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작

by 김윤철

아파트 현관문을 나서니 반팔 남방의 어깨가 서늘하다. 생각해 보니 벌써 처서가 지났다. 아무리 지독한 더위도 흐르는 시간 앞에서는 힘을 쓰지 못한다. 정말이지 올해는 유난히도 더웠다. 세월 앞에 장사 없다는 말 실감! 벌써 추석 연휴 소식이 들리기 시작한다. 2023년도 막바지를 향해가고 있다. 벌써 십 년! 내 기억 속에서 절대 지울 수 없는 2013년 8월!


우연에서 시작한 그 일을 겪은 지도 벌써 십 년이 지났다. 목숨을 담보한 그 사건도 출발은 어린애들 장난 같았다는 지금 생각. 그래도 두 번의 전신 마취 수술 후 지금까지 건강하게 살고 있다.


"내일은 꼭 가자!"

아내의 이 한 마디가 그 십년의 시작점이었다.

위궤양이 있어도 참고 직장 생활을 하다 정년 3개월을 남기고 병가 신청. 유종의 미 어쩌구 하는 내 말을 무시한 아내의 강권에 반 억지 병가. 그만큼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남자 체중 43KG. 걱정 삼아 놀리는 학생들 사이의 내 별명은 해골이었다. 당연히 모든 사람들이 인정하는 마지막 병가. 그렇게 내 직장 생활은 끝이 났다. 직장 정기 건강 검진 시 위 내시경 검사까지 하기로 아내와 약속. 귀차니즘에다 겁 많고 소심한 성격이라 몇 번의 다짐 끝에 나온 아내의 최후통첩. "내일은 꼭 가자!"


그렇게 아내 덕에 반 강제적으로 실시한 건강 정기 검진. 통과 의례인가? X선 검사 이상 무.

그런데 사진을 보더니 아내가 고개를 갸웃! 위내시경 검사를 마치고 담당 의사께 보이니 큰 병원 한 번 가보란다. 별로 절박한 것 같지 않아 위궤양 약만 가지고 집으로. 그렇게 며칠이 지나 위장약 지으러 다시 병원으로. 운 좋게 내시경 담당 의사와 다시 만남. 아직 큰 병원 검사 안 받았단 말에 “위장은 약 먹으면 낫는다. 폐는 악성일 확률 80% 이상.” 서울 병원까지 소개. 정신이 번쩍!


큰 병원 검사의 악성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우리 세대는 너무나 잘 안다. 불치병은 우리세대 드라마의 단골 소재였으니까. 본인에게는 알리지도 않고 가족에게만 통보. 드라마 안 보는 남자인 나도 아는 통속적 줄거리. 정신이 아득! 차로 시골길 드라이브. 어르신들 모이시는 정자 밑 바로 눈에 띄는 곳에 두 가치 피운 담배와 라이터 고이 저장. 그 이후로 담배와는 영영 이별. 큰 병이 아니길 빌며 별 준비 없이 서울 큰 병원으로!


이것이 한 달간 변변한 잠자리도 없이 아내 고생시킨 병원생활의 시작인 줄은 꿈에도 모른 채 서울로! 위궤양이 없었다면? 휴가를 내지 않았다면? 아내가 간호학과 출신이 아니었다면? 그 좋은 의사 선생님을 만나지 못 했다면? 생각도 하기 싫은 만약이다.


사람의 목숨은 하늘에 달렸고 원인 없는 결과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