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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모 Feb 24. 2022

‘로봇 앤 프랭크’, 소통과 기억의 휴머니즘

 

[유진모 ybacchus@naver.com] ‘로봇 앤 프랭크’(제이크 슈레이어 감독, 2012)는 로봇이 나오지만 SF나 액션이 아닌, 잔잔한 드라마이다. 그럼에도 나름의 스릴과 반전으로 의외의 재미와 훈훈한 감동까지 안겨 준다. 로봇이 생활화된 근미래. 금고털이범이었던 프랭크(프랭크 란젤라)는 치매에 걸린 채 혼자 시골에서 살고 있다.


딸 메디슨(리브 타일러)은 여행 다니느라 바빠 전화로 안부를 묻고 주말에만 아들 헌터(제임스 마스던)가 왕복 10시간을 투자해 프랭크를 찾아온다. 아내와는 오래전에 이혼했다. 프랭크의 취미는 읍내 도서관에서 빌려 온 책을 읽는 일. 그런데 한 사업가가 인수해 책을 없애고 디지털화하고 있다.


프랭크는 사서 제니퍼(수잔 서랜든)에게 호감을 갖고 있다. 헌터가 더 이상 자주 찾아오지 못하겠다며 로봇(목소리=피터 사스가드)을 사 준다. 처음에는 자신을 병자 취급하는 것도, 로봇 자체도 못마땅했던 프랭크는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로봇이 꽤 스마트한 데다 말동무가 되어 주어 호감을 갖는다.


그는 ‘손맛’을 잃을까 봐 자물쇠를 따다가 로봇이 놀라운 솜씨를 발휘하는 걸 발견한다. 제니퍼에게 선물할 요량으로 로봇과 함께 밤에 도서관에 침입해 ‘돈키호테’를 훔치지만 돋보기를 놓고 나오는 실수를 범한다. 그래서 도서관 후원금 유치 파티에 갔다 그를 도둑으로 확신한 사업가에게 홀대를 받는다.

이래저래 사업가가 미운 프랭크는 아예 그의 집을 털 작정을 하고 주도면밀하게 준비를 한 끝에 드디어 그의 아내의 보석들을 훔치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사업가가 경찰을 대동한 채 그의 집에 나타난다. 경찰은 집요하게 추궁하고, 집을 뒤지지만 증거물을 못 찾자 로봇 메모리를 회수하려 하는데.


소통과 기억의 중요성, 아날로그 정서와 디지털 정서의 조화가 가장 큰 메시지이다. 인간의 생활은 나날이 ‘강하게’ 디지털화되어 가고 있다. 조류의 변화에는 발을 맞추고 적응해야 하는 게 마땅하지만 때로는 버리지 말아야 할 ‘과거’도 있고, 현재는 물론 미래에도 적응시켜야 할 유산도 있기 마련.


암만 가치관이 바뀌어도 보석의 값어치는 변하지 않는다는 설정이 대표적인 아날로그 정서의 유지이다. 프랭크가 책과 보석을 훔치는 건 훌륭한 책이 보석과 등가의 가치를 지닌다는 메시지이다. 게다가 ‘돈키호테’라니! 날로 삭막해지는 이 세상에서 때로는 그처럼 순수한 사람이 보석같이 빛난다는 은유!


여기서 절도는 상식적인 법 적용의 테두리가 중요하지 않다. 홍길동이나 로빈 후드의 의적 활동과도 차원이 다르다. 고전 걸작이라는 ‘돈키호테’ 원본은 그러나 언제 먼지가 되어 대기 속으로 사라질지 모른다. 절도의 유죄 여부를 떠나 그 가치를 제대로 아는 사람에게 가는 게 이 책의 행복이 아닐까?

다이아몬드의 가치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그저 돌덩어리에 불과하듯. 모든 나라가 오래된 유물과 유적 보존과 전시를 위해 박물관에 투자하는 건 그만큼 그것들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과거가 없는 현재와 미래는 있을 수 없는 것. 그러한 신구의 조화는 개개인의 기억과 서로 간의 소통에 의해 이루어진다.


경찰이 로봇의 메모리를 회수하려 하자 프랭크는 헌터의 차를 이용해 로봇과 함께 달아난다. 로봇이 프랭크에게 자신의 메모리를 리셋해서 기억을 지우면 간단하게 해결된다고 말하지만 프랭크는 그럴 수 없다고 한다. 그렇게 되면 로봇의 그에 대한, 그동안의 좋은 추억들이 모두 지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조차도 영리하게 ‘진화한 AI를 인간과 동등한 생명체(인격체)로 인정해야 할지.’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처음에는 디지털 환경이 싫다고 로봇을 거부했던 프랭크는 그 누구보다 로봇의 ‘인격’을 지켜 주려 애쓴다. 메디슨이 로봇의 전원을 껐다, 켰다 하자 나무라며 항상 켜 놓게 만드는 게 대표적.


‘블레이드 러너’, ‘매트릭스’ 등 많은 SF 영화들이 존재자들의 기억을 조작하거나 심는 설정으로 암울한 디스토피아를 그렸다면 이 작품은 로봇의 기억조차도 존중해 줌으로써 인간의 추억의 소중함을 웅변한다. 프랭크가 치매에 걸렸지만 그걸 인정하려 하지 않는 것은 기억이 정신의 대부분이라는 뜻.

사람은 혼자 살기 힘든 종이다. 살아갈 수도, 살아질 수도 있겠지만 최고의 윤택과 행복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마음이 맞는 사람, 좋아하는 사람과 소통해야 행복에 근접해진다. 프랭크와 로봇처럼 기억을 공유한다면 더욱 그렇다. 프랭크는 젊었을 때 ‘일’에 바빠 자녀와 소통하지 못했다는 상처가 있다.     


치매는 그에 대한 업보였던 것. 많은 사람들이 본인이 되었든, 가족이 되었든 가장 힘든 병으로 무서워하는 게 치매이다. 발병자든, 가족이든 정신적으로 가장 힘들기 때문이다. 젊은 사람 중 술에 취해 기억 못 하는 실수를 한 뒤 깨어나서 그걸 알았을 때 엄청나게 괴로운 상황을 상상하면 이해가 쉽다.


사람은 기억으로 오늘을 살며, 내일을 기획한다. 또 추억으로 오늘을 이겨내며, 내일을 희망한다. 선험성이란 경험이 아니라 선천적으로 물려받은 성질을 뜻한다. 그건 ‘통섭’의 후성 규칙이고, ‘종의 기원’의 자연 선택(적자생존)이다. 선험적이든, 경험적이든 기억이 인간을 만들고, 추억이 지속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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