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함을 걷다
사진을 찍다 보면 유명하다고 하는 곳을 일부러 찾아가게 되는 순간들이 종종 있다. 최근에는 용산에 일이 있어서 방문한 김에 용산의 그 유명한 육교를 지나가 보았다.
정확한 명칭은 <한강초교앞보도육교>이며 사진을 찍는다는 사람들은 꼭 한 번씩 거쳐가는 좋은 스폿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보이는 남산타워는 낮에도 아름답지만 밤에 봤을 때 그 매력이 더욱 살아난다.
사실 육교는 1990년대까지는 그 숫자가 계속 증가하다가 요즘 들어서는 일부러 찾지 않으면 찾아보기 힘들 수준으로 많이 줄어들었다. 정부 공공데이터포털(https://www.data.go.kr/)의 전국육교정보표준데이터를 보면 2025년 말 전국의 육교 수는 총 1,400개로 기록되어 있다.
1990년대의 정확한 수치는 기록되어 있지 않으나 아마 일만 개는 족히 넘었던 육교가 이렇게 적은 수로 줄어든 이유는 보행자의 불편함이 가장 컸을 것이다. 계단을 오르고 도로 위 교량을 건너고 다시 계단을 내려가는 것보다 바뀐 신호를 건너는 것이 훨씬 편하기 때문이다. 1990년대의 뉴스를 기억해 보면 육교 아래에서의 무단횡단으로 인한 사고가 정말 잦았던 것도 이유 중 하나일 수도 있겠다.
육교는 분명 불편하다. 하지만 <한강초교앞보도육교>만 보더라도 앞에 횡단보도라는 좋은 대안이 있음에도 찾게 되는 이유가 있다. 난 그 이유가 감성이라고 생각한다.
신기하게도 불편함을 이유로 사라졌던 것들이 요즘은 감성을 얹어서 다시 돌아온다. LP만 해도 그렇다. 이 역시도 비효율적이지만 감성으로는 어디 가서 뒤지지 않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노래를 듣는 방법은 시대에 따라서 변화해 왔다. 1950~1980년대에는 LP가 1990년대에는 카세트테이프가 2000년대에는 CD로 MP3로 그리고 지금은 버튼하나만 누르면 어디서나 고음질의 스트리밍이 가득한 시대가 되었다.
그중 LP는 CD나 스트리밍에 비해 비싸고, 공간도 많이 차지하고, 노래를 듣는 것도 불편하고, 또 별도의 LP 플레이어를 가져야 할 만큼 비용이 많이 들기도 한다. 거기다가 심지어 몇 곡이 끝나면 다시 가서 LP판을 뒤집어주고 다시 카트리지를 이동해야 하고 재생을 눌러 판을 돌려줘야 한다. 정말 귀찮으래야 이렇게 귀찮을 수 없다. LP가 시대의 흐름에 따라 사장되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LP를 찾는 건 역시나 감성 때문이다.
감성이라는 이름으로 허용되는 불편함은 어디까지일까?
어쩌면 우리는 '불편함'을 감성이라는 말로 적절히 숨기고 있는 건 아닐까?
올라선 육교 위에서 바라본 도로, 그리고 그 앞의 횡단보도에는 바쁘게 오고가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사진을 찍고 있는 내 뒤로도 횡단보도를 건너도 되지만 굳이 계단을 올라서 이 곳을 지나가는 행인들이 적게나마 있었다.
이렇듯 불편함을 감수하면서까지 마주하고 싶은 감성이 있다면 그 순간을 일부러 찾아 나서는 선택도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불편함과 감성의 중간 그 어딘가에 서 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