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지나온, 엄마를 훑고 지나간 시간이 소금기처럼 배어있는
요 며칠 늙은 엄마집에 묶고 있습니다.
떠날 날을 정하지 않고 그냥 머무는 것은 30년 만에 처음입니다.
젊어서 떠난 자식이 늙어서 돌아왔는데 엄마가 얼마나 좋아할지 모르겠습니다.
쇠락한 엄마를 닮아가는 누추한 집을 청소하다가 먼지 쌓인 누런 벽시계를 보았습니다.
순간 수세미로 벅벅 닦고 싶은 충동이 일었지만, 막상 벽시계를 떼어내지도 못했습니다.
물끄러미 벽시계를 바라보았습니다.
시계 안에는 너무 낡아서 제풀에 부서질 것 같은 시간들이 뻘밭처럼 숨죽여 있습니다.
하나같이 엄마가 지나온, 엄마를 훑고 지나간 시간입니다.
덜컥 떠난 남편을 애 닳도록 불렀을 비탄도 벽시계에 고스란히 저장되어 있을 겁니다.
생각만 해도 징그러웠던 그 시간들이 소금처럼 엄마의 삶으로 굳어졌습니다.
그래서 엄마는 누런 벽시계 안에서 결코 나오지 않을 것입니다.
가시방석 같았던 시절이 안타까워 자식들이 아무리 불러보고 푸념해도 엄마는 나오지 않을 것입니다.
이제 알았습니다.
벽시계에서 걸어 나오는 순간 소금인형처럼 엄마도 녹아 사라질 것을 당신도 안다는 것을요.
무학의 엄마가 자식보다 현명했습니다.
앞으로도 누런 벽시계는 제자리를 지킬 것입니다.
시간이 안 맞아도, 시계 바늘이 된소리를 내도 고치려 말고 그냥 놔두려고 합니다.
시계를 쳐다볼 때마다 힘들어도 참겠습니다.
다만 작은 바람이 있습니다.
움푹 팬 엄마의 시간마다 밀물지고 그 위에 낙조가 발갛게 내리면 좋겠습니다.
잠깐이라도 엄마의 삶이 황홀해지게요.
"평범한 일상을 덖어 환희를 짓고 싶은" 함께성장인문학연구원 칼럼니스트 김황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