 다시는 연락하지 않을 줄 알았다. 그런데 큰 결정이 필요할 때 나는 결국 그의 피드백이 필요했다. 아직 나는 그의 통찰력과 판단을 유추할 만큼 다 배우지 못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사실이 불안했고. 처음에는 그래서 연락을 했다. 그리고 그에게도 내가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부분이 있었으므로, 우리의 니즈는 서로 잘 맞았다. 물론 그러한 만남을 가지며 조금은 허심탄회한 - 함께 일하는 시간 동안 미처 하지 못했던, 혹은 굳이 나누지 않았을 - 이야기도 하며 전보다 가까워졌다는 느낌은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우리는 서로에게 필요할 때 만난다는 느낌이 강했다.


그렇게 우리는 여느 때처럼 생존신고 격으로 한 카페에서 안부를 물으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 날따라 일 얘기보다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조금은 내밀하고 진솔한, 카페가 너무 조용한게 신경쓰이는, 어른이 돼서도 이런 얘기를 한다는게 조금 부끄러운.

그러나 사뭇 진지한 그의 태도에 나는 그만 ' 팀장님' 아닌 인간 000 인지하고 만것이다. 심지어 우리가 만난 곳은 내가 아주 어렸을  살던  근처였다! (감상에 젖길 좋아하는 이에게 이런건 매우 중요하다) 순식간에 나는 차원의 문을 넘어가버렸고, 웬만하면  하지 않는 이야기를 후두둑 해버렸다. 엄청나게  비밀은 아니지만, 굳이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약간은 오글거리고 비겁하기도 하지만 솔직한 모습같은 것들 말이다.


아아, 내가 이 사람과 이런 얘기를 하고 있다니. 몇 년을 알아왔지만 이 분과 이런(친밀한) 기분으로 이런(유치하지만 사실은 진지한) 이야기를 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과거의 내가 이 장면을 봤다면 아마 패닉에 빠졌을 것이다.


아아, 어쩌면 우리는 만나면 좀처럼 술은 마시지 않고 주구장창 카페만 갔기 때문에 이제사 이런 이야기를 하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a.k.a 인관관계에서 술의 효율성에 관한 지론) 어쨌든 우리는 그 날 점심 약속으로 만났으나 저녁까지 먹고 헤어졌고, 급기야 그는 발화량 폭증으로 인한 구강통증을 호소하며 떠났다..

혹시 드라마 나의 아저씨를 보았는가. '그 사람 알아버리면 그 사람이 무슨 짓을 해도 상관없어'ㅡ라는 명대사를 좋아한다. 이제 나는 그가 보증을 서달래도 서 줄 것이다는 농담.

어떤 이해관계나 사회적 관계를 떠나 그 사람을 발견하고 나면, 그 사람이 나랑 아무런 관련이 없어져도 그냥 그 사람이 궁금하고, 좋은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해서 내가 상대방을 모두 '알게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인간관계에 파묻혀 허덕일 때면, 간혹 나에게 이유를 알 수 없이 안부를 물어오는 사람들이 불편하던 때가 있었다. 내 관계를 챙기기도 바쁜데, 갑자기 바운더리 밖의 사람이 나타나면 피곤해지는 것이다.

어쩌면 그들은 나를 사람 000으로 생각하고 단순히 궁금해서 연락해온 것일 수도 있는데. '나한테 모임 오라하려는구나.' '요즘 업계가 어떤지 물어보려는 거겠지' 하며 미리 선을 긋고, 공허한 약속으로 만들어버리곤 했다. 그런 관계는 영원히 그런 관계로만 남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보다 더 과거에는 만나는 모든 사람들과 '진정한 관계'(그게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가 되고자 노력했었다. 그러다보니 나의 즐거움은 안중에 없고, 상대방이 나를 어제보다 오늘 더 가깝게 느끼는지, 지금 우리의 관계는 발전하고 있는지를 계속 추론하며 일희일비하곤 했다. 하지만 세상 일이 그렇듯, 인간관계 역시 내 뜻대로 될 리 없다.


그렇게 All or Nothing의 시기를 지나, 이제는 중간에서 중심을 잘 잡으려고 한다. 나는 어른스러운 서른이니까! 여전히 오랜 친구들과 티격태격하고, 안그럴 것 같던 사람들과 친해지지만. 그리고 사실은 여전히 All or Nothing 사이에서 혼동하지만.



아마 이 매거진은 아주 느리게 채워질 것 같다.

요 근래 나에게 카페란 커피 자체를 즐기기 위함이거나, 혼자서 생각을 정리하고 자기계발을 하거나, 그나마 회사 사람들과의 친목(?)에 쓰인다.


점점 카페를 누군가와 대화하기 위해 가는 경우가 적어진다. 진솔함에는 술이 유용하고, 어색함에는 먹는게 제격이기 때문이다. 나는 친구들과 맛집을 찾아가고, 새롭게 알게된 이들과 왁자지껄하게 술자리에서 친해지는 시간들이 여전히 좋고, 계속해서 그런 시간을 가질 예정이지만. 가끔은 카페에서 편한 이들과의 도란도란한 수다나, 약간은 거리감이 있는 상대와 서로의 취향을 물어보며 메뉴를 주문하고, 나의 어색함과 상대방의 조심스러움을 온전히 느끼며 조금씩 대화의 박자를 맞추던 시간들이 그리울 때가 있다.


(추천 BGM - 커피 한 잔 할래요 / 코맹맹이 소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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