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서 만난 사람들

관계

by 김윤철



#1


병원 생활 사흘 만에 생각지도 못 한 친구 부인이 면회를 왔다. 경북에서 서울까지, 다시 지하철로 1시간 넘는 거리. 고맙고 반가운 마음보다 미안함이 앞서는 것은 시골 생활의 어려움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개미가 쳇바퀴를 돈다는 말이 있다. 발전과 변화가 없다는 의미다. 이것은 병원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아니해서는 안 될 말이다. 이런 일을 내가 겪고 있으니 라떼의 표현으로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암이란 놈이 며칠 만에 차도가 있는 병도 아니고, 특히 나는 치료를 하는 것이 아니고 수술 시간 나기만 기다리는 몸이다. 매일 같은 일이 되풀이될 수밖에 없는 병원 생활이다. 이런 생활에 활력을 주는 가장 좋은 방법이 바로 면회 시간이다.


바깥 소식도 듣고 음료수까지 나누어 마시며 웃고 떠들어도 미안함을 느끼지 않는 유일한 시간. 단 가족면회는 예외다. 아픈 모습 보이기 싫다. 자존심 상한다. 이런 문제가 아니다. 특히 자식들에게는 걱정 끼치기 싫은 부모의 마음. 서울 생활하는 그때는 미혼인 두 딸에게는 병원 오지 마라 신신당부. 늦둥이는 시골 고3. 그래도 딸들은 몇 번 다녀갔다. 딸들 앞에서 옆구리 기흉관 숨기느라 고생 심했다. 나야 낫는다는 믿음이라도 있지만 딸들은 얼마나 놀라겠는가! 허파에 바람 든 놈!


사실은 내가 병원에 입원한 것은 가족 외에는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 직장에서는 퇴직한 것과 같은 처지. 이웃들은 검사하고 객지 생활하는 딸들 돌봐 주는 것으로 이해. 그렇다고 나 입원했소! 떠드는 것도 우스운 이야기. 포기 상태에서 찾아준 친구. 지금도 고맙다.


친구의 안부 전화. 이번 모임은 빠져야겠다는 말끝에 입원 병원 이름 들통. 알았다는 간단한 대답에 잊고 있었던 친구의 아내분이 서울까지 오신 것이다. 부부 동반 모임의 친구이기 때문에 아내들끼리도 매우 친한 사이다.


친구 아내의 말 요약! “5년 전 건강 검진에서 대장 용종 발견. 잘 아는 의사의 소개로 이곳 병원에서 용종 제거와 6개월마다 정기 검진. 다음번이 5년 마지막 정기 검진이다.” 5년 동안 다녔으니 병원의 특징을 잘 알고 있다는 말. 내게는 대수롭지 않게 말한 친구가 아내에게는 심각하게 말한 모양이다. “그 병원에 입원했다면 암이다.” 걱정과 함께 다음 날 바로 병원까지. 예상하지 못 한 만남이기에 더 미안하고 고맙다.


“수술 한다면 낫는다는 말이다. 요즘은 암도 완쾌 확률이 높다. 야 병원은 믿을 수 있다. 5년만 고생하면 끝이다!” 등 응원을 받으며 수술할 큰 힘을 얻었다. 사람은 역시 관계 속의 삶이란 진실 확인!


#2


환갑 넘으면 노인인가? 이곳 환우들 중에서도 내가 최연장자였다. 약간은 외롭다는 느낌. 입원 열흘 즈음에 친구가 생겼다.

"어이 김씨 동갑이네 우리 친구하자."

직업의 특성상 김씨라는 호칭은 낯 설고 약간은 거부감을 느낄 수도 있는 표현이다.

"김씨! 호흡은 그렇게 하는 것 아니다. 의사 선생님 말 안 들었나?"

그 친구는 알고보니 나보다 형편이 더 안 좋은 친구였다. 두려움을 이기는 방법의 하나인지는 모르겠으나 붙임성 좋고 쾌활한 사람이었다. 인생 선배의 그 쾌활에 병실 전체가 활기를 찾아간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암 병동에 활기가 남아있다니? 사람은 환경에 적응하는 동물이다. 특히 죽음 앞에서는 그것을 제외한 모든 것이 희망이다. 처음에는 거부감마저 들던 그 너스레가 정다워지기 시작할 무렵.

“어이! 김 씨! 항암 치료 오면 들를게!”

기흉관을 갈비뼈 사이에 꽂고 짐을 들고 나가면서까지도 기 죽지 않는 그의 기질이 부러웠다.


환갑 넘은 나이에 암과 당뇨가 함께 있어 수술 전에 당뇨 치료를 하는 사람이었다. 결국은 수술을 못 하고 퇴원해서 항암 치료. 그것이 그 친구와의 마지막 인연이었다.


#3


병원에는 머리카락이 없는 어린이들도 찾아온다. 이름하여 소아암 환우들이다.

병원에 들어오면 엄마 품을 파고 들며 운다. 어린 나이에도 치료가 힘 들다는 것을 안다는 말이다.

그 부모의 마음이야 오죽하겠는가! 병에 경중을 말 할 수는 없겠지만 자식 키우는 마음에 통상적인 말로 가슴이 미어진다.


오늘은 맞은 편의 학생이 갑자기 넘어졌다. 요즘은 좀 나아졌는지 모르지만 10년 전의 항암 치료는 무척 힘 든 모습이었다. 밥도 제대로 못 넘기고 머리칼이 다 빠지며 심한 경우 졸도까지 하는 경우도 있었다.

수술도 할 수 없는 혈액암을 앓는 그 환우는 고등학교 3학년이었다. 교사인 내 눈에는 그 학생 역시 소아암 환우였다.


한창 수능 준비 해야할 학생이 항암 치료라니. 학생과 부모님 보는 것만으로 힘들었다.

며칠 후 운동 갔다오니 아내가 음료수를 건낸다. 학생이 경과가 좋아 퇴원한다며 음료수를 나누었단다.

완쾌는 아니고 통원 치료 허가를 받았다는 말이다.

진심으로 쾌차를 비는 내 마음에 음료수는 아무런 영향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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