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하고 뭐해? (하)

by 나오나무

퇴직한 선배와 퇴직을 목전에 둔 직장 동기들의 이야기를 사분사분 헤쳐보니 두 개의 키워드가 숨겨져 있었습니다.

바로 ‘돈’과 ‘시간’입니다.

돈과 시간이 X축 Y축을 이루고, 이들의 조합에 따라 생기는 무수한 좌표점마다 한 인간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음을 알아챘습니다.


‘돈’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경제적 여유입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아이러니하게 돈을 잘 아는 사람도 없습니다.

심지어 부자조차도 돈에 무지하여 불행한 부자로 사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돈은 근본적으로 교환 수단” 입니다.(주1)

그러기에 돈이 많으면 할 수 있는 일도 많아지지만, 그 자체로 행복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결국 돈으로 무엇을 교환할 것인가? 에 따라 행·불행이 결정됩니다.

하지만 퇴직준비도 돈, 노후준비도 돈, 퇴직하고 나서도 돈에 애면글면하면서

정작 교환의 최종목적물인 인생의 행복과 불행을 공부하고 사유하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이는 마치 물건의 용도와 품질을 모르는 상태에서 무작정 구매하고 보려는 비합리적 소비자의 태도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아마도 많이 소비하고 소유하면 행복해질 것이라고 굳게 믿기에 가능한 일이겠지요.


또 다른 키워드는 ‘시간’입니다.

변화경영사상가이자 작가인 구본형은 “삶은 시간”이라고 일갈했습니다.(주2)

내게 주어진 시간에 내가 하는 일이 곧 내 삶의 전부라는 뜻일 테지요.

그러면 내게 주어진 시간에 “무엇을 할 것인가?”가 중요합니다.

퇴직을 앞둔 동기와 퇴직한 선배들 모두가 앞으로 주어질 ‘자유시간’을 부담스러워하는 모습에 놀랐습니다.

자유시간이 길어질수록 불안해지는 현상은 자신의 소중한 시간을 채울 수 있는 콘텐츠가 빈약하고 충만감을 얻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골프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골프는 시간을 보내기에 매우 적합합니다. 재미도 있고 즐겁습니다. 하지만 골프에서 내면의 기쁨을 얻고 충만감을 느끼는 사람은 흔치 않은 것 같습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자기 자신과의 시간을 잘 보내는 것이 제일 현명하고 유익한 일이라고 합니다.

또한 자신과 친밀한 사람은 타자에게도 친절하고 자기가 속한 공동체에도 호의를 베푼다고 합니다.

하지만 청년과 직장인은 힘들고 바쁜 현실에 매몰되어 있어 본래의 ‘자기’와 교제하고 화해할 여유가 없습니다.

그러니 혼자 있는 것, 자기를 대면하는 것이 부담스럽기 때문에 자유시간을 딜리트(delete) 하려고 SNS에 과몰입하고 재취업을 서두르는 것이 아닐런지요?

자유는 원하지만 자유시간을 어색해 하는 것은 참으로 모순적인 행동입니다.


제 주변의 실증사례를 통해 ‘퇴직 준비가 경제적 준비에 한정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직접 확인한 것은 큰 소득입니다.

스트레칭을 했다고 운동을 마친 것이 아니듯 경제적 준비를 했다고 노후와 인생2막 준비가 끝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지금까지는 먹고 살려고 어쩌지 못해 정해진 대로 살았다면, 이제라도 ‘나’에게 시간을 내주어야 합니다.


실제로 임종 환자들이 가장 후회하는 첫 번째가 남의 기대에 부응하느라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지 못했다, 두 번째는 너무 일만 하고 살았다, 세 번째는 자신의 감정을 있는 대로 표현하지 못한 것이라고 합니다.(주3)


우리는 삶의 마지막 순간에 후회하지 않으려면 지금 이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언젠가는 반드시 이 질문 앞에 설 것입니다.(주4)


“너, 충분히 살았니?”


“너, 충분히 사랑하고 왔니?”



주1. 시라이 사토시(오시연 옮김). 『삶의 무기가 되는 자본론』. 웅진지식하우스

주2. 구본형. 『익숙한 것과의 결별』. 을유문화사

주3. 백만기. <백만기의 은퇴생활백서>. 중앙일보. 2020.5.22.

주4. 김용규. 『어제보다 조금 더 깊이 걸었습니다』. 디플롯. 2025.5.

작가의 이전글퇴직하고 뭐해?  (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