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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모 May 07. 2022

‘보통사람’, 한국 현대사 읽기의 불후의 전범

[유진모 ybacchus@naver.com] ‘보통사람’(김봉한 감독)은 2017년 3월 개봉 당시 515만여 명의 ‘미녀와 야수’, 292만여 명의 ‘프리즌’, 217만여 명의 ‘로건’, 168만여 명의 ‘콩: 스컬 아일랜드’ 등에 가려져 비록 38만여 명밖에 동원하지 못했지만 영화계와 관객 모두에게 찬사를 받은, 한국 현대사를 해부한 걸작 중 하나로 손꼽힌다.


1987년. 서울 청량리 경찰서의 강력계 형사 성진(손현주)은 자신의 박봉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자 봉투를 붙이는 농아 아내(라미란), 초등학생 아들 민국과 함께 허름한 집에서 살지만 국가를 위한 사명감만은 투철하다. 그의 소원은 아들의 다리를 고쳐 주는 것과 반듯한 이층집으로 이사를 가는 것.


그는 연쇄 살인범일 가능성이 있는 어리바리한 용의자 태성(조달환)을 잡는다. 안기부 실장 규남(장혁)이 그를 호출해 태성에 대한 연쇄 살인 증거를 던지며 태성에 대한 사건을 잘 매조질 것을 명령한다. 성진은 신참 동규(지승현)와 함께 태성을 연쇄 살인범으로 조작하는 데 매진한다. 다시 규남이 부른다.


그 자리에는 규남의 상사인 차장(조만식)이 동석한다. 차장은 성진의 사연을 듣고 의사를 소개해 주며 치료비까지 주는가 하면 차량도 내어준다. 성진의 가장 친한 친구는 자유일보 기자 재진(김상호). 사진 기자 선희(오연아)와 파트너인 그는 평화의 댐의 진실을 파헤치려 하는 등 기자로서의 소신이 강하다.

재진은 성진에게 진범의 시체를 보여 주며 태성이 연쇄 살인범이 아님을 주장한다. 재진은 안기부의 추적을 받자 잠적한다. 규남이 성진을 불러 재진을 놓고 거래를 제안한다. 재진이 성진의 집에 나타나자 성진은 그를 재운 뒤 규남에게 전화를 건다. 그러나 거래와 달리 재진은 사체로 발견되는데.


2017년 12월 장준환 감독의 ‘1987’이 개봉되어 723만여 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보통사람’은 비록 많은 관객과 만나지 못했지만 ‘1987’의 서막이라고 할 수 있는, 우리 역사와 영화사에서 매우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받아 마땅하다. 그만큼 1987년은 대한민국에서 매우 중요한 한 해였기 때문이다.


그 해는 전두환 정권의 마지막 해. 그가 4월 13일 호헌 조치를 발표하자 시민들이 거리로 뛰쳐나와 ‘호헌 철폐’와 ‘독재 타도’를 외치던 때. 바로 암울했던 그 시대상을 성진, 재진과 선희, 그리고 규남이라는 인물들로 그려 내고 있는 것. 단순한 구조이지만 할 말은 다 하는 감독의 역량이 뛰어나다.


성진은 가족이 제일 소중한 가장이다. 그래서 제 일에 최대한 열과 성을 다한다. 그래야 승진해서 더 많은 급여를 받으니까. 규남은 권력을 위해서라면 물불을 안 가리던 당시의 권력형 부패 세력이다. 공권력으로 자신의 아성을 더욱 공고히 하면서 그렇게 얻은 검은돈으로 부하들을 개처럼 부린다.

재진과 선희는 그런 부조리한 세태를 제대로, 널리 알려 정당한 세상을 만드는 데 일조하고픈 언론이다. 그게 언론의 제1 차 사명이다. 성진이야말로 가장 보통의 사람이다. 그래서 나쁜 일인 줄 알면서도 규남의 명령을 수행했던 것이다. 하지만 재진의 무참한 죽음을 목도하고 인간의 도리를 깨닫는다.


민국은 툭하면 친구들에게 폭행을 당한다. 어느 날 우연히 그걸 목격한 성진은 “상대방이 때리면 맞받아 때려야지 왜 가만히 있니?”라고 훈계하지만 민국은 “그래야 빨리 끝나.”라고 패배주의적 태도를 견지한다. 그건 바로 당시의 우리 국민을 빗댄 것. 군사 독재 앞에서 숨죽였던 대다수를 말한다.


물론 모든 공권력에 군사력까지 앞세운 독재 앞에서 국민은 무기력할 수밖에 없었다. 국가보안법 위반 등으로 검찰이 조작한 자술서에 지장을 찍을 수밖에 없는 나락으로 떨어진 성진이 “그래야 빨리 끝난다.”라고 자포자기하는 시퀀스는 독재에 협조하면 자신의 폭력이 부메랑이 되어 자해한다는 의미.


청량리 경찰서에는 ‘열 명의 피의자를 놓치더라도 한 명의 인권을 존중한다.’라고 적힌 큰 액자가 걸려 있다. 그러나 그건 당시 경찰이 그렇지 않았다는 조소에 다름 아니다. 경찰서의 백구는 매우 의미 있는 미장센이다. 학생들을 잡아들이며 권력의 앞잡이 노릇을 하는 성진을 보고 백구는 짖는다.     

두 번째도 짖는다. 하지만 성진이 변해 가자 꼬리를 흔들며 반긴다. 그리고 얼마 후 동료들이 그걸 잡아먹는 걸 발견한 성진은 “앞마당은 누가 지켜?”라고 분노한다. 동료들은 정권의 개였다. 백구는 그런 개만도 못한 권력의 노예들로부터 앞마당(최소한의 인권)이나마 지켜 주려던 최소한의 양심인 것.


모든 공무원이 청렴하고 도덕으로 무장되어야 마땅하겠지만 판사, 검사, 경찰은 특히 그렇다. 그런데 대다수 국민의 그들에 대한 신뢰도는 매우 낮다. 정권의 하수인 역할을 해 왔기 때문이다. 성진이 수배범을 체포하자 반장이 공로를 빼돌린다. 그런 반장과 규남이 당시 적지 않은 공무원의 진면목이었다.


재진은 자신을 “상식이 통하는 세상에 살고 싶은 보통 사람.”이라고 외친다. 규남은 “세상은 단 한 번도 바뀐 적이 없어.”라며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한다. 이 작품이 해피 엔딩을 가장한 새드 엔딩인 건 마지막 시퀀스 때문. 성진은 30년 후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는데 판사들 틈에 규남이 앉아 있다.


그렇다고 공권력을 아주 나쁘게만 묘사한 건 아니다. 알고 보니 동규는 규남의 끄나풀이지만 성진을 구해 준다. 시민들이 광화문 광장에 운집하고, 전경이 그들 앞을 가로막자 선희가 재진의 영정 사진을 장식한 꽃들 중 한 송이를 한 전경의 포켓에 꽂아 준다. 전경 뒤에서 동규가 멋쩍은 표정을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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