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
고요한 한 주가 시작됩니다. 여전히 소란스럽고 바쁜 한 가운데서 살아가지만 왠지 아래로, 또 안으로 깊숙이 가라앉아 가는 한 주입니다. 성목요일 저녁에 거행되는 주님 만찬 미사를 마치고 나면 성당에서 울리던 종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습니다. 대신에 종을 담당하던 수사님이. ‘딱딱이’를 들고 온 수도원을 돌아다니면서 기상시간과 기도시간을 알려줍니다.
성목요일 아침부터는 ‘테네브래’(Tenebrae)라고 해서 평소보다 많이 긴 밤기도와 아침기도를 바칩니다. ‘테네브래’는 성금요일 밤기도 응송 구절 “Tenebrae factae sunt, dum crucifixissent Jesum Judaei”(유다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았을 때, 어둠이 일었도다)에서 따온 이름으로, ‘어둠’을 뜻합니다. 파스카 성삼일 시간전례, 즉 성무일도 때에는 성호경도, 영광송도, 찬미가도, 주님의 기도와 축복도 없습니다. 그저 단순하게 묵묵히 시편을 노래하고, 대신에 매 시편이 끝날 때마다 아빠스가 대표로 본기도를 바칩니다. 식사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성호경도 없고 아빠스 혼자 식사 전 기도를 노래하는데, 대답하는 “아멘”도 없습니다. 저희는 평소에도 식사 때 대화를 하지 않기는 하지만 대신에 식당독서를 듣는데, 성삼일에는 식당독서조차 없습니다. 이 기간, 전례를 할 때를 제외하고 들리는 소리라고는 새소리밖에 없습니다.
언뜻 떠오르는 독일 뮌스터슈바르작 수도원에서의 성주간, 특히 파스카 성삼일 풍경입니다. 이 기간 그곳 수도원에서 바치는 시간전례는 현대 로마 성무일도가 아니라 옛 수도승 성무일도와 옛 로마 성무일도를 복원한 기도를 바칩니다. 그래서 더 단순하지만, 더 깊이 들어갈 수 있어 좋습니다. 테네브래 때에는 제단에 테네브래 촛대를 가져다 놓는데, 보통 초 15개가 꽂혀있는 삼각형 모양의 촛대입니다. 밤기도와 아침기도 시편 낭송을 하는 중간중간 제의방 담당 수사님이 제단으로 나와 촛불을 하나씩 끄는데, 기도를 마칠 즈음이면 제일 꼭대기에 있는 하나의 초,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하나의 초만 남아 불을 밝히게 됩니다.
성주간이 되면 이전까지 흐리고 춥기만 하던 독일 날씨가 갑자기 따뜻하고 화창한 봄날씨로 바뀝니다. 그러면 형제들은 침묵 가운데 산책을 하며 묵상하러 수도원 정원으로 나갑니다. 기억에 남는 모습 가운데 하나는, 저에게 늘 친절했던 할아버지 수사님이 전례가 끝나면 꼭 바퀴달린 보행기를 끌고 나와 작고 예쁜 풀꽃 몇 가닥을 무릎에 앉혀놓고 햇빛 아래서 꾸벅꾸벅 졸던 모습입니다. 무언가 더 심각하고, 처절할 것만 같고, 주님과 세상의 고통을 마주하면 더 아프기만 한 이 때에, 수도원에서는 고요하고 잔잔한 평화도 함께 느낍니다.
이 기간, 특히나 전례 때 우리가 바치는 기도, 시편, 복음 말씀 등 모든 것들이 시가 되고, 노래가 되어 수많은 음악가들에게 영감을 주었습니다. 감정이 휘몰아치는 음악부터 시작해서 너무나 아름다운 음악까지 얼마나 많은 음악 유산이 이 파스카 성삼일에 집중되어 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어떠한 음악이든 가만히 듣고 있으면 오히려 사납게 휘몰아치는 감정과 자기 홀로 고고하다는 의식에서 점차 마음 속 깊은 곳으로 내려가 평온하고 잔잔한 내면을 마주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 사순 마지막 시기, 가장 거룩한 시기에 함께 들었으면 하는 몇 개의 곡들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먼저 3년 주기로 마태오, 마르코, 루카 복음서의 수난기를 낭독하는 주님 수난 성지 주일과 관련된 수난곡이 있습니다. 여러 음악가들이 수난곡을 만들었지만, 바흐의 마태오 수난곡(Matthäuspassion, BWV 244)는 빼놓을 수 없는 음악입니다. 특히 첫 곡은 예수님이 겟세마니 동산에서 붙잡히시는 장면을 음악적으로 먼저 보여줍니다. 마태오 수난곡에서 실제로 예수님이 붙잡히시는 건 제1부 마지막에 가서야 이루어지지만, 이 제1부를 시작하면서 먼저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겁니다. 이때 예수님을 잡으러 행진하고(“탐타 탐타”), 동산으로 올라가는 유다인들의 발걸음(“타다다다다다”하며 올라가는 음)을 곡 시작부터 베이스 악기 그룹이 잘 표현합니다. 지휘자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는 바흐의 마태오 수난곡 첫 멜로디가 마랭 마레(Marin Marais)의 ‘멜리통 추모곡’(Tombeau de Monsieur Meliton)의 첫 멜로디에서 영향을 받지 않았나 하고 추측합니다. 마랭 마레의 곡을 들어보면 마태오 수난곡과 같은 멜로디인데도 비올라 다 감바라는 악기 때문인지, 그 슬픈 느낌이 얼마나 나에게 와 닿는지 모릅니다.
성삼일 테네브래때 아침기도 첫 곡으로 부르는 시편 51편, ‘미세레레’(Miserere)와 밤기도 사이에 낭독하는 ‘예레미야 애가’(Lamentatio Jeremiae)도 빼 놓을 수 없습니다. 알레그리의 미세레레는 두 개의 합창단과 하나의 스콜라(그레고리오 성가를 부르는 선창자 그룹), 이렇게 모두 세 개의 그룹이 시편 51편을 한 절씩 주고받으면서 너무나 아름다운 노래를 들려줍니다. 예레미야 애가는 수많은 작곡가들이 작곡하긴 했지만, 개인적으로는 토마스 탈리스(Thomas Tallis)의 곡을 추천합니다. 시편 51편은 다윗의 참회, 예레미야 애가는 예루살렘의 몰락에 대한 비탄을 담고 있는 곡인데 이렇게 아름다운 곡을 듣고 있자니 가사를 몰랐더라면 그냥 아름다움 속에만 폭 파묻혀 듣고 있을 것만 같습니다. 그래서 조금 위험한 아름다움이기도 한데,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로 다시 돌아오기 위해, 해당하는 성경 가사도 함께 기억하면서 들었으면 합니다.
성목요일 주님 만찬 미사 때 부르는 ‘참 사랑이 있는 곳에’(Ubi caritas)와 성금요일 주님 수난 예식 때 부르는 ‘비탄의 노래’(Popule meus), 저녁기도 찬미가로 부르는 ‘임금님 높은깃발 앞장서가니’(Vexilla regis) 등도 있습니다. 프랑스의 모리스 뒤뤼플레(Maurice Durufle)와 노르웨이 출신 올라 야일로(Ola Gjeilo)의 Ubi caritas, 빅토리아(Tomás Luis de Victoria)의 Popule meus, 안톤 브루크너(Anton Bruckner)의 Vexilla regis를 추천합니다.
물론 성 금요일 주님 수난 예식 때 노래로 부르게 되는 요한 수난곡은 두말할 것도 없습니다. 바흐의 요한 수난곡(Johannespassion, BWV 245)은 마태오 수난곡과는 전혀 다르게 “주님, 저희 주님, 온 땅에 당신 이름, 이 얼마나 크시옵니까!”라는 시편 8편을 가사로 사용하면서, 존엄한 임금 앞에서 당신의 수난을 알려달라는 간청을 바치는 이의 두근대는 심장 소리를 들려줍니다.
그밖에 너무나 많은 곡들, 많은 작곡가들의 노래를 함께 나누고 싶지만, 제 욕심이 아닌가 합니다. 주님의 수난 앞에서 생생이 휘몰아치는 감정이든, 너무나 아름답게 미화한 음악이든 이 노래들이 결국 이 지상을 살아가는 우리 마음에 구원과 평화를 가져다주고, 또 세상에 평화를 기원하는 마음을 더해주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