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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마 May 08. 2020

가족 같은 반려견을 떠나보낸 후

5월 1일 오전 9시 30분

사랑하는 반려견 축복이가 떠났다.


자신의 죽음을 알았을까. 마지막 숨을 거두기 전 가족들 눈을 한 번씩 지그시 바라봐주었다. 마치 그동안 고마웠다고 작별 인사를 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큰 숨을 뱉곤 영원히 가족들 품을 떠났다. 방금 전까지 힘겹게 거친 숨을 몰아쉬며 눈물을 뚝뚝 흘리던 축복이는 거짓말처럼 고요한 숨소리와 풀려버린 동공으로 죽음을 실감시켰다. 아직 식지 않은 체온이 아니었다면 그저 털이 있는 인형이라고 생각될 만큼 조금의 움직임도 없었다. 온 가족이 소리치며 울었다.


이미 숨을 거둔 축복이를 품에 안아보았다. 고요하게 잠든 것처럼 보였다. 그동안 아픈 몸으로 고생했다, 사랑한다, 편히 쉬어라 가족들은 인사를 건네며 이별을 받아들이려 했지만 북받치는 감정에 누구도 그 자리에서 일어나질 못했다. 생명이 떠난 몸에 점점 변화가 생기는 것을 보고 더 몸이 망가지기 전에 얼른 보내주자 싶어 차를 타고 서울 외곽에 한 반려동물 화장터로 향했다.


알코올로 시체를 깨끗이 닦고 관에 넣어 꽃장식을 해주었다. 사람을 보내는 것처럼 반려견 화장에도 여러 절차가 있었다. 모든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며 또다시 터져 나오는 눈물에 온 가족이 다시 한번 울음바다였다. 뜨거운 불 속으로 들어가는 축복이를 바라보며 이제는 만지고 안아볼 수 없다는 것이 사무치게 슬펐다. 포슬포슬 하얀 털의 축복이는 한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하얀 가루로 돌아왔다. 차마 그것까진 볼 자신이 없어 나는 도자기에 담긴 축복이를 그저 가슴에 안아볼 뿐이었다.

집에 오면 항상 시끄럽게 짖으며 반겨주던 존재의 부재는 문을 열자마자 가족들에게 커란 공허함을 주었다. 오늘 아침까지 누워있던 이불, 어제까지 먹었던 밥, 널려있는 장난감, 항상 앉아있던 개집 역시 고스란히 눈에 들어왔다. 온 가족이 다 있던 자리에서 작별 인사를 할 수 있어 다행스러웠지만 한편으론 그 과정을 다 지켜봤다는 것은 머릿속에 엄청난 잔상을 남게 했다. 이리 햇살 좋은 날 맞이하는 갑작스러운 이별이라니. 너무 가혹했다.


축복이가 떠난 지 일주일이 지났다. 사진보다 울컥, 장난감보다 울컥, 오줌 누던 자리 보며 울컥, 문 열 때 조용하면 다시 울컥. 날씨 풀리면 산책 가자 했는데 공교롭게 풀린 날씨에 괜한 미안함의 눈물이 또 났다. 우리 가족은 여전히 이별 중이다.



만남의 끝을 전혀 생각 않는 관계가 있다. 내겐 가족이 그랬다. 늘 옆에 있어 왔으니 앞으로도 당연히 그럴 것 같은 존재들. 하지만 가족으로 생각했던 반려견을 보내며 가족의 죽음을 처음으로 생각해봤다. 친밀하고 가까운 존재에도 예외 없이 이별이 있다는 것이 처음으로 가슴 시리게 와 닿았다. 그리고 우리에겐 사랑할 시간도 유한하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이번 일을 겪어보니 떠난 이에 대한 늦은 후회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진부하지만 있을 때 잘하라는 말. 괜한 말은 아닌가 보다. 그다음 이별이라면 아마 우리 부모님이 되겠지. 한 번도 그 생각은 못해봤는데 그때의 이별은 이것보다 더 가슴이 찢어질 것 같다. 누구나 흙으로 돌아가는 걸 거스를 순 없으니 주어진 시간 동안 더 사랑해야겠다는 다짐을 해봤다. 따뜻한 온기를 지닌 그 여생 동안 열심히 사랑하는 것 그게 훗날 이별을 잘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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