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겨울은 별로야
겨울의 햇살은 유난히도 따뜻한 느낌이다.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고 찬바람이 피부에 닿을 때 햇살이 따뜻하게 내리쬐는 건 겨울에만 느낄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다. 뭐 비슷한 거라면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고 이불을 덮고 다리를 한쪽 내놨을 때 느껴지는 다리의 감각이 있을 수는 있겠다.
어린 시절부터 단독주택에 살았던 나에게 겨울은 늘 좋은 기억이 아니었다. 눈이 오면 마당을 치워야 되는 게 겨울의 일상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턴가 '내 집 앞 눈 치우기'라는 게 생기더니 집 앞의 도로까지 치우는 날이 와버리고 말았을 때, 아침마다 눈이 온다는 예보가 있는지 찾아보는 루틴이 생겼다.
지금은 아파트로 이사 와서 눈에 대한 걱정이 조금 덜긴 했지만 일기예보를 보는 건 지금도 여전하다.
대부분의 남성들이 겨울이라는 계절을 대하는 태도는 20살을 전후하여 바뀌는 듯하다. 이유는 너무나도 당연하지만 군대라는 특수 조직 덕분이다. 보급로를 확보해야 한다는 이유로 군생활의 4분의 1은 눈을 치우면서 보낸다. 지금도 열심히 국방의 의무를 다하고 있는 20대 초반 청년들도 열심히 보급로를 확보하고 있는 중일 것이고.
나 역시도 20대 초반의 2번의 겨울을 군대에서 보냈다. 그나마 철원, 양구, 인제로 대표되는 최전방은 피했고, 나름 최전방(?) - 실제로도 최전방으로 분류는 되어있다 -이라고 불리는 삼척에서 해안경계로 군생활을 해서 눈을 만날 일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었을까.
그렇다고 눈이 오지 않는 건 아니었다. 동해안은 눈이 자주는 안 오는데 한 번 오면 과장 없이 1미터도 넘는 어마어마한 양이 온다. 그럴 때면 치워도 치워도 계속해서 쌓이는 눈에 막사 주변이 온통 눈으로 가득 찼었다. 도로가 꽝꽝 얼어서 보급차량이 제때 도착하지 못하면 식재료가 부족해 자연제설이 될 때까지 한동안은 부식만 잔뜩 먹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 기억들이 남아있어서 그런지 나는 아직도 눈이 많이 오는 겨울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운전을 해서 출장을 다니기도 불편하고, 차가 미끄러질까 하는 두려움도 있다. 또 아직 본가에 살고 계시는 부모님이 눈을 다 치우고 계실 거라는 생각을 하면 마음이 불편해지기도 한다.
눈 스포츠를 즐기지 않는 이들이나 나처럼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겨울은 불친절하다.
봄의 따뜻함이 담기지도 않고, 여름의 색감도 없고, 가을의 화려함은 접어둔 계절이 겨울이다. 온 세상이 하얗고 나무들은 초라하고 그냥 봄을 위한 잠깐의 휴식정도로 느껴질 때가 많다. 그나마 매력 있는 하얀 세상, 즉 설경을 찍으려고 마음을 먹으면 날씨는 너무 춥고 운전은 위험하고 심지어 도착했을 때 날씨도 도와주지 않는 날들도 많아서 아무것도 만나지 못하고 돌아와야 하는 일도 수두룩하다.
그야말로 '계륵'이 아닐 수 없다.
그래도 1년에 3개월은 무조건 돌아오는 계절이다 보니 그 안에서 좋아할 만한 점들을 찾곤 하는데 그게 위에서 말한 겨울의 햇살이다. 날씨가 추울 때는 시베리아의 공기가 밀려들어와서 서쪽에서 넘어오는 탁한 공기들을 밀어내는 일들이 잦다. 덕분에 구름 한 점 없는 하늘과 차갑고 청량한 공기, 마지막으로 낮은 곳에서 비추는 햇살이 맞아떨어지는 날들이 생긴다. 내가 겨울에서 거의 유일하게 좋아하는 날이다.
세월이 흐른다는 걸 이럴 때 많이 느낀다. 마당에서 눈사람을 만들면서 즐거웠던 어린시절이 있었고, 20대에는 겨울은 쓰레기의 계절이라며 눈을 퍼서 지겹게 삽질하고 버리던 시간의 반복이 있었다.
불혹이 가까워 진 현재 아직도 사계절 중에서는 제일 별로긴 하지만 이제는 겨울이 마냥 싫지만은 않다.
미친 듯이 눈을 치우던 20대의 나는 기억 속 한 장면이 되어 천천히 눈처럼 녹아 사라지고 있기 때문일까?
싫어하는 걸 찾는 것이 더 쉽다는 걸 알면서도 싫어하는 것 중에서도 좋아할 만한 것을 찾으려고 하는 성숙해진 나 자신이 보이곤 한다. 그리고 앞으로는 추운 겨울 속에서 따뜻한 햇살을 찾은 것처럼 힘들고 지쳤을 때 나만의 따뜻한 순간을 마주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