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6개월을 앞두고

나는 행복에 더 가까워지고 있을까?

by 나오나무

4층 회의실에서 창밖을 내려 보았습니다.

길 건너편 메가 커피 앞에는 여전히 사람이 줄을 서 있고, 그 옆으로 빨간색 간판의 부동산, 그리고 영어 이름의 분식집, 그리고 그 옆에는 지금쯤이면 저녁 장사 준비로 바쁠 민속주점이 보입니다.

자세히 보니 길거리 행인들은 마치 세계적인 안무가 오하드 나하린이 연출한 무대에 오른 무용수처럼 다양하지만, 똑같은 자세로 걸어갑니다.

이제 얼마 후면 저도 행인들처럼 지상으로(어쩌면 지하일 수도) 내려가서 일할 것입니다.

쾌적한 고층 사무실 생활의 끝이 사부작사부작 다가오고 있습니다.

서운한 감정이 없는 건 아니지만 실망할 일도 아닙니다.

배우들은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면 극중 이름을 내려놓고 자기 이름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저도 직장인이라는 역할을 내려놓을 때가 된 것이지요.

직장과 사회에서의 호칭은 본질적으로 내 것이 아니고 잠시 스쳐 가는 것일 테니까요.

저는 한 번의 전직 경험이 있습니다.

이름만 대면 모두가 알 수 있는 공기업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지요.

하지만 IMF 이후 거대 공기업도 수난을 당하던 시절에 자회사로 옮겼습니다.

이전 직장을 떠나고 나서야 직장의 울타리를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울타리 속에서 저는 안전했고, 그속에서 과대평가되었다는 사실도 깨달았습니다.

자회사로 옮기고 많이 고달팠습니다.

모든 것을 도움없이 제가 직접 해야만 했으니까요.

더 힘들었던 것은 사회적 편견이었습니다.

똑같은 일을 해도 대기업이 좋게 평가받았고, 똑같은 말을 해도 대기업의 말만 경청하더군요.

힘들고 어렵기만 했던 것은 아닙니다.

조직이 작으면 매뉴얼 보다 '사람' 중심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성취감을 맛볼 기회가 많습니다.

그리고 불만이나 문제가 생기면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기보다는 질문하고 탐구하는 습관도 생겼습니다.

무엇보다도 감사한 것은 작은 회사에서 일하다 보니 어려운 사람, 애쓰는 사람을 연민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무대 밑에서 동분서주하는 사람이 보이고, 길섶에서 소금처럼 작은 꽃을 피워낸 생명에 감탄할 수 있게 된 것도 ‘평탄치 않았던 시간’ 덕분이었을 겁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사람이란 존재는 무엇인지, 나는 누구인지,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한 삶인지가 궁금해졌습니다.

처음에는 취미로 이 책 저 책을 읽다가 “정예서 함께성장인문학 연구원”을 만났습니다.

정예서 선생님을 만난 후 체계적이고 균형적인 읽고 쓰기를 시작하우고, 질문하고 탐구하고,

앞서간 사람의 삶과 내 삶을 비추어보면서 비로소 ‘자기다움’을 뚜렷이 알게 되었습니다.

같은 길을 걸어가는 길동무가 생긴 것도 이 즈음입니다.

일회성 대화, 형식적인 대화가 아닌 내면과 성장의 언어를 말해도 잘 받아주니 마음까지 시원했습니다. 사회생활에서 선생님과 문우를 만나는 희귀한 일이 내게 찾아와 기뻤습니다.


6개월 후면 저는 번듯한 사무실을 떠날 것입니다.

앞으로 회의실에서 창밖을 내다보는 일도 없을 게고, 책상에 앉아 결재판을 받을 일도 없겠지요.

하지만 섭섭하지 않습니다.

내려다보는 일보다 마주하는 일, 손짓하는 것보다 손발을 쓰는 일이 저를 더 단단하게 할테니까요.

누가 알겠습니까? 어쩌면 행복에 더 가까워지고 있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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