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
조금 당황한 질문을 받았습니다. “묵상을 어떻게 해야 하지요?”
최근 가톨릭평화방송에서 저희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을 다룬 7편의 짧은 다큐멘터리들이 방영되었고, 유튜브에도 올라가 있습니다. 거기에서 인터뷰를 했던 형제들은 정말로 진솔하면서도 깊은 이야기들을 전해주었는데, 형제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정말 부끄러웠습니다. ‘아, 이 형제들은 정말로 묵상을 많이 하는구나’ 하면서 말이죠. 사실 저는 생각도 얕고, 묵상도 제대로 할 줄 모릅니다. 나이를 조금 먹으니 이젠 잘 그러지 않지만, 어린 수사였던 때에는 묵상 시간에, 그리고 전례 때에 하루도 졸지 않은 적이 없을 정도로 기도에 제대로 맛을 들여본 적이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묵상에 대한 질문을 받으면, ‘내가 제대로 하지도 못하면서 남에게 말할 처지나 될까’하는 부끄러움이 밀려듭니다.
그런데 이런 비슷한 이야기를 한 십여 년 전에 한 적이 있습니다. 돌아가시기까지 오랫동안 정말로 고운 목소리로 수도원에서 그레고리오 성가를 부르고 지휘하셨던 저의 전임자 고(故) 장 휘 엘마르 신부님과 했던 이야기였습니다. 엘마르 신부님은 독일 뮌스터슈바르작 수도원 출신으로, 유명한 안셀름 그륀 신부님을 비롯해 수도원을 멋지게 부흥시켰던 세대의 맏이 그룹에 속하셨습니다. 수련수사 시절에 하루는 기도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너무 답답해서, 존경하던 신부님을 찾아가서 고민을 털어놓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신부님은 아주 짧지만 엘마르 신부님의 인생을 좌우한 충고를 해 주셨다고 합니다. “너 노래 잘 하잖아. 그레고리오 성가 잘 부르잖아. 노래로 기도해.”
독일 레겐스부르크 교회음악 대학교에 합격하고, 엘마르 신부님과 자주 영상 통화를 했습니다. 제가 음악 공부하는 것을 제일 반겨주셨던 분이고, 신부님 사제서품 50주년에 제가 종신서원을 하고 사제서품을 받았다고, 아들 같다면서 독일에 본국 휴가를 오셨을 때에도 여기저기 데리고 다니시면서 제 자랑을 하신 분이었습니다. 게다가 저한테는 그레고리오 성가를 가르쳐 주신 스승이 되시니, 영상 통화를 하면서 이것저것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나누곤 했습니다. 신부님은 "들어오면 같이 노래하자", "내가 좋아하는 바흐의 'Ich habe genug' 반주 좀 해달라"는 등의 부탁을 하셨습니다.
이후 짧은 성탄 방학 때에 교회음악 대학교 학장이 왜관에서 오르간 연주회를 할 기회가 있어 함께 귀국하기로 했었는데, 엘마르 신부님이 입원을 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영상 통화를 했는데 신부님이 그러셨습니다. “지금 여기에 누워서 할 게 없는데, 그동안 불렀던 그레고리오 성가는 내가 다 외우잖아. 하루 종일 그걸 부르면서 묵상하고 있어. 얼마나 좋은지 몰라.”
엘마르 신부님의 이 말씀은 제 기도의 주제가 되었습니다. 엘마르 신부님의 말씀대로 노래를 불러보고, 또 불러봅니다.
최근 그레고리오 성가도 사본 연구가 많이 발전하면서 '1200년 전 즈음에는 어떻게 불렀을까'에 대한 궁금증이 많이 풀렸습니다. 당시에는 책이 무척이나 귀했고 요즈음같이 많은 것을 보고 많은 정보를 받아들이던 때가 아니었습니다. 아주 많이 단순한 삶들을 살았지요. 그래서 지금으로서는 생각하기도 어렵지만 많은 수도자들이 성경을, 적어도 시편을 줄줄 외웠다고 합니다. 그러니 특히나 그레고리오 성가 가사로 사용되는 성경 말씀, 특히 시편은 어땠을까를 상상하게 됩니다. 실제로 최근 그레고리오 성가 학자들은 그레고리오 성가가 만들어지던 때가 교부들이 살던 시대와 아주 가까운 점에 착안해서, 그레고리오 성가에 교부들의 성경 해석이 담겨있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레고리오 성가 멜로디도 모든 게 다 새로운 게 아니라서, 어떤 멜로디들은 서로 짜깁기된 것도 있고 또 어떤 멜로디들은 비슷한 축제일에만 등장하는 것도 있습니다. 또 어떤 멜로디는 성경 말씀 중에 아주 특정한 말씀에만 등장합니다. 그래서 이런 부분들을 살펴보면서, 예를 들어 '그레고리오 성가가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의 시편 해석하고도 연결이 된다, 베다 성인의 말씀하고도 연결이 된다'는 식으로 많이 연구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과대 해석이라고요? 아닙니다.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성경을 줄줄 외웠던 수도자들은 영적 독서로 교부들 말씀도 많이 읽었거든요. 그래서 교부들이 말씀한 어떤 내용들이 멜로디로 표현된 부분들이 분명히 있습니다. 심지어는 성경 말씀을 가사로 만들면서, 성경 말씀을 토씨 하나 고치지 않고 그대로 싣는 게 아니라 교부 해석대로 가사를 살짝살짝 바꾸기까지 하거든요. 그래서 오히려 반대로 베르나르도 성인은 그레고리오 성가를 주제로 강론까지 합니다.
물론 노래 하나 부르는 데 이렇게까지 알아본다는 건 무척이나 힘이 듭니다. 음악은 물론이고, 라틴어도 알아야 하고(심지어 시대가 바뀌면서 라틴어 악센트가 바뀐 것도 몇 개 있습니다), 성경과 교부, 철학도 알아야 하니까요. 그래서 평소에는 엘마르 신부님 말씀대로 그냥 부릅니다. 부르면 마음에 들어오는 말씀과 멜로디가 있습니다. 그 부분을 계속 부르면서 묵상을 하게 되는데요, 오르간 연주를 맡게 되면, 이 부분을 주제로 해서 입당 즉흥 연주를 해 봅니다.
실제로 최근 제가 번역하고 있는 책에서 엘마르 신부님께 조언해 주셨던 아우구스틴 하너 신부님에 대해 안셀름 그륀 신부님은 이렇게 회상합니다. “신부님은 수도생활 첫 한 해 내내 미사 입당송만을 가지고 묵상했다고 합니다. 그다음 한 해는 알렐루야를, 어떤 해에는 봉헌송을, 또 어떤 해에는 영성체송을 묵상했습니다. 이때 신부님은 가사만이 아니라 멜로디도 함께 묵상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해서 그레고리오 성가의 신비가 신부님께 분명하게 드러났습니다. 이후에 신부님이 오르간으로 그레고리오 성가 전주곡을 연주할 때면, 사람들은 신부님이 이 노래를 자기것으로 삼으셨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습니다. 신부님은 그레고리오 성가 가사 안에 숨어 있는 하느님 체험을 사람들이 귀로 알아들을 수 있게 만들어 주신 겁니다”(안셀름 그륀, 이장규 역, 힘들 때 이런 음악 어때요?, 왜관: 분도출판사, 9쪽).
노래를 불러봅니다. 저는 그레고리오 성가를 주로 부르지만, 어떤 성가도 좋습니다. 지난 1월 15일 평화방송 유튜브를 통해 생중계한 저희 수도원 종신서원식을 보면서, 종신서원을 하신 수사님이 감사 인사 때 "함께 불렀으면 좋겠다"고 한 가톨릭성가 1번을 들으면서 참 감명 깊었습니다. 어떤 마음인지, 어떤 삶인지 노래로 들을 수 있었거든요. 성가만이 아니라 어떤 흥얼거림이나 리듬도 좋습니다. 어떤 날은 아무 것도 못 얻을지 몰라도 마음과 아주 가까운 음악이잖아요. 우리에게서 나온 노래, 멜로디, 리듬, 악기 연주 등 모든 음악이 하느님을 향해 있다면, 어느 날 나와 내 노래를 듣는 분들이 모두 하느님께로부터 위안을, 깨달음을, 기쁨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희망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