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모 ybacchus@naver.com] 헤비메탈 밴드 시나위의 리더 신대철이 나훈아를 비판해 눈길을 끌고 있다. 나훈아는 코로나19가 진정되기는커녕 대확산세를 보이는 지난 16~18일 대구 엑스코에서 사흘간의 공연을 예정대로 강행군했다. 회당 4000석 규모로 하루 두 차례씩 6회가 열려 총 2만 2000여 명이 관람했다.
나훈아는 이뿐만이 아니라 오는 23일부터 25일까지 부산 벡스코 전시장에서도 콘서트를 열 예정이었다. 하지만 지난 21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22일 0시부터 8월 1일까지 비수도권의 비정규 공연 시설에서 개최되는 실내외 공연은 모두 금지된다.”라며 부산 공연을 금지하면서 무산되었다.
21일 신대철은 자신의 SNS에 “나훈아 대선배님, 참 부럽습니다. 후배들은 겨우 몇 십 명 오는 공연도 취소하고 있습니다. 소크라테스 왈 ‘어려서 겸손해져라, 젊어서 온화해져라. 장년에 공정해져라, 늙어서는 신중해져라’라고 했다는데. 가왕이라 한번쯤 자제하는 미덕 따위 필요 없으신가요?”라고 따끔하게 쏘아붙였다.
또한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최대를 기록하고 있는 비상시국입니다. 그래도 공연을 하시겠다면 힘없고 못나가는 후배들이 뭐 어쩔 도리는 없습니다만. 신청곡 한 곡 부탁드립니다. 다음번에는 ‘백만송이 장미’도 불러 주세요. ‘테스형’과 같이 부르시면 딱입니다. 따로 연습할 필요도 없을 겁니다. 같은 곡이니까요.”라고 덧붙였다.
신대철은 우리나라 록의 대부라고 불리는 신중현의 아들로 그의 동생인 윤철과 석철도 뮤지션으로 활동해 왔다. 특히 신대철은 우리나라 헤비메탈의 1세대로서 시나위를 이끌며 헤비메탈 발전과 보급에 남다른 공헌을 해 왔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그는 쓴소리를 거침없이 내는 ‘소셜테이너’로도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특히 대기업이 뮤지션들의 음원 수입을 ‘착취’하다시피 하는 업계의 관행에 대해 누구보다 앞서 거침없는 개혁의 몸짓을 보여 왔다. 이번의 나훈아에 대한 지적은 아직도 사회 곳곳에 ‘도제 시스템’과 선후배의 서열 문화가 잔존한 우리네 정서상 하극상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올 수도 있지만 만약 그렇다면 그건 극명한 시대착오적 발상이다.
연장자가, 혹은 선배가 반드시 옳을 수는 없다. 요즘 보면 오히려 나잇값을 못 하는 나이 지긋한 사람이 어렵지 않게 눈에 띄곤 하니 이제 그런 구시대적 나이 서열 문화는 지워 버리는 게 마땅하다. 직계 가족이 아니 바에야. 더군다나 대중가요 가수들처럼 상업적으로 치열하게 경쟁해야 하는 ‘정글’에서 나이로 서열을 따진다는 건 개가 하품할 일이다.
게다가 신대철의 지적은 매우 적확했고, 적절했으며, 정당했다. 그의 일갈은 단순히 나훈아만을 향한 게 아니라 코로나19에 대한 대처가 미더움을 주지 못하는 정부 당국에 대한 항의였다는 점에서 눈여겨볼 가치가 충분하다. 방역의 기준이 일관성과 당위성 문제에서 우왕좌왕하기 때문이다.
소수의 관객이 입장하는 공연은 막으면서 4000명이 들어오는 나훈아의 공연은 허가하는 비현실적인 정책에 대한 엄중한 비판인 것이다. 나훈아는 이번에 선후배를 떠나 동종 업계의 동료에게 한방 제대로 맞았다. 그는 지난해 코로나19로 지친 국민들을 위로한다며 KBS2 ‘나훈아 쇼’에 노 개런티로 출연해 많은 시청자들에게 위로를 안겨 주며 환호를 이끌어 낸 바 있다.
그는 TV에 잘 출연하지 않는 대표적인 대형 가수이다. 그래서 그의 방송 출연료는 일반 가수들이 상상도 할 수 없는, 높은 액수로 유명하다. 그가 의도했건, 그렇지 않건 그러한 희소가치 때문에 그의 콘서트는 항상 만원을 이룬다. 입장료도 만만치 않다. 그런 나훈아가 자신의 이름을 내건 TV 쇼에 돈 한 푼 받지 않고 출연했다. 전 국민의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가 쏟아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는 서민들만 억울한 이 세상을 한탄하는 신곡 ‘테스형’을 발표해 다시 한 번 환호를 이끌어냈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는 서민들을 위로하고 위무하는, 서민들의 통증을 가장 잘 이해해 줄 줄 아는 스타이자 친구였다. 그러나 이번 대구 콘서트와 무산된 부산 콘서트로 그에 대한 기존의 이미지와 신뢰도는 무너졌다.
신대철의 일갈이 그걸 뒷받침해 줬다. 나훈아는 싱어 송 라이터이기 때문에 공연 개런티 외에도 엄청난 저작권료를 매달 정기적으로 받는다. 그냥 한마디로 그는 부자이다. 만약 그가 진정한 서민의 친구를 자처했다면 이 위험한 시국에 거창한 대형 콘서트를 열 게 아니라 소규모 단위로 지방자치단체의 코로나19 관련 공무원이나 자원 봉사자들부터 위로하는 자원 무료 공연을 펼쳤어야 마땅했다.
과연 그는 소크라테스를 알기는 하는 걸까? 소크라테스는 생전에 저작을 단 한 줄도 남기지 않았기 때문에 그를 알 수 있는 경로는 플라톤이 남긴 저서가 유일하다. 구전도 있기는 하지만 2400년도 훨씬 넘은 세월동안 소문은 각색되고 윤색돼 본질과는 멀어져도 한참 멀어졌을 테니.
그에 관한 자료와 플라톤에 의하면 그는 최초의 불가지론자이다. BC 5세기부터 독약을 마시고 사망하던 BC 399년까지 그가 남긴 가장 유명한 말은 “내가 아는 단 한 가지는 내가 아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였다. 그는 당시 얄팍한 말재주로 먹고살던 소피스트들을 말솜씨로 무너뜨리며 살 정도로 달변가이자 유니크한 지식인이었다.
그런 그조차도 세상은 넓고 지식과 지혜의 세계는 무한해 우리네 인간은 아는 게 별로 없으니 자신도 무식할 따름이라고 했다. 그는 돈 많은 친구가 간수를 매수해 탈옥시키려 했으나 단호하게 거부하고 독배를 들었다. 이유는 만약 그렇게 한다면 지금까지의 자신의 주장이 모두 거짓이었음을 시인하는 행동이라는 것.
이 말의 행간에 숨은 뜻을 현대적으로 해석하자면 ‘쪽팔리면서까지 살기는 싫다’ 정도일 것이다. 신대철의 단호한 지적과 비판은 바로 그런 내용이 아닐까? ‘테스 형, 세상이 왜 이래?’라는 가사보다 소크라테스라고 하면 떠오르는 키워드 ‘너 자신을 알라’가 더 강하게 연상되는 신대철의 테제이다.
신대철의 마지막 ‘신청곡’ 발언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그는 ‘백만송이 장미’와 ‘테스형’을 같은 곡이라고 명토 박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