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로 이동하면 보이지 않던 것들이 대중교통이나 도보를 이용할 때 다르게 다가오는 순간들이 있다. 사진을 찍을 수 없을 만큼 급하게 지나쳐버리는 순간이 있는 반면, 걷다 보면 우연히 다가와주는 순간이 있다.
지난 주말에 대학로에서 공연 시간을 기다리던 중 낙산공원으로 올라가는 언덕길 초입에서 <공간과몰입>이라는 열 평도 안 되는 작은 독립 서점을 만났다. 책을 좋아하는 이와의 약속이었기에 당연하게 발걸음을 옮겨서 들어가 보았다. 작은 공간이라서 많은 책은 보이지 않았지만, 이 공간에는 과몰입러들의 많은 발자취가 숨겨져 있었다.
공간과 몰입이 아니라 공간 과몰입임을 알게 되는 건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곳을 다녀간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자신의 몰입을 인증하고 있었으니까.
이렇게 오늘도 누군가의 소중한 공간을 우연 찾아가 만나는 순간이 있었다.
공연시간이 가까워지고 공연장으로 가는 길.
티켓 박스랑 많은 곳을 가리키고 있는 가로등의 표지판이 뭔가 마음에 들어서 사진을 찍었다. 그러다가 자연스럽게 눈이 간 건 그 뒤의 작은 약국이었다.
- 일요일 저녁 시간인데도 문을 연 약국이 있구나 -
걸음을 옮기며 바라본 약국 안에는 연세가 지긋하신 할아버지 약사님이 계셨다.
피곤하셨는지 자리를 지키시면서 졸고 계신 모습이었다.
뭔가 평화로운 순간 눈으로만 담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또 모르는 이의 사진을 남기는 것도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계속해서 머릿속에서 부딪혔다.
뭐,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무 사진도 남기진 못했다.
폴란드의 시인 쉼보르스카의 시 <두 번은 없다>에 '반복되는 하루는 단 한 번도 없다'는 구절이 있다.
늘 집- 회사-집을 반복하는 일반 직장인들도 매일 시계추처럼 같은 곳만 왔다 갔다 하더라도 그 안에서의 경험, 순간은 두 번은 만날 수 없다는 의미로 읽힌다.
내가 저 시를 만났던 순간은 몹시 추웠던 어느 날 광화문 교보문고의 간판에서였다. 시간의 흐름은 기억이 나지 않을 만큼 희미해졌지만 그날의 분위기와 그 순간은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는 걸 보면 참 신기하기도 하다.
사진을 많이 남기다 보면 매일 비슷하다 느끼는 일상에서 차이점을 찾게 된다.
그리고 그 사진들은 일기처럼 클라우드 한편에 쌓이면서 '그땐 그랬지'라는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그 사진을 보는 시간마저 누군가에겐 추억팔이면서 누군가에겐 기억을 소환하는 또 하나의 순간이 된다.
출근이 얼마 남지 않은 시간, 가방에 카메라와 책을 챙겨 넣어본다.
그리고 나는 내일 또 새로운 순간을 만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