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경북의 한 시골에서 건강 검진을 받았다. 고마우신 젊은 의사님이 추천해 주신 병원까지는 다섯 시간도 더 걸리는 거리다. 고속버스에 지하철, 그리고 병원 셔틀버스까지. 운전도 귀찮고 서울 지리도 모르니 운전은 언감생심이. 고속버스 속에서의 아내와 나의 생각. 조직검사 후 귀가. 검사 결과 통보를 받고 병에 대한 대처 방안 모색.
병원의 검사 방법은 전혀 달랐다. 병원 도착 후 바로 입원부터. 다음 날 세침 방법으로 조직검사와 왼쪽 갈비뼈 사이에 기흉관 삽입. 의학용어를 쉽게 말하면 침을 쏘아 폐 조직을 뜯어내어 암세포 검사를 하고 폐에 들어간 공기를 빼내기 위해 갈비뼈 사이에 공간을 만든다는 말이다.
젊은 의사님의 말씀. “연세도 있으시고 담배를 많이 피워 허파꽈리가 약해져 허파에 들어온 공기를 내보낼 수 없으니 기흉관 삽입이 불편하더라도 참고 병원에서 시키는 대로 호흡을 하라." 는 말씀. 산사나이 흉내도 내보고 쉰 넘긴 나이에 백두대간 종주도 한 몸이 폐가 망가졌다니. 젊은 사람 못지않은 주력이었는데.... 담배의 폐해 실감! 옛말에도 있다. 허파에 바람 든 놈!
암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얼마나 긴장을 했는지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아 전신마취를 한 줄 알았다. 그러나 전신은 아니라는 아내의 말. 기흉관을 언제, 어떻게 삽입했는지는 아직도 모른다. 수술 전 한 달 가까이 퇴원도 못 하고 아프고 활동이 불편했다는 기억만 남아 있다. 수술 후는 사흘 만에 퇴원. 참 희한한 일이다. 그만큼 수술 환자가 밀려 있다는 말. 보통은 집에서 수술 날을 기다리는데 나는 집이 시골이라 그런지 기흉관을 삽입해서 그런지 그냥 병원에서 대기. 내 생각에는 둘 다 해당된다는 생각.
그날 오후 간호사의 말씀. “떼어낸 조직의 양이 부족하여 조직검사를 다시 할 수도 있다.” 무척 쫄았던 기억. 암이 아닐 수도 있는 기쁜 소식인데도 걱정 많이 한 것을 생각하면 평범한 검사는 아니었다는 생각. 암세포 발견 되었다는 간호사분의 전언.
그날 저녁 교수 의사님의 정기검진! “암입니다. 수술하셔야겠습니다. 모르셨습니까?” 알고 있으면서도 표정을 숨기지 못 한 모양이다. 마지막 질문은 공손한 자세로 서있는 초년 의사님들을 질책하듯 바라보며 한 말로 기억된다. 알고 있는 것과 통보를 받는 것은 마음 가짐 부터가 같을 수가 없다. 충격이 얼굴에 그대로 나타난 모양이다.
그런데 내가 알고 있는 암 통보가 아니다. 침울한 표정과 동정 섞인 말투가 전혀 아니다.
“감깁니다. 주사 한 대 맞고 가세요.”
보통 병원의 감기 진단 같은 말투다. 생각해 보니 이곳은 암 전문 병원이다. 나 같은 환자를 매일 보는 사람들이다. 그 카리스마와 자신감 넘치는 어투에 암 정도는 이제 큰 병이 아니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다음날 코디라는 분이 위로차 방문. "걱정 마세요. 다른 병원의 일 년 치 수술보다 우리 병원 하루 수술 분량이 더 많습니다. 모두 전문가 분들만 계십니다."
사실 한 달여를 기다리면서도 죽는다는 생각을 한 기억이 없다. 이겨내야 한다는 생각에 운동 또 운동. 그리고 또 한 가지. 폐에 든 공기를 빼야 한다는 의사의 말에 병원에서 시키는 대로 호흡. 사실 운동이라야 별 게 없다. 갈비뼈 사이에 관이 박혀 있으니 상체를 사용할 수가 없다. 그냥 걷기 운동. 그것도 환자복에 링거를 꽂고, 코에 산소 줄을 넣고 있으니 밖으로 나갈 수도 없다. 병동의 복도를 줄기차게 걸었다. 원래 산에 다닐 때도 무엇인가 생각하며 걷는 것이 취미이자 낙이었으니 걷는 것은 그렇게 힘 들지 않았다. 병원 생활에 조금씩 익숙해지면 행동반경도 넓어진다. 병동 사이에 발코니처럼 만들어진 공원과 좀 더 먼 다른 병동까지.
그러나 그때는 미처 몰랐다. 병원 생활은 익숙해져서도 안 되고 요령이 생길 수도 없다는 것을! “졸면 죽는다 비가 오면 적이 온다.” 는 구호와 함께 하던 반세기 전의 군대 생활보다 몇 배나 힘들다는 사실을! 병원은 입원한 나만 힘든 게 아니고 수발드는 아내와 가족들 모두 걱정시킨다는 사실! 나를 지켜준 아내와 가족 모두에게 감사한 마음뿐이다.
환갑 넘긴 나이에 군생활 생각이 나는 것은 그만큼 병원 생활이 힘들었단 말이다.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어려운 일 생길 때는 초심으로 돌아간다는 생각으로 옛 근무지를 찾기도 했다.
아침이면 누구나 눈을 뜬다. 그러나 병원의 아침은 조금 다르다.
입원 환자의 아침은 간호사분들의 몸 점호로 시작된다. 체중, 혈압 검사등. 검사가 끝나면 식사시간. 군필자들은 군 생활을 생각하면 된다.
때 되면 식사가 나온다. 침대 위에서 식사. 그런데 병원 밥은 건강식이다. 다른 말로 조미료와 자극적 맛을 최소화한 것이다. 입에 맞는 맛은 아니란 거다. 그래도 군대밥과 다른 것은 그 맛에 길들여질 수 있다는 거다. 퇴원 후 10년 지난 지금도 맵고 짠 음식을 못 먹는다. 배달 음식도 조리된 음식에 물을 더 붓고 회석시켜야 한다.
식사가 끝나면 쉬는 시간. 그러나 나는 운동 타임! 링거 줄을 끌며 주위 산책. 옆구리에 기흉관이 꽂혔으니 아프다. 그래서 할 수 있는 것은 걷기밖에 없다. 수술도 하기 전 걷기 운동이 무슨 도움이 되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체력 강화 정도의 효과? 위궤양은 완치되었다지만 몸은 아직 회복 전이다. 큰 수술을 앞에 두었으니 아내가 식사 사이에 간식으로 삶은 달걀과 육포를 계속 준다. 그 성의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걸어야만 한다. 더해서 그냥 가만히 있으면 걱정이란 놈이 달려든다. 뿐만 아니라 입에 맞지 않는 병원 식사. 제대로 누울 수도 없을 만큼 불편한 기흉관 꽂고 있는 몸! 해서 걷기라도 해야만 한다. 먹고 자기 위한 투자. 거의 하루 다섯 시간 이상을 걷고 또 걸었다. 등산하던 가락에다 직업병도 한몫했다는 생각. 직업 특성상 시간마다 긴장한다. 걸어라! 아니 움직여라! 과거 같으면 종소리. 요즈음은 음악. 40년여를 그렇게 살았으니 당연지사.
다시 한번 급하면 통한다. 몸이 옆구리 통증에 조금씩 적응하면 행동반경도 넓어진다. 병원에 조성된 공원. 사람 드문 한적한 곳까지. 옛날 같으면 당연히 담배 생각.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옆구리 구멍 내고 담배 생각도 우스운 얘기. 과거 몇 번이나 금연을 시도했으나 모두 실패. 그러나 지금은 아예 생각조차 없다. 지금이야 병원이니까 그러려니 하지만 입원 일주일 전. 담배와 라이터를 버리면서부터 그랬다. 금단 현상도 없었다. 지금 생각하니 담배는 중독이 아닌 그냥 습관이란 생각을 해본다. 아니면 경상도 말로 "운짐이 단다." 는 표현이 있다. 할배 개그로 로켓이 빠른 이유. "똥꼬에 불이 붙어서!" 어느 쪽이던 십 년이 지난 지금도 담배 생각은 전혀 나지 않는다. 병원에서도 신경을 많이 써주셔서 수술 후 몇 년까지 금연 여부를 묻는 전화를 주신다. 폐암 환자였던 나는 당연히 금연.
저녁이면 당연히 취침! 내 몸이 고달프니 아내의 잠자리와 식사는 신경 쓸 여유가 없다. 환자 침대 옆의 쪽잠. 식사는 어떻게 했는지? 지금에서야 미안하고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