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하는 것도 쉽지 않다

by 나오나무

개꿈을 꿨다.

기억나는 것이라곤 내가 꿈속에서 회사의 승진과 배치 업무를 하고 있었다는 것뿐이다.

어떤 기준으로 인사를 했는지, 누구를 발탁했는지는 생각나지 않았다.


심리학자들에 의하면 ‘꿈 일기’를 기록하고 그 궤적을 살펴보면 자신의 무의식 일부분을 들춰 볼 수 있다고 한다.

꿈은 단순한 환상이 아니기에 그렇게 하면 무의식이 갈구하는 진정한 욕구와 감정을 읽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개꿈도 무의식에서 표출된 것, 나는 간밤의 꿈을 소환했다.

심리학자들의 말처럼 내 무의식의 한구석에는 여전히 회사 소속감과 그 달콤함에 대한 미련이 집착처럼 남아있는 것처럼 보인다.

나는 ‘벌써 내려놓았어’ 하며 부정하고 있지만, 어쩌면 공원 구석에 쌓여있던 지난 봄의 잔설처럼

내 무의식에는 ‘직장’이 그렇게 초라하게 남아있지 않을 거라고 어떻게 자신할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내가 직접 조종할 수 없는 무의식의 세계이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새로운 세계를 향해 한 발 한 발 꾹꾹 눌러 내딛는 것밖에 없다.

그러다 보면 무의식에도 변화가 생기고 꿈도 변하는 날이 올 것이다.


요즘은 ‘퇴직’한다는 것이 말처럼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님을 절감하고 있다.

그저 몸만 빠져나온다고 퇴직이 완성되는 것이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정년퇴직은 말이다.

그래서였을까, 퇴직 선배들이 회사가 만들어준 빳빳한 명함은 한 장도 남김없이 반납하고 나오라던 이유를 이제야 알 것도 같다.


지난주에 있었던 일이다.

오랜만에 만난 후배는 예의 질문을 던졌다.

“퇴직하고 뭐 해요?”

친한 사이라 상투적으로 답변하지 않고 사실대로 말했다. 그도 몇 년 후면 퇴직할 나이라 자연스레 퇴직과 연관된 대화가 오갔다.

후배가 말했다. “저도 퇴직징후군을 예방하려고 부서장으로 승진한 이후 수평적 인간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그는 부서원에게도 존칭어를 쓰고, 갑질로 오해받을 만한 일들을 스스로 해결하고 있었다.


후배는 직장에서 얻었던 지위는 얼마든지 내려놓을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담백한 성품이니 그의 말은 허언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내가 겪고 있듯이 후배도 성취감이라는 일종의 감정을 내려놓아야 하는 시간과 직면할 것이다.


조직에서의 성취감은 회사에서의 시행착오와 육성과정을 거치면서 축적된 것이고,

근속년수와 직급, 업무경력, 집단내의 인간관계와 각종 제도적 지원 속에서 경험한 것이다.

따라서 특정 조직에서의 성취감은 온전히 내 것이라고 말하기 힘들 뿐더러 조직과 신분이 바뀌면 그 성취감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을 수도 있다.

무엇보다도 퇴직자를 대하는 사회나 새로운 직장에서는 개인이 경험한 ‘과거의 성취감’을 존중하거나 기대하지 않는 게 냉엄한 현실이다.


하지만 이런 성취감은 감정의 일종이라서 회사에 반납할 수도 없고, 무의식으로 전이될 수도 있어 쉽게 내려놓기도 어렵다.

이렇듯 ‘정년 퇴직’은 물리적인 현상일 뿐만 아니라 심리적 현상과도 깊게 연관되어 있지만 제대로 알려주는 사람은 없다.


퇴직을 심리적, 철학적 삶의 관점에서 재조망하지 않는다면
‘저임금 고령 일용 노동자’의 버거운 삶으로



그래서 퇴직은 그저 일시적 실직과 연봉 삭감이 수반되는 경제적 용어로 취급되고 있다.

그런 이유로 퇴직 이후 어떤 일을 할 것인지를 준비하려는 사람들은 많지만, 심리적으로 독립하고 성장하고 새로운 세상을 수용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매우 희소한 실정이다.

우리가 이처럼 퇴직을 경제적, 물리적인 현상으로만 이해하고, 심리적, 철학적 삶의 관점에서 재조망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저임금 고령 일용 노동자’의 버거운 삶을 밟게 될 수도 있다.


따라서 각자가 소망하는 삶을 향유하기 위해서는 오랜 기간의 직장생활을 어떻게 재평가할 것인지?,

어떤 지향성을 갖고 새로운 세계를 맞이할 것인지?에 대한 탐색 활동에 나서야 한다.

나는 이런 탐색 활동을 삶을 배우려는 의식적 활동으로 이해하고 있으며,

직장생활의 전성기인 40대부터, 늦어도 50대에는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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