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겐 너무 어려운 비대면 수업

코로나 시대의 수업

by 김윤철

“선생님! 메일 주소가 안 보입니다. 화면 조금만 내려 주세요.”

누가 답답한 내 마음을 대신 표현해 준다.

“메일 주소와 사진 주제는 메시지로 보내드리겠습니다.”

열심히 메일 주소를 적고 있던 볼펜을 접는다. 아침부터 설레며 준비한 70 평생 처음 경험하는 비대면 화상 수업! 해를 넘겼으니 적응할 때도 되었건만 비대면 수업은 역시나다. 오늘은 새로운 사진 수업하나 시작!


집 근처의 풍경들을 담다 탄천의 환경 기록이란 재능 기부 형식의 단체에 가입. 표현 대신 기록이란 사진 강의 등록. 남의 도움 없이 혼자 힘으로 앱을 깔고 컴을 조작하여 수업 준비. 사실은 컴은 귀찮아서라도 자식들의 도움을 받는다. 오늘은 아무도 없으니 내 힘으로. 닥치면 한다. 걱정과 달리 별 어려움 없이 첫 시간을 마친 “노인복지관 환경지킴이 사진 봉사자” 사진 수업.


직장 생활 초기 컴퓨터 교육 갈 때, 컴 체제가 윈도로 바뀌고 처음 교육을 다녀온 컴 도사라 불리던 직장 선배의 경험담. 요즘 말로 아재 개그 같은 소리.

“윈도를 여세요.”란 강사의 말에 뒤편의 교육생이 교실 창문을 열더란 말씀.


이곳 경기도의 어르신들은 수준들이 대단하시다. 그래도 연세 있으신 어르신들 수업. 연륜에 맞게 열성이야 높으시지만 일흔 나이의 교육생들의 이해력은 조금 떨어진다. 아니 아날로그의 삶을 더 살아오신 세대 탓도 있다는 생각. 그런 분들과 얼굴조차 보이지 않는 수업을 해야 하는 젊은 강사님의 수고가 애처롭기까지 하다. 나 역시 20세기를 훨씬 오래 산 세대다. 디지털은 정말 힘들다. 짧은 삽화 하나.


희한하다. 두 시간 여를 헤매도 안 보이던 기호를 퇴근 복장의 딸이 5분 만에 찾아냈다. 머리를 쥐어뜯으며 한 말! “에라이 등신아!” 이건 자책의 소리다.


나는 폰으로 유튜브 만드는 법을 배웠다. 따라서 폰 사진 저장소가 항상 부족하다. 사진 지우기 바쁘다.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사진들은 밴드에 저장하기도 하지만 유튜브에 옮기면 지워버린다. 그게 또 필요할 때가 있다.


“개똥도 약에 쓸려면 없다.” 딱 맞는 말이다. 스크린 샷을 설치하고 사진 캡처하는 법을 사용한다. 아직 초보 수준!


오전에 작업을 하고 걷기 운동. 오후에 사진을 찾으니 스크린 샷 표식이 행방불명. 두 시간 여를 헤맸지만 결국 작업 포기 상태. 때 마침 둘째의 퇴근. “이것 좀 봐주라.”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컴 앞으로. 멀티라나 뭐라나 크롬과 익스프로 둘을 띄워 놓고 블로그 작업. 한쪽에는 글을 쓰고 다른 쪽에선 사진 작업.

“그때는 어지간히 꼼꼼하다.”

항상 덜렁 댄다고 잔소리하는 아내의 말. 블로그 만들 때만 좌우 살핀다는 이야기.


딸에게 한 참을 설명. “스크린 샷 앱을 다시 다운로드하니 ”앱 삭제할까요?” 문구가 뜬다.

한참을 연구하던 딸의 말 “아빠 거꾸로다!” 이게 뭔 소리! 스크린 샷은 크롬에서만 작동한다.

이런! 글은 크롬에서 사진을 익스프로에서 찾고 있었다. 둘을 바꾸니 바로 사진이 캡처된다.

“에라이 등신아! 등신아!” 머리 꽤나 쥐어뜯었다.


그놈의 앱이 바탕화면에 깔리는 줄 알았지 크롬에서만 작동하리라고는 전혀 생각 못 한 머저리!

신경이 곤두서는데 옆에서 아내가 부채질을 한다.

“몇 사람이나 본다고 그 야단이냐! “ 집안일도 좀 그래 봐라.”

용기 내어 한소리! “내 만족이다. 이 나이에 이런 것 만진다는 것도 대단하다고 자부한다.”


아내도 미안한 모양이다. “그래 치매 걱정은 안 해도 되겠다. 우리 친구들은 SNS 하는 사람도 없다.”

정말 사진과 글이 맞아떨어지면 기분이 좋다. 스트레스가 풀리는 기분! 자기만족!


아니 글을 쓴다는 행위도 일종의 관종 같은 뜻이 있다. 몇 사람이나 방문했는지 신경이 쓰인다.

며칠 쉬었더니 방문객이 많이 줄었다.


하지만 내일도 글감 찾으며 컴 앞에 앉아 있겠지!



새벽 운동 가는 길. 아파트 문을 나서니 선득한 기운. 강변의 철봉 앞에서 근 운동 전 가벼운 스트레칭을 한다. 긴 팔 옷을 입은 분들이 꽤 된다. 아니 연세가 있으신 분들은 거의 긴소매다. 여름이 가고 있다. 세월이 흐르고 있다.



한 시간의 운동 후 집으로. 조식 후 휴식 겸 SNS. 가족 밴드. 외손녀의 초등학교 입학식 소식. 벌써? 미국은 8월에 입학식이 있다. 1년 다닌 부설 유치원을 졸업하고 우리나라의 초등학교 1학년.

미국은 벌써 대면 수업. 미국의 방역 체계에 벌써 대면 수업이라니 약간은 걱정. 또 친구들 만나면 우리와는 멀어질 거란 예감. 슬픈 것은 아니지만 약간은 서운할 것 같다.


컴 앞에 앉으면 할 일이 많다. 인터넷 서핑 중 사이먼과 가펑클의 "험한 세상 다리 되어" 악보가 눈에 딱. 옛 생각. 입으로 흥얼거리며 코드를 보니 어려운 것이 적다. 기타를 잡아보니 될 것도 같다. 우선 느린 속도의 고고 리듬. 가장 많이 연습한 슬로 고고 . 본격적인 연습. 한 마디 안에 코드 3개짜리. 많이 연습한 관용적 리듬이다. 그래도 안 된다. 나이 들면 조금씩이라도 매일 연습을 해야 한다. 해서 매일 손은 푼다. 그런데 분명 된 것도 다시 하면 안 된다. 연식! 며칠 연습하면 되겠지. 다른 곡 하다 보면 또 안 되고. 그래도 손과 입을 맞추어 본다.

"네가 지치고, 자존감이 떨어져 네 눈에 눈물 고이면 내가 너의 편이 되어 그 눈물 닦아 주리라아!"


코로나 시작된 지도 1년 반이 되어 간다. 기타 동아리도 변화가 있었다. 대면 강의 시작. 그런데 수강자는 10명 한정. 30명씩 모일 때는 나이 지긋한 분들도 있었다. 그런데 선착순 10명. 내가 가장 연장자. 눈치가 없으면 코치라도 있어야 하는데.


문득 후대에게 의자를 비워주어야 한다는 조병화 시인의 시 생각!

안 되는 손을 원망하며 입을 흥얼거린다.

"험한 세상의 다리 되어 그대 지키리. 험한 세상의 다리......!"

그나마 한 번 모이고 다시 비대면으로. 코로나 정말 지긋지긋하다. 그냥 컴이나 폰밖에 할 게 없다.


오늘도 등산 좋아하는 친구가 사진과 함께 글을 올렸다.

"노인에게는 내일이 없다. 오늘을 즐기자. 아직 노인은 아니지만."

이 친구나 나나 일흔이 넘었다. 분명 노인이다.

그런데 산의 사진이 천 미터급 산이다. 젊은이 못지않다. 아무리 에베레스트를 올라도 일흔이면 노인이다.

이 십 년 전의 추억 하나. 말썽 부리기 시작하는 차를 바꾸어 볼까 생각. 중고차 전문가와 상담. 시골 생활이라 출퇴근 거리가 짧다.

"많이 타지는 않았습니다."

"일 안 한다고 사람이 안 늙습니까? 연식이 중요합니다."

그 후로 7년 동안 그 차를 애용했다. 세월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모두 늙으련만 그래도 젊은이들을 만나면 조심하게 된다. 어제 씁쓸했던 기억.


운동 후의 약간은 흐트러진 복장.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자 재빨리 올라탄 젊은 여자분이 자기 층의 버튼만 누른 채 한쪽으로 비켜선다. 뒤따르는 내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나 역시 내 할 일만 하고 모서리로. 얼굴은 서로가 벽 쪽으로. 내릴 때는 얼굴도 보지 않고 고개만 까딱. 그리고는 도망치듯 사라진다. 기분 나쁠 법도 하지만 아무렇지도 않다. 코로나의 위력.


매일 샤워를 한다. 그래도 아내는 홀아비 냄새가 난단다. 그래서 더 열심히 샤워. 집 앞 탄천변의 산책길 따라 한참 더울 때 걷기 운동. 땀은 났을 것이다. 모두 마스크 착용. 냄새보다 거리 두기. 노친네! 성희롱 이런 생각도 안 했을 터, 모든 것이 거리 두기!


아침! 컴 앞에서 생각 정리 중, 아내의 장 보기. 책상에서 내려와 휴식 중 잠시 잠이 든 모양이다. 잠결에 문소리와 캐리어 끄는 소리. 깜짝 놀라 벌떡. 재빨리 짐을 날랐다. 가방을 대신한 캐리어도 바닥을 깨끗이 닦아 제 자리로!


라떼는 엄처시하, 공처가 이런 말이 있었다. 아내 무섬증. 요즘은 마포불백. 마누라도 포기한 불쌍한 백수. 이건 농담 삼아하는 말. 아내가 무서운 것은 당연 아니다. 사간이 무서운 거다.


모든 만남이 다 사라졌다. 당연히 남는 것은 시간뿐! 반어법 삼아 하는 말. 시간이 부자인 사람!


은퇴 후 아무것도 할 수 없던 시기가 있었다. 미세먼지, 초미세먼지! 허파꽈리가 망가졌다는 나는 집 밖을 나갈 수가 없었다. 앉았다, 일어섰다. 누웠다. 잠시 잠들었다 깨면 tv는 혼자 잘도 놀고 있었다. 한 달여 지나니 자가진단 우울증! 마스크 쓰고 정신없이 싸돌아 다녔다. 과유불급! 넘쳐나는 자유는 공포 그 자체였다. 나? 시간에 쫓기던 교사였다. 종소리만 나면 벌떡! 습관은 무서운 거다. 퇴임 후, 음악 소리가 없어도 시간마다 엄습하던 갈 곳 잃은 두려움!


기타반 모임. 반가움도 잠시 다시 모든 만남이 비대면으로 바뀌었다. 소속감이 없어졌단 말. 사실 나는 비대면 모임은 만난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퇴근 후 한 잔 술에 피로를 풀고 집으로. 이게 일상이던 우리 세대는 실감하리라 생각. 너만? 젊은 세대의 이해를 바라는 건 무리겠지.


반려동물이라도 한 마리. 이건 싫다. 실망하더라도 사람이다. 동물? 무척 좋아한다. 너무 좋아해서 생긴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 집에서 셰퍼드 한 마리 키운 기억. 닭뼈를 부수어 준 기억. 개가 그냥 넘기다 목에 걸렸다. 얼시구나! 동네 사람들의 몫으로. 지금 같으면 턱도 없는 소리. 그 기억이 반려동물이란 말조차 거부하게 만든 것 같다.


오늘은 밴드를 통한 기타반 만남. 강사의 손을 따라 아르페지오 연습. 스트록은 시끄러울 것 같아 옆 집 눈치. 당연히 실감이 나지 않는다. 차라리 유튜브로 연습하는 게 낫지. 코로나야 제발, 빨리, 어서 좀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