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푸르나 트레킹 중 푼힐을 가기 하기 위해서 포카라에서 반단티라는 곳까지 지프를 타고 와서 트레킹을 시작한다. (이전에는 나야풀까지 그리고 조금 더 힐레, 그리고 울레리까지 차량으로 이동하여 출발하던 것이 점점 더 많이 차량을 타고 이동하여 출발을 하는 모양이다)
지프로 가는 길은 머릿속에 그려 놓았던 오프로드 길의 예상 강도를 훌쩍 뛰어넘는다. (지누단다로 하산하고 나서 삼룽에서 지프를 타고 내려온 길이 딱 내가 예상해 왔던 정도의 길이었다)
‘어? 저길 지나간다고? ’ 하는 생각을 연속적으로 하게 만드는 산길을 따라서 굽이굽이 덜컹덜컹 거리며 물방울이 튕겨지듯 온몸이 여기저기로 튕겨지며 나가는데, 나중에 그 길을 버스도 가고 있는 걸 보고 경이로움을 표하게 된다.
거대한 산은 많은 마을을 품고 있어 사람들의 거처를 많이 지나게 된다. 차를 타고 들어오면서도 경탄을 하게 되는 풍경이 바로 가파른 산의 경사를 따라 조성된 어마어마한 밭들이다.
어디서 보아도 자연을 이겨 나가는 인간의 불굴의 의지를 만나면 존경을 표하게 되지만, 지나가는 곳곳마다 만나는 히말라야의 밭들을 보면 위치나 규모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촘룽을 가는 길은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를 오르는 사람들에게 계단지옥이라고 알려진 악명이 높은 계단길이다. 촘룽 주변의 돌계단이 6000여 개 된다거나 3200, 3600 돌계단을 올라야 한다거나 하는 말들은 어떤 것이 맞는지는 모르겠으나, 끝없는 계단의 향연은 보는 사람을 질리게 하는 면이 있다.
가파른 산을 오를 때는 모자를 꾹 눌러쓰면 좋다. 저 높은 곳을 계속 바라보면서 가면 힘이 더 들지만, 시야가 확보된 서너 발자국 앞만 보면서 무리하지 않고 걷다 보면 목적 지점에 어느새 도달해 있게 된다.
촘룽에 도착해서 점심을 해야 하는데 점심을 먹기엔 시간이 너무 일러, 맥주 한 잔으로 목마름을 달래고 시누와를 향해 간다. 촘룽의 긴 돌계단 길을 절반도 넘게 내려갔을 때 가이드가 선글라스를 조금 전 쉬었던 롯지에 놓고 온 것을 깨달았다. 아직은 괜찮지만 내일이나 모레 베이스캠프 근처로 가면 눈에 반사되는 빛 때문에 반드시 있어야 하는 물건이니 나중에 찾을 수는 없는 상황이다. 다시 돌아가서 가져와야 하는데, 아무래도 무리해서 다녀올 것 같아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갔다 올 것을 신신당부하며 비스따리(천천히)를 외치며 올려 보내고, 길 가에 테이블이 놓은 그늘에 앉아 노트를 펴고 생각을 잠시 정리하며 긁적이다 고개들어 보니 마을 너머 펼쳐진 밭들의 물결이 눈에 들어온다. 아마 힘든 가파른 길을 걸어만 갔으면 무심히 잘 보지 못하고 지나갔을 확률이 높다.
가이드가 물건을 놓고 와서 나에게는 지나가는 트래커들을 구경하며 인사도 응원도 하고 마을을 다시 돌아볼 수도 있는 기회가 생겼으니, 이도 고마운 일이다.
지프를 타고 들어오면서도 많이 보았지만 눈앞에서 보게 되니 그 규모가 엄청나다는 것을 새삼 느끼며, 기껏 한 두 번 이 언덕을 지나가며 계단지옥이네 등의 표현으로 엄청난 고난의 길을 이겨내는 듯한 말을 하고 있는 것이 새삼 부끄럽게 느껴진다. 저 밭을 조성하고 곡물을 재배해 나가는 그네들의 삶의 고단함과 척박한 환경을 이기고 살아가는 강인함이 대단하게 느껴진다. 그러면서도 평안함이 깃든 미소를 보여주는 그들의 얼굴에서 아름다움을 느낀다. 이게 외부자인 여행자의 시선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무언가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을 보여주는 것 같은 것에 대해 가슴이 따뜻해지기도 한다.
선글라스를 찾아 돌아온 시바는 나의 당부와는 달리 서둘러서 부지런히 다녀온 기색이 역력하다. 그래서 오고 난 다음에도 한참을 쉬었다 출발한다.
어제는 걸으면서 롯지 이름에 구룽이라는 이름이 보여 여기가 구룽족들이 사는 마을인가 물었는데 그렇지는 않고, 이 집주인이 구룽족이라서 그런 것 같다고 했는데, 구룽이라는 단어에서 오래된 기억 속의 영화 하나가 떠올랐다.
<믿거나 말거나 찬드라의 경우> 한 장면. ⓒ국가인권위원회
국가인권위원회가 지금과 달리 나름 역할을 잘 만들어나가던 무렵에 사람들의 '인권 감수성'을 발전시키기 위해 기획한 '인권영화 프로젝트' <여섯 개의 시선>이라는 옴니버스 영화가 있다. 이 중 6번째 영화인 박찬욱 감독의 <믿거나 말거나, 찬드라의 경우>는 실제 사건을 다룬 실화 영화다.
네팔 노동자인 찬드라 쿠마리 구룽이 한국어를 못 한다는 이유로 행려병자로 오인받아 무려 6년 4개월 동안이나 정신병원에 갇혔던 사건을 다루고 있는데, 영화와 관련하여 감독은 “그들 모두 평범한 사람들이고, 평범한 사람들의 무능과 무관심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다. 결국, 사회 구조적인 문제이고 악의를 가진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게 이 영화의 포인트였다.”라고 말하고 있다. 영화를 보면서 우리 모두일 수도 있고 나일 수 있는 사람들의 표정과 모습을 응시하며, 편견과 인권 감수성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었던 기억이 있다.
지금의 우리는 거기에서 얼마나 발전된 인식을 향해 발걸음을 내디뎠을까 하는 질문을 던지게 되는 일을 트레킹 내내 만나게 된다. 포터들이 지고 올라가는 짐의 무게를 보며.
단체트레킹 팀의 짐을 지고 가는 포터의 짐의 무게는 유독 많아 보이고 무거워 보인다. 카고백을 세 개나 묶고 자신의 가방을 그 위에 올려서 머리의 끈으로 지고 가는 포터들은 얼핏 장사처럼 보인다.
사람들은 포터들이 고산에 적응할 수 있는 체질과 무거운 짐을 거뜬하게 소화할 수 있는 체력을 타고났다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그들이 짐을 지고 가며 흘리는 땀과 거친 호흡은 그런 인식이 얼마나 기만적인 인식인가를 여실히 보여준다.
중간에 쉬면서 단백질 바를 먹으려 꺼내다가 같이 쉬고 다른 팀의 포터들이 있어 권해서 같이 먹으며 잠시 이야기도 나누는데 오르막에서의 짐 무게는 언제나 만만치 않다고 웃으며 말한다. (쵸코렛 등을 권할 때는 이것이 실례가 될 수도 있어 항상 조심스럽다)
서구인들에 의해 시작된 트레킹을 돕는 ‘셰르파’는 히말라야 고산지대에 사는 부족 이름이다. 이들은 고산에 적응력이 뛰어나서 트레킹에 주요한 인력이 되었고 히말라야 등반에서 중요한 동반자가 되어 왔다.
지금은 가이드, 가이드 겸 포터, 포터 등으로 불리는데, 현재는 셰르파족만이 이 일을 하는 것이 아니다. 일자리가 부족한 나라이기에 저지대에 사는 가난한 농부이거나 가난한 가정의 소년들이 이 일을 선택한다고 하는데, 포터 일의 노동 강도는 무척이나 고된 것이다.
그나마 포터들의 인권에 대한 논의가 조금은 진전이 있어 포터들에게 줄 수 있는 짐의 무게에 한도를 정했다고는 하는데, 딱 봐도 그 무게를 훨씬 상회하는 짐들을 지고 가는 포터들을 보면 매번 가슴이 무겁다.
히말라야 가파른 경사지에 밭을 조성했던 그 고단한 노동과 감당 어려울 정도의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포터들의 땀으로 범벅된 얼굴이 겹쳐지면서, 잠시 들렀다 멋진 풍광을 보고 환호하다가 떠나는 여행객으로서 보는 것과 이 땅에 터 잡고 뿌리내려 살아가는 사람들이 접하는 현실이 같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을 새삼 하게 되면서 여행객으로서 가져야 하는 존중의 마음을 다시 새겨본다.
츄일레의 아침은 새소리로 시작되었다. 아직 까만 어둠이 모은 걸 숨겨놓고 있는 새벽 4시경 새 한 마리가 혼자 뾰로롱 대는 울음을 시작하더니 얼마나 지났을까,다른 새의 호응을 받아내고, 또 다른 종류의 새소리들이 섞이기 시작하여 산의 어둠을 새소리들이 밀어내기 시작했다.
피곤도 했을 터인데 낯선 곳에서의 잠자리라 그런지 아직 긴장이 덜 가셔서인지 새소리를 듣고 깬 잠은 다시 들지는 않고, 비몽사몽 간에 꿈속에선지 현실에선지 모르는 상태로 새소리를 오래 감상하고 있다. 5시가 조금 넘으니 식당에서 무언가를 써는 도마의 칼 소리가 들려오며 내 정신도 온전히 깨어난다.
밖으로 나오니 어슴프레 밝아오는 날에 멀리 마차푸차레가 살짝 모습을 드러냈다. 하늘이 쾌청하지는 않고 흐릿한 안개를 살짝 두르고 있다. 안나푸르나도 눈 덮인 봉우리를 흐릿한 속에 살짝 모습을 보여준다.
밀크티를 한잔 부탁해서 따뜻한 찻잔을 들고 넓은 마당에서 서성이며 해 뜨기를 기다리는데 롯지 집의 쾌활한 딸이 다이닝룸을 물청소하면서 명랑 쾌활한 웃음으로 주변을 밝히자 화답이라도 하듯 구름 사이로 해가 발그레한 얼굴을 살짝 내밀기 시작한다. 어제 푼힐에서 일출을 못 본 한을 그나마 풀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