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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독한PD May 28. 2021

기장 멸치 잡이 촬영 현장에서 느낀 것

독한PD 에세이

예전에 EBS 극한직업 <기장 멸치잡이> 편을 촬영하고 취재했을 때다.


기장 멸치잡이는 다른 고기잡이와는 다르게 고기를 잡았다고 해서 끝나는 게 아니다.

항구에서 탈망 작업. 즉 멸치를 터는 작업까지 해야 모든 작업이 끝난다.



그래서 항구에 들어와서도 선원들은 긴장을 풀 수 없다.


기장 멸치잡이는 탈망 작업이 하이라이트다. 2킬로미터나 되는 그물을 5~6명이서 새벽까지 털어낸다. 인간의 인내심과 오로지 깡다구(오기)로 4시간 동안 작업이 이어진다.


6~7명의 선원이 일렬로 서서 다 함께  멸치를 터는 일은 엄청난 육체적 노동을 요한다.

모 방송 프로그램에서 일명 '달인'으로 알려진 김병만 씨조차도 멸치 털이를 하다가 포기하고

눈물을 흘렸을 정도다.


멸치 털이는 어부들의 호흡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누구 하나라도 호흡이 맞지 않으면  다 같이 힘들어지는 작업이기에  일명 '어부의 노래'라 불리는 노동요를 부르며 멸치를 턴다.


'어여라 차이야, 어여라 차이야'


기장 항구에 어부들의 힘찬 노랫소리가 울려 퍼진다.



호흡이 맞도록 장단과 박자를 맞추기 위해 노래를 부르는 이유도 있지만, 선원들에게 흥을 내게 하기 위함이 더 크다. 극한의 노동을 흥으로 승화시키는 것이다.


장시간 멸치를 털다 보면 어느새 선원들의 몸과 얼굴에 멸치의 살과 내장으로 뒤범벅이 된다.


카메라 렌즈를 통해 일하는 어부들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뭔가 모를 찡하면서 울컥하는 느낌이 가슴에 전해졌다.


단순히 먹고살려고 이렇게 힘든 일을 하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멸치를 터는 어부에게서 '가장'이라는 이름으로 힘든 일을 감내하는 이 땅의 모든 아버지들의 모습으로 다가왔다.


'우리 아버지도 나를 키우려고 이렇게 힘든 일 마다하지 않고 하셨을까...'


여러 감정들이 교차했다.


잠시 쉬는 시간.


"힘드시죠?"


나의 질문에

웃으며 인터뷰해 주었던 한 선원의 대답이 기억에 남는다.


"저는 이날 이때까지 화장품을 발라본 적이 없어요. 진짜로. 멸치 기름이 얼마나 좋다고. 우리 아내 못 보는 게 그게 애환이에요. 바가지 안 긁어서 좋긴 좋은데..."



선원의 대답이 좋아 편집에 넣어 방송이 나가긴 했지만 몇 년이 흐른 후

이 인터뷰를 다시 곱씹어 보았다. 그리고 세 가지를 느낄 수 있었다.


첫째, 얼굴에 묻은 멸치 살과 내장을 화장품에 비유하며

긍정적으로 자신의 직업을 대하는 태도를


둘째, 아내 못 보는 게 애환이라며 짓궂게 말하는 선원의 유머를


셋째, 힘든 일을 함에도 웃음 짓는 여유를.


나도 이 선원처럼 되고 싶다. 일이란 게 쉬울 때도 어려울 때도 힘들 때가 있지 않던가.


힘든 상황에서 힘들다고 불평하지 않고

이번 기회를 통해 어떤 성장을 이뤄낼 수 있을지 긍정적인 태도를 가진 사람.


덤으로 힘든 상황을 유머와 여유를 무기로

일을 즐길 줄 아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기장 멸치 잡이> 편 방송 나간 지는 한참 되었지만 그 살아있는 현장에서 느꼈던 내 감정들은 지금도 생생히 기억되고 추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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