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이전과 퇴직 후의 삶이 변하지 않는 이유는
2024년 한해에만 137만 명 이상이 직장 폐업이나 정리해고, 사업 부진 등으로 원치 않게 일자리를 떠났습니다. 이중 계절적, 일시적 사업 이외의 본질적인 비자발적 퇴직자만 55만 8천 명입니다. (주1)
우리 주변을 살펴봐도 퇴직한(권고사직이나 정년퇴직 포함)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분들 대부분은 외견상 별 탈 없이 잘 지내고 있는 듯 보입니다.
퇴직한 분들의 평균적 삶을 가름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빠르고 늦고의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 재취업을 해서 일을 합니다. 한 달에 두세 번은 친구들과 어울리고, 주말에는 가족 외식을 하고, 철 따라 여행을 가고, 일 년에 한두 번은 외국을 다녀오겠지요. 핸드폰에는 자녀 결혼사진이나 어린 손자의 동영상이 저장되어 있을 테고요. 운동이나 여가활동도 많아지고, 유투브나 텔레비전 보는 시간도 늘어납니다.
그래서일 겁니다.
우리는 퇴직자의 겉모습만 보고 ‘저렇게 살아도 별 탈이 없네’, ‘골프 치고 친구 만나고 여행가고 그러면 행복할거야’ 하고 쉽게 예단하려고 합니다.
게다가 가끔 만나는 그들은 근로소득 이외에 이런저런 연금과 부수입이 생기서인지 퇴직하기 전보다 더 여유있어 보이기까지 합니다.
그러니 우리는 은연중에 퇴직선배들을 룰모델로 삼으려 하고, 그 모습에 내 미래를 투사하면서 심리적 안정감을 얻기도 합니다. 별다른 고민 없이 그냥 재취업하고 연금을 받으면서 살아도 행복해 보이니까요.
하지만 그 평범한 모습이 저에게는 전혀 평범해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퇴직 전과 후의 삶의 모습에 차이가 없는 점이 이상하기까지 합니다. 퇴직이 일생일대의 큰 사건이라면, 그 전과 후의 삶이 분명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요?
퇴직이라는 사건은 사회적 역할이 변하고, 생애발달 측면에서의 핵심과제가 바뀌는 시기와 겹쳐서 일어나게 됩니다. 이런 전환기에는 그에 걸맞는 의식의 변혁이나 확장이 따라오게 마련인데, 퇴직 시점인 50~60대가 되어서도 의식의 전환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이는 일종의 ‘미성숙’이 아닐런지요. 만약 성년이 되었는데 그 의식은 청소년 수준에 머물러 있거나, 결혼 후의 의식이 독신으로 살 때의 의식과 다르지 않은 사람을 그대는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시겠는지요.
그런데 퇴직을 삶의 전환기로 삼는 사람은 흔하지 않아 보입니다. 대부분 변화가 없는 삶을 당연시하고 개중에는 다행으로 여기는 경우까지 있습니다.
저는 그 이유가 여전히 궁금합니다.
아마도 퇴직을 미리 경험하거나 배우지 못한데도 원인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죽음을 모르는 것은 죽음에서 살아 돌아온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실은 상실만 있을 것 같은 노년기도 그런 범주에 있지요. 그래서 죽음과 노년을 두려워하거나 부정적으로 취급하는 것 같습니다.
제가 경험하기로는 퇴직도 그렇습니다.
퇴직이 미래에 있는 사람에게 퇴직자의 이야기는 아직도 먼 남의 이야기로 느껴져서 피상적으로 묻고, 건성으로 듣게 되더군요. 그리고 자기 속사정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퇴직 선배도 만나기 어렵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성공담과 자랑은 즐겨 말하지만, 실패와 어둠, 궁색함은 숨기려고 하니까요. 게다가 퇴직을 일종의 상처와 패배처럼 받아들이는 사회 분위기는 퇴직을 공론화하는데 장애가 되기도 합니다.
‘퇴직’이라는 통과의례가 사라진 더 큰 이유는 노화를 부정하고, 경제적 삶을 강조하는 세태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는 온갖 대중매체를 통해 딸과 구분되지 않는 50대 몸매, 동안童顏의 60대, 실버 모델, 80대 마라토너 등 세월을 역주행하는 성공담을 주입받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중국 시진핑과 러시아 푸틴이 공식석상에서 주고받은 대화가 오래 살수록 젊어지고, 이번 세기에 150살까지 수명이 연장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지옥같은 전쟁터를 앞에 두고 개인적 탐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세계적 지도자들의 초라한 인격에 절망했지만 말입니다.
아무튼 누구나 오래 살고, 젊게 살려고 합니다. 이 욕망 자체는 나쁜 게 아니지만, 부작용도 분명 있습니다.
그중의 하나가 바로 성숙한 삶, 자아(self)의 성장을 경시하는 세태의 확산입니다.
고전인문학자 고미숙씨도 “청춘을 계속 연장하겠다는 욕망이 지배하고 있어 성숙하지 않는 것”이라고 일갈하면서, 얼굴이 동안이고 예뻐지면 좋을 것 같지만, 오히려 불안과 두려움이 점점 커지고, 그 불안 때문에 더 외모에 집착하고 자기 성숙을 거부하는 악순환에 빠진다고 했습니다.(주2)
퇴직 전후의 시기는 사회적, 경제적, 육체적, 심리적 측면에서 의미있는 삶으로 가는 분수령입니다. 따라서 삶의 동기, 가치관, 규범, 성과지표, 역할모델, 사명 등은 퇴직 전과 후의 그것과 다르고 또 달라져야 합니다.
대표적인 예를 두 가지 들어보겠습니다. 첫째, 퇴직 전에는 하기 싫은 일을 하는 시기라면, 퇴직 후에는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시기라고 말합니다. 둘째, 퇴직 전에는 생산성이 중요한 가치라면 퇴직 후에는 자아 통합을 중요한 삶의 이슈로 삼으라고 합니다.(주3)
변화하는 삶의 요구를 수용하려면 인간군상이 걸어왔던 삶의 흔적을 탐구하는 인문학 관련 공부를 하면서 자기의 삶을 통찰할 필요가 있습니다.
누구나 퇴직이라는 문을 통과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문을 열 때, 눈앞에는 가슴 설레는 세계가 펼쳐져 있고 등 뒤에서는 함성과 박수 소리가 들려오면 얼마나 행복하겠는지요.
그러니 경제적 안정을 위한 준비와 함께 삶을 위한 공부도 미리 시작하면 좋겠습니다.
준비를 안 하거나 막연한 환상을 갖고 있으면 미래는 항상 두렵고 불안하게 느껴질 테니까요.
(주1) 통계청 자료. 연합뉴스(2025.2.2.)에서 재인용
(주2) 고미숙외. <<나이듦수업>>. 서해문집
(주3) 미국정신분석학자인 에릭 에릭슨은 <심리사회적 발달이론>을 창안한 교수로서, 그는 '인간은 영아기부터 노년기에 이르기까지 8단계의 발달단계를 밟으며 성장한다'고 주장했고, 특히 중년기에는 생산성, 노년기에는 자아통합이 삶의 과제로 주어진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