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빅캣 레스큐 센터
대형 고양잇과 동물들을 보호하는 곳이 있다는 이야기는 캥거루 구조센터에서 만난 미국인 친구로부터 들었다. 그 친구는 거기서 자원봉사를 하고 싶어 수의사인 나에게 추천인 서명을 부탁했다. 기꺼이 해주었지만 결국 집안일로 못 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야생동물 구조센터들 중에서도 한 종류의 동물에 집중하는 곳에 관심이 있던 터라 이번 플로리다 여행에 빅캣 레스큐를 포함시켰다.
외부인 방문을 제한하고 있기 때문에 사전에 인터넷으로 투어를 신청했다. 여러 투어가 있었는데 훈련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지만 더 비싸고 시간이 안 맞아서 아침 9시에 시작하는 먹이주기를 60달러 내고 신청했다. 차를 타고 도착해 대기실로 들어갔다. 설치된 TV와 인터넷을 통해 24시간 라이브로 동물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사진 찍는 것도 허용했다. 동물을 어떻게 돌보는지 숨기지 않는 곳이라는 믿음이 갔다.
봉사자와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갔다. 따뜻한 플로리다라서 그런지 내실은 없이 외부 방사장만 있었다. 동물들이 있는 곳은 허름해 보였다. 안에는 올라갈 나무, 그늘과 푹신한 흙바닥도 있어 필요한 것은 기본적으로 갖췄고 오히려 겉보기에 치중하지 않는 것 같았다. 다만 사방이 트여 있는 케이지가 몇 개 있어 숨을 곳을 마련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먹이주기는 예상한 대로 봉사자가 동물들에게 먹이 주는 모습을 보는 것이었다. 이런 곳에서 방문자가 직접 먹이주기를 하도록 허용할리 없었다. 소, 닭, 양, 토끼, 쥐 등 동물들의 식성과 상태에 따라 다양한 고기를 준비해 왔다. 아침에 한 번 먹이 대부분을 주고 일부는 풍부화나 훈련을 통해 주며, 먹은 양은 매일 기록해 건강을 확인한다고 했다.
그곳에는 호랑이, 표범, 스라소니, 밥캣 등 70여 마리의 고양잇과 동물들이 있었다. 봉사자는 먹이를 주며 각 동물의 사연을 이야기해주었다. 칼리는 열악한 환경의 생추어리에서 2년 전 구조한 호랑이였다. 이름만 생추어리인 곳을 조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생추어리 sanctuary'는 성역 또는 피난처다. 고통스럽고 위험한 상황에 놓인 야생동물을 구조해 안전하게 보호하는 곳을 의미한다. 그런데 생추어리라면서 새끼를 번식시켜 팔거나 사진을 찍는 데 이용하는 등 돈을 벌기 위해 운영하는 천하에 몹쓸 짓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백호 자부는 서커스 공연장에서 태어났다. 백호가 야생에서 태어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현재 동물원에 있는 거의 모든 백호는 근친교배의 결과다. 이 과정에서 덜 하얀 백호들도 태어나는데, 사람들이 순백의 백호를 원하기 때문에 완전히 하얀 백호만 챙기고 나머지는 버려진다. 자부는 근친으로 유전적 결함이 있어 윗입술이 짧고 이빨이 밖으로 드러난 부정교합이었다.
길가 동물원(roadside zoo)에서 구조한 호랑이 앤디도 있었다. 길가 동물원은 주로 외곽 지역 도로변에 있어 이렇게 불린다. 가짜 생추어리도 이에 속한다. 동물이 사는 환경은 매우 열악하다. 좁은 철장에 갇혀 적절한 먹이도 공급받지 못하고 치료도 받지 못한다. 이를 운영하는 사람들은 제대로 된 교육도 받지 않고 동물들을 관리한다. 눈요기를 위해 동물들을 학대하며 훈련시켜 웃음거리로 만든다.
이는 야생동물 소유에 대한 법이 엄격하지 않아 야생동물을 쉽게 사고팔 수 있기 때문에 일어난 문제였다. 대형 고양잇과 동물의 수명은 10~20년이다. 한 마리를 키우는 데 1년에 만 달러가 든다. 사람들은 소유욕과 과시욕으로 이런 동물들을 사들인다. 모피, 애완용, 사냥, 서커스 등에 이용하다 죽이거나 팔아넘긴다. 빅캣 레스큐 설립자 캐럴 배스킨은 평범한 부동산 사업자였는데 1992년에 한 박제사가 경매에서 산 밥캣을 구조하면서 현실에 눈을 떴다. 1년 후에는 모피 농장에서 밥캣과 스라소니 56마리를 데려와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 미국에서 대형 고양잇과 동물 모피 시장은 사라졌다. 2003년에는 빅캣 레스큐의 노력으로 사육 야생동물 안전법이 통과됐다. 그 결과, 대형 고양잇과 동물이 주 또는 나라 밖으로 이동하지 못하게 됐다. 적법한 시설을 갖춘 곳으로는 보낼 수 있다. 단, 동물을 팔지 않고 번식하지 않으며 사람과 동물이 직접 접촉을 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지켜야 한다. 현재 미국 내 19개 주에서 이런 동물들의 사적 소유가 불가능하며 이를 위해서는 등록이나 신고가 아닌 '허가'를 받아야 한다.
등록과 허가의 차이는 크다. 우리나라에서도 동물원을 만들 때 허가가 아닌 등록만 하면 됐다. 정확한 기준도 없어 야생동물이 살기에 부적합한 시설이 많았다. 동물원에서 일할 때 쉬는 날이 되면 국내 다른 동물원을 포함해 동물을 전시하는 곳을 찾아 돌아다니곤 했다. 대구의 한 체험 동물원을 가니 사자가 원룸보다 작고 텅 빈 실내에 누워있었다. 풀도 흙도 없는 삭막한 공간이었다. 그 안에는 동물 말고 아무것도 없었다. 사자의 눈은 공허했다. 그런 눈은 도처에 널려 있었다. 그리고 언제부턴가 카페라는 이름을 딴 실내 동물 체험 시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지인에게 왜 가냐고 물으니 미세먼지 때문에 아이들을 데리고 갈 데가 없다고 답했다.
그곳의 동물들의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는지, 왜 그런 환경에 야생동물이 있으면 안 되는지, 아이가 동물을 대하는 데 어떤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지, 인수공통 전염병 가능성까지 이야기하고 미세먼지를 원망하려다 엉성한 법이 개탄스러웠다. 애초에 생기지 않았으면 가지도 않았을 거 아닌가.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야생동물 카페들이 야생동물을 전시하면서 반려동물 판매업, 반려동물 전시업 등으로 신고한 채 운영됐다. 다행히 2021년부터 우리나라의 동물원 등록제는 허가제로 바뀌었고 사육 환경을 평가하는 전문 검사관 제도 도입된다고 한다.
빅캣 레스큐를 모두 둘러본 후, 봉사자는 대형 고양잇과 동물을 위한 공공 안전법이 통과될 수 있도록 지지를 부탁했다. 이는 사자, 호랑이, 표범, 치타, 재규어, 퓨마와 이런 동물들의 잡종을 애완용으로 소유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이다. 법이 통과되면 새끼를 만지고 먹이를 주고 사진을 주는 등의 행위도 할 수 없다. 현재는 법안이 제출되어 표결을 기다리는 중이다.
왜 사람들이 자꾸 야생동물을 잡아 가두고 새끼와 사진을 찍고 먹이를 주고 키우고 싶어 하는지 생각해 봤다. 2020년 초쯤부터 다큐멘터리 '타이거 킹'이 미국에서 화제였다. 오클라호마주의 그레이터 위니우드 익조틱 애니멀 파크를 운영하던 조 익조틱이라는 남자와 빅캣 레스큐 설립자 캐럴 배스킨의 대결 구도를 그렸다. 조 익조틱의 동물원이야말로 생추어리를 표방하고 동물을 이용한 대표적 예다. 이 다큐멘터리는 대형 고양잇과 동물들을 둘러싼 인간들의 모습을 담았다. 캐럴 배스킨 또한 이상한 사람으로 그려졌지만 이 진정한 풍자극의 주인공은 조 이그조틱이었다.
그는 호랑이와 사자 곁에 있는 자기 자신에 완전히 도취되었고 미쳐버렸다. 자아상이 한없이 초라해 호랑이와 사자의 탈을 뒤집어쓴 것처럼 보였다. 어떤 이들은 동물에게서 돈 냄새를 맡는다. 그런데 이 사람은 권력의 냄새 또한 맡았다. 호랑이 옆에 선 자신을 우러러보는 듯한 시선을 느꼈을 것이다. 불타는 링을 뛰어넘는 사자와 앞발을 드는 코끼리 앞에는 그 동물들을 조련하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었다. 사람들은 동물을 보고 감탄하며 그런 동물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조련사에게 박수를 보냈다. TV에 나와 귀여운 아기 호랑이와 원숭이를 품에 안고 젖병을 물리거나 다 큰 사자와 친구처럼 지내는 사육사는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다. 한동안 유행처럼 나오던 모습이었다.
아주 오랜 옛날에는 우리가 미처 다가가지 못했던 야생동물이, 사람이 하라는 데로 움직이고 의존하는 모습은 어떤 감정을 불러오는 게 분명하다. 표면적으로는 동물이 뛰어난 지능을 가져 저런 행동을 한다고 말한다. 또는 동물과 사람 간의 교감이라 부른다. 어미로부터 ‘버려진’ 동물의 꺼질듯한 생명을 구하는 것도 인간이다. 사람들의 시선은 동물을 지나 그들을 다루는 사람에게 가기 마련이다. 그 시선이 권력을 만든다.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그렇게 대단하게 보이며 ‘나도 하고 싶게’ 만든다. 최근 중동 부호들이 유행처럼 치타를 애완용으로 키우며 과시하는 것도 과시욕 때문이다.
조 이그조틱은 동물을 배경으로 자신이 만든 무대의 주인공이 되고 싶었으나 결국 파멸해 감옥에 갇혔다. 동물 카페 같은 곳에 가서 동물과 사진 찍고 동물을 만지며, 체험 동물원에 갇힌 사자를 보며 현실을 벗어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은 나의 욕심과 함께 그런 이들의 탐욕을 채운다. 그리고 본인의 욕심으로 희귀한 야생동물을 해외에서 수입해 집에 데려와 키우고 자랑하고 그 모습을 미디어가 흥밋거리로 소비해 내보내는 것 모두 동물들에게 고통을 준다. 야생동물은 애완동물도 반려동물도 아니다.
그렇다면 왜 야생동물을 키우면 안될까? 간단히 말해, 야생동물은 가축화되지 않은 동물이다. 개, 고양이, 소, 양, 말, 돼지, 닭 같은 동물은 오랜 시간 동안 인간과 공생하고 또는 인간에게 이용되며 행동적, 유전적 변화를 거쳤다. 인간은 야생동물을 길들이거나 그들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다양한 야생동물을 가축화하려는 시도가 실패로 돌아갔다. 예를 들어, 말은 가축화되었지만 얼룩말은 가축이 되지 않았다. 야생동물을 원래 살아오던 서식지가 아닌 환경에 가두어 두고 인간의 방식대로 다루면 정신적, 신체적 고통을 겪는다. 이는 정형행동, 공격성, 질병 등으로 나타난다. 동물원에서 야생동물을 보고 무심히 내뱉은 ‘키우고 싶다.’는 말이 현실이 되면 동물들에게는 비극이 찾아온다.
동물원에서 일할 때 가장 받기 싫었던 전화는 키우던 동물을 기증하고 싶다는 사람들의 전화였다. 동물을 키울 사정이 안되니 동물원에서 받아달라는 말이었다. 동물은 토끼, 거북이, 이구아나 등 다양했고 그 사정이란 군대를 가거나 이사를 가거나 동물이 너무 커버려서라는 이해하지 못할 것들이었다. 실제 한 TV 프로그램에 연예인이 나와 파충류를 키우고 있는데 너무 크면 동물원에 줄거라는 말을 너무 쉽게 하기도 했다. 동물원은 그런 동물을 모두 받기에 한계가 있다. 새로운 동물과 기존의 동물이 처음부터 평화롭게 살거란 기대도 착각이다. 또한 바뀐 환경에 적응을 못해 큰 스트레스를 받고 죽을 수도 있다. '기증'이라는 말은 동물을 버릴 때 쓰는 말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