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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샐리 Sep 21. 2015

문래동 산책

철이 주는 따뜻한 위안


대학교 2학년 때였다. 매일 듣는 수업에 권태로움을 느끼고 난생 처음으로 땡땡이를 쳤던 날.



여자들은 봄을 많이 탄다는데, 나는 가을을 더 타는건지. 한 체제 속에서 묵묵히 최선을 다해 하루 하루를 보내다가도  얼마쯤 지나면 마음 한 구석에 그득히 눌러놓은 온갖 욕구들이 비집고 나와버린다.


"놀고싶어!" 하고



그렇게 처음 떠났던 곳은 인진강역이었고, 언덕 위에 빛바랜 채 돌아가는 바람개비들 속에서 나는 바람의 이동경로를 한참이고 주의 깊게 따라가보았다. '내가 너처럼 자유로울 수 있다면 어떨까'





다시 마음을 잡고 공부를 시작했던 건 7월부터였고, 이번에야말로 해내고야 말겠다는 꾸준한 의지와 열정은 9월 중반 쯤에 조금씩 풀려만 갔다. 가을이니까. 또 행정학은 좀 지루한 과목이니까. 그래서 나도 모르게 마음 속에 폭폭 눌러 담겨있던 일탈 욕구를 가을을 탓하며 슬쩍 꺼내본다.



좋아, 3시간만 다녀올게

문래동 예술촌으로.




사진을 찍는 것도 오랜만이라 길거리에서 핸드폰을 꺼내 뭔가를 찍는 게 어색했다. 곱창구이집보다 이쁜 카페가 찍혔다면 더 좋았겠지만 그래도 그래도.






드륵드륵 챙챙 소리가 나던 철공소들 사이에 조목조목 골목들이 나 있고, 그 속에도 젊은 예술가들이 혹은 철공소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방울방울 맺혀있었다




차가울 것 같은 허수아비야 내게 무슨 말을 해주고 싶니?





이쁜 아뜰리에와 베이킹연구소, 뮤지션들의 아지트 골목이 이렇게 이쁘게 길을 내주었고, 골목 초입의 가게에서 나는 향초냄새가 잠시 철공소의 매캐한 냄새를 가려주었다.






김 00여사님이 기증하신 꽃이 담긴 리어카를 보며 함박 웃을 수밖에






이렇게 3시간 동안의 문래동 산책

가을에 예술가들의 공간에 잠시나마 내가 있었노라는 위안을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걸로 3개월 쯤은 더 버텨줄 수 있을까.

가을이 가고 겨울이 오면 다시 찬 바람에 정신이 번쩍 들어서 이 글을 보며 웬 감성팔이였나 싶으려나.



아무튼간에 차가운 철이 따뜻한 위안으로 바뀌었던 내 소중한 산책 시간이었음은 인정할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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