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모 ybacchus@naver.com] ‘특송’(박대민 감독)은 제이슨 스타뎀 주연의 ‘트랜스포터’ 트릴로지와 뤽 베송 감독의 ‘레옹’에서 적당히 영감을 얻은, 작정하고 재미를 추구하는 상업 영화이다. 부산. 백 사장(김의성)의 백강산업은 겉으로는 폐차 처리 회사이지만 사실은 불법과 연루된 사람 혹은 물건 등을 특별하게 운반해 준다.
백강의 베스트 드라이버는 탈북민 출신 은하(박소담). 그녀는 프로 야구 선수 출신 두석(연우진)과 그의 아들 서원(정현준)의 특송 임무를 맡게 된다. 베테랑 형사인 경필(송새벽)은 공권력을 이용해 깡패 조직을 거느리고 두식을 앞세워 프로 야구 승부 조작으로 300억 원의 불법 자금을 조성해 왔다.
그런데 두식이 그를 배신하고 그 자금의 은행 보안 열쇠를 빼돌려 해외로 도주하려 하는 것. 그 사실을 안 경필은 두식의 은신처를 급습해 그를 잡지만 보안 열쇠를 들고 튄 서원은 미처 놓친다. 은하는 서원의 이상함 낌새를 느끼고 망설이지만 어린 그를 외면할 수 없어 결국에는 차에 태운다.
할 줄 아는 건 운전밖에 없는 나약한 은하와 어린 서원은 공권력은 물론 어둠의 조직까지 갖춘 경필, 그리고 국가정보원의 추적을 피해 필사적인 도주를 거듭하는데. 대표적인 걸크러시 한국 영화라고 하면 김옥빈의 ‘악녀’(정병길 감독, 2017)와 김다미의 ‘마녀’(박훈정 감독, 2018)를 들 수 있겠다.
‘특송’은 그 두 작품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박소담에 의한, 박소담을 위한, 박소담의 영화라고 할 수 있다. 또래 여배우 중 가장 뛰어난 연기력을 보증하는 그녀를 비롯해 송새벽과 김의성의 능청스러울 정도로 자연스러운 캐릭터의 완성은 관객을 픽션의 세계에 빠져들게 만들기에 모자람이 없다.
‘트랜스포터’(2002). 뤽 베송 제작의 3부작. 범죄 조직이 의뢰한 물건을 운반해 주는 트랜스포터로 일하는 특수 부대 출신의 프랭크(제이슨 스태덤 분)가 주인공. 일을 하던 그는 자신의 규칙을 깨고 배달품의 포장을 연다. 그건 중국 여자 라이(수치). 그리고 프랭크는 라이를 돕는 일에 뛰어들게 된다.
‘레옹’(1994). 킬러 레옹은 옆집 소녀 마틸다의 가족이 비리 경찰 스텐스 일행에게 살해당하는 와중에 마틸다를 구해 준다. 스텐스는 자신의 범죄의 목격자인 마틸다를 제거하기 위해 나서고, 레옹은 가족의 원수를 갚으려는 마틸다를 대신해 스텐스와 맞선다. ‘특송’은 일단 시작부터 후킹을 제대로 한다.
은하의 한밤의 레이싱은 통렬하고 상쾌하다. 질주 본능을 충분히 자극해 준다. 프랭크는 깔끔한 성격에 최신 아우디를 타고 다니는 멋쟁이이지만 은하는 골동품 BMW나 심지어는 굴러가는 게 신기한 단종된 국내산 자동차를 탄다. 두 사람 모두 업무에 사적인 감정은 금물인데 스스로 깬다는 게 닮았다.
그 이유가 돈이 아니라 인간의 본유적 인류애, 동정심, 동병상련 등이라는 것도 유사하다. 마음 이론 중 시뮬레이션 이론이 개입했을 수도 있다. 국내 개봉 때 많이 난도질 당했지만 오리지널 버전은 레옹과 마틸다의 미묘한 관계를 드러낸다. 이 작품은 그 정도까지는 안 가지만 유머러스하게 흉내낸다.
서원이 은하에게 남자 친구가 있냐고 묻는데 없다고 하자 자신이 그 인물이 되어 주겠다고 하는 식이다. 카 체이싱이 두드러지는 국산 액션 영화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본격적으로 그걸 표방하고 나선 최초의 영화라는 점에서 아쉬운 점은 있는 작품이지만 주연 배우들의 고생이 그걸 보상해 준다.
박소담의 온몸을 내어던진 살신성인의 액션 연기와 송새벽의 ‘한국판 게리 올드만’ 빌런 연기는 회자될 만하다. 경필은 스텐스에게서 빌려 왔을 수도 있지만 결코 비현실적이지도 않다. 국민의 지팡이, 보호자, 심부름꾼이라는 본분에서 벗어나 사리사욕의 특권으로 악용하는 공무원은 이 땅에 차고 넘친다.
게다가 경필은 은하가 탈북민 출신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바로 ‘빨갱이’라고 폄훼한다. 그건 우리의 공권력과 공무원 사회가 대부분 극보수적인 방향으로 고루하고 편협하게 치우쳐졌다는 은유이다. 그는 은하를 좇는 국정원 직원 미영(염혜란)에게 “요즘 간첩이 없어서 한가합니까?”라고 비아냥댄다.
그건 그동안 중앙정보부와 국가안전기획부 등이 실제 남파 간첩보다 더 많은 수의 가짜 간첩들을 조작하며 독재 정권의 연장에 공헌하지 않았느냐는 날선 질문이기도 하다. 그런 비뚤어진 공무원(기득권)의 의식 세계와 더불어 아동 안전에 대한 기성세대의 무감각함에도 눈살을 찌푸리며 비판을 가한다.
서원은 은하에게 “아줌마, 사는 게 왜 이렇게 힘들어요?”라고 묻고는 “배고파요.”라고 말을 잇는다. 사춘기도 채 되지 않은 아동이 삶을 힘겨워하는 사회. 삶에서 가장 기초적인 식사조차 제대로 해결할 수 없는 세상. 이게 복지 사회라고 할 수 있을까? 민주주의 국가라고 자랑할 수 있을까?
이건 영화 속의 이야기가 아니다. 매일 아침 접하는 뉴스에서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는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그렇게 비장함으로 치달을 때는 웬만한 누아르 못지않게 무겁고 어둡다. 특히 은하가 서원의 친모를 찾아내지만 그녀가 자신이 친모가 아님을 주장할 때는 소름 끼치도록 현실적이다.
미영의 비중이 의외로 미미한 게 아쉽다면 ‘은하바라기’ 아시프 역의 한현민은 소소한 재미를 준다. 국산 SUV가 크라이슬러 300C를 간단히 제압하는 카 체이싱은 인트로만큼이나 박진감을 준다. ‘인생은 혼자 가는 것이지만 친구는 필요하다.’라는 메시지까지 신년 벽두 팝콘 무비로서 손색없다. 12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