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이 주는 따뜻한 위안
대학교 2학년 때였다. 매일 듣는 수업에 권태로움을 느끼고 난생 처음으로 땡땡이를 쳤던 날.
여자들은 봄을 많이 탄다는데, 나는 가을을 더 타는건지. 한 체제 속에서 묵묵히 최선을 다해 하루 하루를 보내다가도 얼마쯤 지나면 마음 한 구석에 그득히 눌러놓은 온갖 욕구들이 비집고 나와버린다.
"놀고싶어!" 하고
그렇게 처음 떠났던 곳은 인진강역이었고, 언덕 위에 빛바랜 채 돌아가는 바람개비들 속에서 나는 바람의 이동경로를 한참이고 주의 깊게 따라가보았다. '내가 너처럼 자유로울 수 있다면 어떨까'
다시 마음을 잡고 공부를 시작했던 건 7월부터였고, 이번에야말로 해내고야 말겠다는 꾸준한 의지와 열정은 9월 중반 쯤에 조금씩 풀려만 갔다. 가을이니까. 또 행정학은 좀 지루한 과목이니까. 그래서 나도 모르게 마음 속에 폭폭 눌러 담겨있던 일탈 욕구를 가을을 탓하며 슬쩍 꺼내본다.
좋아, 3시간만 다녀올게
문래동 예술촌으로.
이렇게 3시간 동안의 문래동 산책
가을에 예술가들의 공간에 잠시나마 내가 있었노라는 위안을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걸로 3개월 쯤은 더 버텨줄 수 있을까.
가을이 가고 겨울이 오면 다시 찬 바람에 정신이 번쩍 들어서 이 글을 보며 웬 감성팔이였나 싶으려나.
아무튼간에 차가운 철이 따뜻한 위안으로 바뀌었던 내 소중한 산책 시간이었음은 인정할 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