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
사순 시기, 참 오묘한 때입니다. 만물이 소생하는 시기, 땅은 파릇파릇 해지고, 따뜻한 바람이 불어와 예쁜 노랑 분홍 꽃들이 꽃망울을 터뜨리는 시기입니다. 어딘가 놀러 나가야 할 것만 같고, 그래서 가슴이 두근두근 하는 때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꼭 이런 때에 사순시기가 겹칩니다. 교회는 이 시기에 세상과 우리를 대신해 모든 죄를 짊어지신 예수님을 기억하면서 고행과 절제, 단식, 더 많은 기도, 자선을 실천하라고 합니다.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늘 이 사순 시기는 무언가 전혀 다른 두 개의 다른 시간이 겹쳐 있는 것만 같았습니다.
양가감정(兩價感情)이라는 표현이 있지요? 바로 이 시기에 떠오르는 감정이 그렇습니다. 설레면서 좀처럼 가만히 있지 못하는 기쁨이 봄을 대하는 마음과 감정이라면, 침착하게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가 예수님 생애와 나 자신, 그리고 세상의 부조리를 돌아보고, 슬퍼하고 애통해하면서, 개인적으로 새로운 삶을 다짐하고 사회적으로 연대를 다짐하는 것이 사순 시기를 대하는 마음과 감정, 자세입니다. 그래서 무언가 전혀 다른 시간이 공존하는 이 시기에 가만히 주님의 수난을 묵상하려 해도, 봄의 기운이 함께 밀려들어와 좀처럼 진정이 되질 않습니다.
그런데 양가감정은 봄과 사순 시기라는 두 개의 달라 보이는 시간의 충돌에서만 느낄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이 시기의 주제 가운데 하나인 죄와 악을 생각해 보는 데에도 양가감정이 듭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한테 죄와 악이라는 주제를 생각해 보는 것부터가 쉽지 않습니다. 생각한다고 해도, 그냥 대충 어떤 개념 정도로만 생각하게 됩니다. 이런 깊고 무거운 주제는 괜히 피하고 싶기도 하고, 또 생각하자니 해야 할 일, 보아야 할 것, 알아야 할 것이 너무나 많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보다 보아야 할 것, 알아야 할 것이 훨씬 적었던 시대에는 죄와 악이라는 주제가 피부로 와 닿는 실체였습니다. 실제로 전쟁과 질병이 주위에서 끊이지 않았기 때문에 더 그랬을 겁니다.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Johann Sebastian Bach)의 작품 중에 ‘Widerstehe doch der Sünde’(죄악을 끊어버려라)라는 칸타타가 있습니다. 이 작품은 바로 이 죄악을 어떤 추상적인 관념이 아니라, 눈앞에서 직접 마주하는 실체로 봅니다.
먼저 이 작품은 바흐 칸타타 가운데 ‘오쿨리’(Oculi) 주일을 위한 곡이라고 합니다. 바흐는 사순 시기를 위해서는 단 세 곡의 칸타타만 작곡했는데, 그 가운데 한 곡은 주님 수난 성지 주일을 위한 곡이고, 다른 한 곡은 유실되어 텍스트만 남은 상태입니다. 그럼 ‘오쿨리’ 주일은 도대체 어떤 주일일까요. 혹시 지난 주일 미사 입당송 텍스트를 주의 깊게 보신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제 발을 그물에서 빼내 주시리니, 제 눈은 언제나 주님을 바라보나이다.” 라틴어로 “Oculi mei semper ad Dominum, quia ipse evellet de laqueo pedes meos”라는 그레고리오 성가 입당송이 사순 제3주일 미사를 시작하는 첫 말씀이기 때문에, 사순 제3주일을 ‘오쿨리’ 주일이라고 합니다.
교회는 초기부터 부활 성야에 세례를 거행했습니다. 그에 앞서 예비 신자들은 자신이 그리스도의 말씀을 따라 살기에 적합한지 몇 단계의 준비와 시험을 거쳐야 했습니다. 지난 주 「매일미사」책 맨 앞머리에 적혀있는 문구를 주의 깊게 보신 분들이 계실 겁니다. ‘파스카 성야에 그리스도교 입문 성사들을 받을 예비 신자들을 위한 세례 준비로 첫째 수련식을 이 주일에 거행한다.’ 이날, 사순 제3주일에 예비신자들은 첫째 수련식에 참여하면서 신앙에 대해서, 그리고 앞으로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갈 삶의 자세를 더 자세히 배우고,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이들을 위해 기도해주고 ‘구마 기도’(Exorcismus)를 합니다. 바로 이 구마 기도가 이 날 주제이기도 합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에는 이 날 예수님께서 벙어리 마귀를 쫓아내신 루카복음 11,14-28을 낭독하고, 독서로는 “빛의 자녀답게 살아가십시오”라는 주제의 에페소서 5,1-9를 낭독했습니다. 여기에 입당송은 우리를 낫게 하시는 하느님, 우리 안의 악을 쫓아내시는 하느님만을 바라보리라는 의미에서 ‘오쿨리’를 노래했습니다.
바흐의 칸타타 ‘Widerstehe doch der Sünde’가 정확하게 어느 주일을 위한 곡인지는 아직 의견이 분분합니다. 그렇다고 해도 이 곡의 가사를 지은 시인 게오르크 크리스티안 렘스(Georg Christian Lehms)는 이 시를 ‘오쿨리’ 주일을 위한 시라고 지정했습니다. 어쨌든 바흐 작품 가운데서도 알토만을 위해 작곡한 칸타타가 네 곡밖에 없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이 곡이라는 건, 이 곡 자체가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는 게 분명히 보여줍니다.
그런 만큼 음악도 참 흔치않은 시작을 합니다. 음악 표현으로는 소위 ‘잘못된’ 화성으로 시작한다고 하는데요, 베이스의 ‘도’와 ‘솔시레파’ 화음이 서로 충돌하면서 시작합니다. 베이스음과 비올라가 충돌하고, 바이올린은 음이 계속 마찰을 일으키는데, 그러면서 한 음씩 위로 올라갑니다. 바이올린이 한 음씩 위로 올라가면서도 서로 마찰을 일으키는 걸 두고, 유명한 지휘자들은 해석을 전혀 다르게 합니다. 죄악이 끊임없이, 점점 집요하게 나를 잡아 끌면서 유혹하는 모습으로 해석할 수도 있고, 반대로 이렇게 나를 잡아끄는 죄악의 유혹을 내가 한 음 위에서 극복하고 이겨내는 모습으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다양한 음반들을 들어보시면, 베이스와 바이올린의 충돌을 심장의 쿵쾅거림으로 묘사하는 지휘자도 있고, 바이올린의 마찰을 집요하게 표현하는 지휘자도 있고, 한 음씩 위로 올라가는 모습을 극적으로 표현하는 지휘자도 있습니다. 또 어떤 분은 한 음씩 충돌하면서 올라가는 모습에서 페르골레시(Pergolesi)의 ‘스타밧 마테르’(Stabat mater)를 떠올릴 수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죄악을 끊어버려라. 그렇지 아니하면, 그 죄의 독이 너를 엄습하리니. 사탄이 너를 현혹하게 하지 말라. 이는 하느님의 영광을 모욕하는 것이며, 죽음에 이르는 저주에 빠지리니”(1번 아리아).
세 번째 곡이자 마지막 아리아는 뱀의 유혹을 표현합니다. 이런 묘사는 바흐의 오르간 작품 “Durch Adams Fall ist ganz verderbt”(아담의 죄로 인간 본성은 모두 훼손되었네)에도 나오는데, 마치 뱀이 기어가듯 반음씩 움직입니다. 여기에서도 뱀으로 상징되는 악이 죄를 짓도록 유혹해서 끌고 내려갑니다.
“죄를 저지르는 자, 그는 악마로부터 온 자이니, 그가 악을 퍼뜨렸기 때문이로다. 하지만 올바른 기도로 이 비천한 굴레에 맞선다면, 즉시 그 속박에서 벗어나리라”(3번 아리아).
사순 시기 중반을 보내는 이 때에 바흐의 칸타타를 함께 들으면서 내 안에 나누어진 마음을 바로하고 주님을 바라보며, 기쁨으로 향하는 때가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