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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파담 Oct 02. 2024

2_18. 메세타의 진수가 여기였구나

18일째_힘든 모스텔라레스 고개와 프로미스타

성 안톤 성문앞을 지나고 있다. 여기를 지나면 카스트로헤리스로 들어간다.

오늘은 프로미스타까지 갈 예정이다.

글을 쓰면서 나를 감동시켰던 그 길이 새삼 떠오른다.

나에게는 살아 있는 기쁨을 준 날이기도 하다.

이 길에서는 먼저 안톤 성문(Arco de San Anton)을 만난다.

안톤 수도원의 유적을 볼 수 있는 곳이다. 11세기에 프랑스에서 시작한 안토니네 기사단의 구호시설로 사용됐던 유적이라고 한다.

카스티야 왕국의 페드로 1세때는 궁전과 정원으로 사용됐다가, 14세기에 다시 재건축돼 구호소로 이용했던 장소다.

그러다 18세기에 완전 폐쇄된 후 현재까지 방치된 건물이다.

아침 해가 떴다. 장 회장님과 나란히 서서 애니메이션 진격의 거인 흉내를 냈다.

한국인들은 어제 머문 온타나스보다 여기 카스트로헤리스까지 오는 경우가 많다.

그 이유는 여기에 한국인이 운영하는 호스텔이 있기 때문이다.

이 마을을 지날 때 잠시 정보를 검색해 보니 한국인들에게 유명한 곳이었다.

미리 알았더라면 온타나스에서 2시간 더 와서 이 곳에서 쉬었을텐데 아쉬움이 남는다.

이 마을에서는 조심해야 할 일도 있다.

정보 검색을 통해 주의해야 할 일을 알고 있었기에 나는 별다른 문제가 없다.

이 마을에는 성요한 성당(Iglesia de San Juan)이 있는데, 내부에 들어가면 스템프(세요)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스템프(세요)가 곧 돈이다.

보통은 자발적 기부를 요청하지만, 이 마을 성당은 5유로를 요구한다고 한다.

스페인 사람들이 써 놓은 리뷰에는 무례하고, 돈을 요구하고, 기분 나쁘다는 내용이 가득하다.

내가 본 정보를 장 회장님과 공유했다.

외국말을 못 알아듣는다는 것이 순례길에서 경우에는 장점으로 다가오는 경우도 있다.

반면 잘못 대처하면 위험한 순간도 많다. 

순례를 마치고 마드리드에서 관광할 때의 일이다.

라리가 축구 클럽 레알 마드리드의 홈구장인 에스타디오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경기장에 갔을 때의 일이다.

지하철 10호선에서 내려 경기장으로 올라오자, 4명의 젊은 외국인 여성이 서명서를 받고 있었다.

나는 단번에 ‘불우이웃돕기 서명판’임을 직감했다.

유럽 여행 중에 꼭 목격되는 장면으로, 서명을 할 경우 강제적으로 돈을 요구하기 때문에 ‘주의사항’으로 알려진 내용이다. 그런데 그 사람들 앞으로 장 회장님이 다가가신다.

웃는 얼굴로 서명판을 내미니 무엇인지 모르고 곰곰이 쳐다보셨다.

“회장님? 거기에 서명하면 하루 종일 저 사람들한테 끌려 다니실 거에요. 돈 많이 내실거면 싸인하시고, 아니면 무시하세요.”

유럽 여행 때 제일 걱정하는 것은 소매치기다.

그리고 두 번째는 선심인 척 다가오는 사람들이다.

이들 대부분은 ‘집시’로 난민일 가능성이 높다.

네이버 ‘카미노친구들’ 카페에서도 순례길에 서명판이 등장했다고 떠들썩했다.

등장 장소는 산티아고 콤포스텔라 들어가기 전 장소인 ‘몬테 도 고조(Monte do gozo)’였다.

순례길을 걸으면서 주의사항이 또 늘어났다.

‘카미노친구들’ 정보는 무척 빠르다.

특히 베드버그와 관련된 정보는 삽시간에 인기글로 올라온다.

모스텔라레스 고개에서 바라 본 풍경. 우리가 걸어온 길이다. 앞에 언덕 위에 카스트로헤리스성이 보이고, 그 아래로 마을이 보인다.
힘들게 올라 온 만큼 기쁨도 크다. 나는 메세파 평원이 좋다. 끝없는 밀밭길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멋진 풍경도 곳곳에 숨어 있다.

카스트로헤리스를 지나 모스텔라레스 고개(Alto Mostelares)에 올랐다.

이 고개에 오르는 것은 쉽지 않다.

고개에 올라오는 순례자들 모두 하나같이 ‘헥헥’ 댄다.

그러나 이곳에 올라 걸어온 길을 뒤돌아보면 힘들었던 순간이 엄청난 기쁨으로 바뀌게 된다.

드넓은 평야와 간간히 보이는 언덕들.

세상에 이렇게 넓은 공간이 또 있을까!

이렇게 아름다운 광경을 보여주신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순례길에서는 매번 고통과 행복을 동시에 받는구나.’ 

이 고개를 올라서부터 프로미스타까지는 카스티야 운하길을 따라 걷게 된다.

카스티야 운하는 18세기에 스페인 최초의 대표적 토목공사 현장이다.

팔렌시아와 부르고스, 바야돌리드 지방을 가로지르는 200km의 수로가 이어져 있다.

순례길은 수로 옆 길을 따라 이어져 있고, 이 길을 걷다 보면 프로미스타에 들어서게 된다. 

이 길을 가는 동안에는 두 가지 일이 기억난다.

첫째는 헝사리 의사인 ‘그레이타’와의 만남이다.

수로길을 걷고 있던 도중 그레이타가 갑자기 우리를 멈춰 세웠다. 이유는 장 회장님의 배낭 때문이다.

장 회장님은 배낭 허리벨트를 하지 않고 걸으신다.

나의 경우 그렇게 풀어 놓고 걸으면 몸과 배낭이 밀착되지 않아 더 힘들었다.

순례길 초반, 장 회장님께 왜 허리벨트를 하지 않고 걷는지 여쭤본 적이 있다.

“내가 엉덩이 쪽이 아파. 벨트를 착용하면 오히려 더 몸에 부담이 크게 와.”

상황이 그러니 어쩔 수 없다.

그레이타는 장 회장님이 풀어 놓고 가는 허리 벨트와 배낭 조절 어깨끈이 맞지 않다며 회장님의 배낭을 일일이 직접 고쳐줬다.

그 후 그레이타가 알려준 데로 배낭을 메기 시작했다.

허리 벨트를 조이고 걷기 시작하신 것이다.

지금은 배낭 메는 것이 어떠냐는 나의 물음에 이제야 배낭 메는 법을 알겠다며 미소 짓는 우리 회장님.

“역시 허리벨트를 메는 것이 편하네. 지금까지 왜 몰랐을까?”

이전에 내가 허리벨트에 대해 말했던 적이 있는데, 그레이타의 말이 효과를 발휘한다.

그레이타는 헝가리에서 의사라는 직업을 갖고 있다.

'의사가 하는 말이라 다른가!'

"장 회장 잘 챙겨!"

문규현 신부님이 출발 전부터 나에게 당부했던 말이다.

나는 사람을 잘 챙길 줄 모른다. 가끔은 나만 아는 사람으로 비춰지기도 한다.

내 나름데로 신경써주는 부분인데, 그것이 사양의 표현으로 돌아오면 그 다음부터는 말하기 무척 꺼려진다.

“윤 국장! 난 몰라도 돼. 그냥 따라다니기만 할게.”

장 회장님은 나를 편하게 해 준다고 하신 말씀이지만, 따라 다닌다는 말 자체가 나에게는 엄청 부담되는 말이다.

지금 나는 순례길 안에서 상당 부분에서 장 회장님에 대한 신경 쓰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나는 가이드가 아니야. 그레이타를 이제라도 만나서 다행이야.’

스스로를 다독이며, 장 회장님도 나도 한 명의 순례자로 자신의 길을 걷고 있다고 되뇌이고 있다.

프로미스타 카스티야 운하. 이 곳은 프로미스타 수로다.

둘째는 스틱이다.

순례길을 걸으면서 지팡이 역할을 하는 스틱은 중요한 부분이다.

당시 우리는 운하 수문 근처에서 휴식을 취했었다.

다시 프로미스타를 향해 걷기 시작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스틱을 놓고 온 것을 알았다.

스틱은 한 쌍으로 구성되는데, 이미 한 개는 고장 난 상태다.

멀쩡한 다른 한 개를 쉼터에 두고 온 것이다.

여기서 나의 순례길 제 4법칙이 만들어졌다.

‘지나온 길은 다시 갈 수 없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한번 길을 되돌아가는 것은 정말 하기 싫은 일이다.

그런데,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되돌아가야 할 때도 생긴다.

그때 되돌리는 발걸음의 무게는 땅에 닿을 듯 무겁다.

힘든 시간을 보내고, 프로미스타에 도착했다. 

프로미스타에 도착해서 곧장 알베르게를 찾아갔다.

이곳에는 순례자들만 있고 관리자가 없다.

얘기를 들어보니, 관리자가 중요한 일이 있어서 출타중이라고 한다.

다른 순례자들이 그냥 아무 침대나 잡으라고 해서 2층으로 올라가 창가 침대에 짐을 풀었다.

우리가 들어가니 장 회장님과 같은 나이의 서울에서 오신 순례자분이 계셨다.

그분은 우리가 내일 먹을거리를 준비하기 위해 가는 슈퍼에 함께 따라가신다고 한다.

물건을 구입하고 계산하려는 순간 황당한 일이 생겼다.

장 회장님이 귤 한 묶음 12개짜리를 사신 것이다.

이유를 여쭤보니 한국에서 오신 그 분이 귤 3개가 필요하다고 해서 샀다고 한다.

그러고는 귤 3개의 값을 따로 주신다고 한다.

또 자신이 필요한 물품 가운데 요거트가 있으니 이것도 사라고 한다.

자신은 한 개만 필요하기 때문에 한 개 값은 따로 우리한테 준다고 말했다.

결국 몹쓸 내 성격이 또 터져버렸다. 나의 상한 기분을 느껴보라고 바로 말을 던졌다.

“선생님? 선생님께서 필요한 물건은 선생님이 사셔야죠. 그리고 우리에게 이것 필요하냐고 물어주시면 어떨까요? 만일 그 물건이 우리가 필요한 것이면 저희가 값을 지불할께요.”

순례길에 관련해서도 여기는 어떠니, 저기는 어떠니 계속 말씀하시는데 도통 왜 저런말을 하는지 이해를 못하겠다.

먼저 물어온 얘기는 몇km가 적당한 거리인지, 숙박장소 예약을 미리 해서 동키서비스(딜리버리서비스)를 어떻게 해야 하느니 하시며 준비해 오신 자료들을 설명해 주신다.

“회장님? 난 저분과 같이 못있겠어요. 짜증이 올라와요. 혼자 알면 되는 얘기를 왜 자꾸 얘기하는 건지. 회장님하고 온 것이 나에게 축복같아요. 회장님은 저분처럼 말하지는 않거든요.”

“나도 저 사람 좀 그래.  나이대가 되면 자기만 알아. 딱 저 사람이 그 모습이야.”

나이를 먹어갈수록 주의해야 할 사항이 늘어났다. 

프로미스타 알베르게는 예술가가 운영하는 숙소였다.

그래서 그런지 1층 로비부터 사무실, 리셉션장까지 그의 작품이 걸려있다.

오늘은 예술가의 숙소에서 잠을 잔다.

이날 미국 순례자의 저녁 초청도 있었다.

낮에 만났던 그레이타도 우리 숙소에 함께 머물렀다.

장 회장님께 ‘오빠’라고 했던 네덜란드 여성도 이곳에서 다시 만났다.

로그로뇨, 벨로라도 알베르게에서 함께 잤던 독일, 프랑스 연합청년 4인방도 들어왔다.

매일매일 많은 일이 일어난다.

산 마르틴 성당(Iglesia de San Martin de Fromista). 성 마르틴을 우리말로 어떻게 부르는지 몰라 그냥 적는다.

여장을 풀고 프로미스타 마을 산책 중에는 어제 온타나스에서 만났던 한국분과 거리를 걸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당시 지나가던 스페인분께 나무 이름을 물었더니, 나무 이름을 알려주셨다.

나무끼리 손잡는 신기한 나무다. 나무 이름이 너무 어려웠다. 지금 기억하려니 완전 모르겠다.

오늘 프로미스타의 밤도 이렇게 흘러간다.

순례길을 걸으면서 가장 많이 보는 나무다. 나무들이 서로 손을 잡고 있다. 현지인한테 나무이름을 물었을때 다섯글자로 말했었다. 굉장히 어려운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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