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
2020년, 코로나19라는 감염병이 전 세계를 휩쓸면서 첫 해에는 줌(Zoom)을 비롯한 화상 관련 프로그램들이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참 대단한 게, 이 프로그램들을 그저 단순한 화상 회의만이 아니라 수업 및 강좌, 독서 모임, 비대면 모임, 심지어는 술자리까지 확장해서 활용했다는 겁니다. 그런데 지난해에는 영상 없는 음성 기반 플랫폼들이 유행하게 되었습니다. 먼저 클럽하우스(Clubhouse)가, 얼마 지나지 않아 음(mm)이 목소리로 이야기 나누는 것을 그리워하는 이들을 엮어주었습니다. 물론 학교 수업 때문에라도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영상 플랫폼에 비해 음성 플랫폼은 아직 비주류에 머무르고 있긴 합니다만, 그래도 전체적으로 보면 플랫폼 참여자들이 지역과 시간을 초월해서 서로 이야기를 나눈다는 면에서는 더 자발적인 분위기입니다. 저도 지난여름 두어 달 정도 열심히 활동한 적이 있습니다. 이 음성 플랫폼에서 아주 기가 막힌 재즈 피아노 즉흥연주를 선보이셨던 분이 음악가 팀을 모아 크루를 결성하셨는데, 모자란 실력임에도 불구하고 저 역시 여기에서 파이프 오르간 연주를 일주일에 두 번씩 선보였습니다. 저를 초대하셨던 재즈 피아니스트께서 한번은 자기가 열었던 방에서 사회를 보시면서 저를 대대적으로 소개해 주셨는데, 그때 저의 연주를 듣고 나서 하시는 말씀이 "왜관수도원에 한 번도 가 본적은 없지만 파이프 오르간 소리가 어떤 성당인지, 공간의 울림에 대한 상상까지 하게 만든다"고 하셨습니다.
오르가니스트는 그저 손가락만 빨리 잘 돌아가고, 눈앞에 있는 악보를 하나도 틀리지 않고 쳐내고 하는 그런 기계적인 연주자가 아닙니다. 파이프 오르간은 살아 숨 쉬는 악기라고들 하는데, 연주자는 때로 수천 개의 파이프들이 살아서 숨을 쉬고 노래를 부를 수 있도록 공간, 울림, 음의 색깔, 파이프가 숨을 내뱉고 들이마시는 찰나의 미묘한 변화를 알아야 합니다. 또 손끝으로 느껴지는 무게, 그리고 나에게로 돌아오는 진동까지 모두 민감하게 느껴야 합니다.
레겐스부르크 교회음악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서 집중적으로 1년 동안 레슨을 받고, 본래 오르가니스트도 아닌데 입학곡으로 치기 어렵다는 곡을 그냥 통째로 외워 가서 칭찬을 받으며 입학했습니다. 사실 외워서 치지 않으면 도저히 악보를 보면서 쳐낼 자신이 없기 때문이긴 했지만, 그때 조금 의기양양하긴 했습니다. 물론 잘 친 게 아니라 그저 간신히 쳐 낸 수준이긴 했지만, 그래도 '이제 나도 제대로 어렵고 멋진 곡을 배우리라'는 나름 큰 뜻을 품었습니다.
그런데 입학하고 한 학기를 그렇게 헛바람 들어 지내다가, 저를 가르쳐 주시던 할아버지 선생님이 은퇴하시고 저보다 어린 친구에게 배우게 되었습니다. 첫 날 “네가 쳤던 곡들 다 쳐 봐”해서 멋지게 쳤는데, 1학년 나머지 한 학기 동안 했던 건 손가락과 손등 근육 힘 기르기, 손가락 끝으로 파이프 오르간의 바람이 들어가고 나오는 것을 제대로 느끼기, 자세 제대로 잡기, 소리 제대로 듣기, 박자 감각 익히기 등이었습니다.
그때는 정말 자존심이 와장창 무너졌는데, 나중에 보니 음악을 잘 들으면서 칠 수 있게 이끌어 준 고마운 방법들이었습니다. 물론 레퍼토리를 엄청 늘려주는 선생님을 둔 친구들이 여전히 부럽긴 하지만, 저는 많은 곡들을 사람들 앞에서 잘 쳐내는 데에 재능이 별로 없으니, 불 꺼진 조용한 성당에서 한 곡 한 곡 천천히 공부하고 '이 곡이 나한테 전해주는 게 뭘까' 고민하고, 또 그 소리를 들어보고 하는 데 만족하고 행복해 합니다.
마침 몇몇 분이 오르간이 왜 중요한지 잘 모르겠다고 하셨습니다. 아쉽게도 우리는 서양의 전례음악 풍토하고는 다른 문화에서 자라났습니다. ‘따라라~’ 하면서 시작하는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의 유명한 라단조 토카타를 모르시는 분들은 없지만, 그 외의 곡들은 계속 듣고 있으면 많이 지루합니다. 곡도 알아야 즐기는데, 안 들어봤고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독일에서 오르간 연주회를 하면 나이 지긋한 부부 관람객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이 분들도 마찬가지인 게, 가끔은 끌려온 게 아닐까 싶을 정도의 분들이 계십니다. 앉자마자 팔짱을 끼고 열심히 듣는 자세를 취하시다가, 첫 곡이 끝나기도 전에 고개를 끄덕이십니다. 그러면 옆에 앉은 짝꿍이 팔꿈치로 툭툭 치시는데... 그런가하면 또 어떤 분들은 저희보다도 오르간 음악을 잘 아시는 것 같은 분들도 있습니다. 유명하고 듣기 좋은 곡들이 아니라 학구적인 연주회인데도 선뜻 오셔서 즐기시고, 음악가가 아닌데도 미리 곡을 줄줄 꿰고 계셔서 '이 부분의 해석은 어땠다'라고 이야기를 나누시는 모습도 봤습니다.
자라온 환경과 오르간 음악을 즐기는 정도가 달라서 그럴 겁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그런 문화가 아니라서 오르간의 중요성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닙니다. 당장 본당에서 오르간 반주자들이 없으면 음을 잡기가 힘든 걸 모두가 압니다. 평일 새벽미사 오르간 반주자를 보유하고 있는 본당은 얼마나 행복한지요. 게다가 코로나19 상황에서 전례를 음악으로 장식하고 있는 마지막 버팀목이 바로 선창자들과 오르가니스트입니다.
제가 있던 곳에선 가끔 신부들이 자조 섞인 웃음을 지으면서 ‘사냥꾼 미사’를 거행하자고 합니다. 음악 없이 조용하게 빨리 거행하는 미사였습니다. 물론 신자 분들도 없고 우리끼리만 있어서 그렇긴 하지만, 그래도 정성 없이 해치우듯 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수도원은 전례가 풍성해서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요즈음 코로나19로 모두가 노래를 부를 수 없으니, 군데군데 빈 부분을 오르가니스트들이 채워 넣으시느라 고생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또 바로 여기에 전례 안에서 오르간의 역할이 잘 드러납니다. 코로나19 이전이든, 노래를 마음껏 못 부르는 지금이든 전례 안에서 오르간은 음악으로 군데군데 비어있는 곳을 채워줍니다. 전례 자체가 가지는 무궁무진한 상징들이 있기는 하지만, 상징을 귀와 피부로 또 마음으로 꽉꽉 채워서 받아들일 수 있게 도와주는 게 바로 전례 음악입니다. 그 가운데 이 전례 음악을 이끌어주고 보조하고 받쳐주면서 사람의 목청으로는 채울 수 없는 부분까지 채워주는 게 바로 오르간입니다.
그래서 지금 이 시대에 더 큰 역할을 해 주시는 각 본당 오르가니스트들께 응원을 보냅니다. 아울러 전례를 채워주고 풍부하게 해 주는 오르간 음악에 여러분들이 조금 더 관심을 가져주시기 바랍니다. 보통 본당 미사 전례 때 듣기는 힘들지만 멋진 곡들도 인터넷 세상에 많이 있으니 찾아서 들어주시고 또 본당의 반주자들, 반주자 새싹들이 멋진 곡들을 칠 수 있게 그분들을 많이 배려해 주셨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