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빙자리뷰 후기 '이렇게 된 이상 마트로 간다' 김경욱 작가
사람들과 만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면, 내 이야기를 듣는 상대방이 뭔가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것 같을 때, 나도 모르게 신나서 무언가 더 신나게 말하고 싶어 진다. 그러다가 때로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사소한 것조차 말할 때가 있다.
이러한 개념을 설명하는 영어 숙어 중에 'Too Much Information'이라고 하여, 다시 이 숙어를 번역해보자면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되는) 너무 많은 정보'로, 한국에서도 친근한 사람들끼리 누군가의 말이 길어진다거나, 굳이 알지 않아도 되는 이야기를 할 때 '야 그거 TMI야~'라고 말하며 퉁칠 때가 종종 있다.
지난 수요일 처음으로 '리뷰빙자리뷰'에 청자로 참여하였다. '리뷰빙자리뷰'는 다른 사람은 아직 겪지 않은 자신의 경험을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는 자리이다. 50번째 리뷰빙자리뷰의 주인공은 '이렇게 된 이상 마트로 간다'로 브런치북 대상을 수상한 김경욱 작가였다. 작가는 '이거 TMI인데' 라며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그는 잘 다니던 정유회사를 그만두고 연고도 없는 지방도시 '순천'으로 내려가 300평 정도의 마트를 시작하며 겪었던 경험을 이야기하였다. 복지도 좋고, 고연봉에, 워라밸도 나쁘지 않았던 정유회사를 다니며, 회사가 제공한 고급 호텔에서도 업무를 보며, 자신의 또래인 젊은 사람들이 호텔을 드나들며 편하게 지내는 모습을 보고, 나도 저만큼 잘 살 정도의 돈을 벌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 과감히 퇴사하고 사업에 뛰어든 것이다. 작가는 TMI라고 했지만 작가가 마트를 준비하고 경영하면서 있던 이야기는 두 시간 내내 빠져들기에 충분했다.
왜 마트인가?
퇴사를 하고 자신만의 비즈니스를 시작한다면 흔히 수익모델이 잡힌 무형 또는 유형의 아이템을 이용한 스타트업 창업 같은 일을 상상할 수 있겠지만, 그는 '마트 경영'을 선택했다. 정유 회사 재직 당시 회계 관련 업무를 맡아 숫자를 다룰 줄 알았다. 누구 이름으로도 쓸 수 없는 아주 큰 금액을 다루면서 이러한 것들이 비현실적으로 느낀 그는 자신이 주도하여 돈을 버는, 그 자신이 손에 잡히는 일로 돈을 벌 수 있는 일이 바로 마트 경영이라고 판단하였다고 한다. 또한 마트는 여러 가지 거래를 할 수 있어서, 혹 망하더라도 세일즈 능력을 갖출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있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매출이 적은 마트부터 실 매출에 대해서 조사를 해보니, 영업이익률이 적어도 3%는 나온다는 것을 확인하여, 마트가 확실히 '돈이 되는 일'이라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
스타트업처럼 마트 경영하는 방법
처음에 매출을 올리기 위해 객수를 늘려야 하는 일부터 시작하였다. 공격적으로 더 싼 가격에 물건을 팔고, 사은품을 주거나, 1등으로 승용차를 주는 경품 행사도 진행하였다고 한다. 어느 정도 운영하고 난 뒤에는 당연히 이탈을 하는 고객도 있기에, 최대한 이탈을 막기 위해 감성을 건드리는 전략도 실행했다. 별거 아니지만 계산대 포스에 생화를 주기적으로 놓는다던가, 정기적으로 고객들에게 보내는 '**가 $$$$원'이라는 세일즈 문자 보낼 때 마지막 부분에는 좋은 메시지를 더 붙여서 보낸다든지, 전단지에는 마트에서만 파는 물건의 세일 내용만이 아닌 주변 가게를 홍보한다던지의 시도를 했다. 근처의 경쟁 마트는 하지 않는, 김경욱 작가가 운영하는 '우리들 마트'의 Originality 였다. 작가는 이렇게 낮에는 소주병을 매대에 채우며 때론 지칠 때도 있지만 밤에는 글을 쓰고 책을 읽으며 내일을 준비했다.
여기까지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이러한 작가의 행보가 실로 흥미로우면서, 마트를 잘 운영하기 위해 시도를 가리지 않는 것 자체에 대해 '정말 돈이 벌고 싶으셨구나' 새삼 한번 더 깨달았다. (작가님이 직접 마트를 하고 싶었던 건 대놓고 돈이 벌고 싶었다고 말하시긴 했다.) 하지만, 본인의 마음을 깊게 울리는 작가의 TMI는 따로 있었다. 그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더욱 마트를 성장시키기 위해 '잘 되는 곳'에 대해 공부를 했다. 그중 순천 하면 떠오르는 유명한 빵집 '이성당'과 대전의 유명 빵집 '성심당' 이 왜 성공했는가에 대해 분석한 글을 올렸다. 그렇게 어마어마한 매출을 올리지만 선행을 멈추지 않았던 이성당과 가톨릭 정신에 입각한 성심당의 사례를 벤치마킹하여 '고사리 희망장터'라는 이름으로 순천에 사는 아이들의 손으로 만든 제품을 파는 장터를 열어 매출과 마트의 과일들을 지역의 어르신들께 환원하는 봉사활동도 정기적으로 진행하며, 가격 경쟁만이 전부가 아닌 마트를 이용하는 지역 사람들과의 친근한 관계를 구축하는 노력을 한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들 마트'는 이제 연매출 45억의 돈을 버는 마트가 되었다. 하지만 그만큼의 성과를 얻기까지 작가의 고군분투는 내게 영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대기업에서 배웠던 일하는 사람과의 관계나 대처 방식은 마트에서 일하시는 직원 어머니들께는 그렇게 하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직원들의 가정 대소사를 살뜰하게 챙겨준다든지, 거래처와의 크고 작은 갈등에 숫자를 들이대며 첨예하게 대처하기보다 '내가 조금 손해 보는 게 낫다' 아버지의 가르침이 담긴 일종의 수용하는 방식에 대해 유연하게 받아들이며 성장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모든 여행은 비밀스러운 목적지가 있다
본격적인 작가의 이야기 시작 전, 리빙리에 참여한 분들의 짧은 자기소개가 있었다. 언젠가 이루고 싶은 꿈을 가졌거나, 어떠한 호기심 또는 내일에 대한 막연한 고민을 가진 분들이었다. 김경욱 작가는 캄보디아 여행을 다녀온 경험을 예로 들며, 해돋이로 유명한 앙코르와트 말고 관광객들은 잘 모르는 반대쪽의 장소를 알게 되어 혼자서 가는 도중 어둡고 울퉁불퉁한 길을 지나며 '이 길이 맞나' 두려움을 느꼈지만 전진을 멈추지 않았고, 마침내 다른 여행자들은 모르는 작가님과 몇 안 되는 사람들만이 앙코르와트에서는 볼 수 없는 아름다운 해돋이를 만날 수 있었다고 한다. 익숙한 궤도 속에서 계속 공전을 하는 우리들의 궤도 이탈을 '적극 권장' 하는 것이 아니다. 작가는 각자의 길을 걷는다는 것은, 그 길이 눈 앞이 훤히 보이는 것이 당연히 아니라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걷다 보면 각자에게 비밀스러운 무언가를 만날 수 있다 (= 모든 여행은 비밀스러운 목적지가 있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작가는 작가만의 비밀스러운 목적지로 가기까지 있었던 TMI를 아낌없이 알려주었고, 그 TMI는 모두에게 쓸데없는 것이 아닌 모두에게 의미 있는 TMI였다. 이번 리빙리를 참여하며 이 말이 떠올랐다.
P.S 마트 이름은 '우리들 마트'입니다. 저도 가본 적이 없지만 순천에 방문하실 분들이 있다면 가보세요.
P.S 2. 종종 작가님 소개글 마지막에 '작은 집에서 사랑하는 아내와 강아지 두 마리 키우며 사는 게 꿈이다.'라는 부분에 어떤 분들은 '혹시 작가분이 배우자와 사별하셨나..?'라고 오해하시는 분이 있는데 (이때 좀 웃었다 ㅋㅋㅋㅋ), 그건 아니라고 합니다. 아직 총각이고, 언젠가 이 꿈을 이루고 싶을 뿐이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