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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YY May 15. 2020

[예능] 불타는 청춘

'불탄다'의 또 다른 의미

[예능]

9. 불타는 청춘

-'불탄다'의 또 다른 의미

SBS '불타는 청춘'

정의하기 어려운 '불타는 청춘'

'불타는 청춘'은 설명하기 어려운 프로그램이다.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젊지도, 지금 핫하지도 않은 스타들이 모여 프로그램을 이끈다. 자연스러운 관찰 예능이다 보니 자극적인 장면도 없다. 그저 중년 스타들이 모여 여행을 떠날 뿐이다.


기획의도도 간단하다. '불타는 청춘' 공식 홈페이지는 "아직도 마음은 불타고 있는 싱글 중년들이 여행을 떠나다! 당신이 잊고 있던 청춘을 찾아드립니다!"라고 기획의도를 설명한다. 여느 여행 프로그램과 다를 바 없다. '싱글'이라는 표현이 등장하지만 또 연애 예능은 아니다. 프로그램이 흥행하려면 유명 MC, 핫한 게스트, 자극적인 진행 중 하나라도 갖춰야 한다. 이 중 아무것도 없는 '불타는 청춘'이다. 그런데도 '불타는 청춘'은 약 6%의 시청률을 유지하며 사랑 받고 있다. 도대체 어떤 매력이 시청자들을 사로잡은 걸까


자극적이지 않다, 힐링 예능

여행 프로그램답게 잔잔한 장면의 연속이다. 여느 예능처럼 흥미로운 장면은 유발하지만 그마저도 소소하다. 중년이라 그런가 힘을 빼고 임할 줄 안다. 농익은 농담이 들리긴 하지만 선을 넘지는 않는다. 기껏해야 최성국의 "난 여자 꼬시는 것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어" 정도다. 시대착오적인 발언이기는 크게 거슬리지는 않는다(지금의 최성국이 여자를 그렇게 꼬시지 못할 것 같아서 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여행 프로그램이라고 해서 그렇게까지 인기를 끌 것인가. 사실 더 잔잔하고 더 힐링되는 프로그램은 많다. '불타는 청춘'의 더 큰 인기 요소는 다른 데 있다.


1인 가구들의 공감

작년 쯤 친구가 같이 살자고 했다. 내가 친오빠와 함께 사는 걸 알면서도 물어본 걸 보면 정말 혼자 살기 싫었나보다 싶다. 토요일에 자고가라고 초대해놓고 일요일이면 집에 가달라던, 자기 시간을 중요하게 생각하던 친구였다. 그런 친구가 같이 살자고 하다니. 10년 차 1인 가구의 외로움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친구가 같이 살자고 한 이유는 나도 알 것 같았다. 퇴근하고 누군가 만날 여유는 없는데 혼자 있고 싶지는 않은 심정. 편안한 누군가와 편하게 얘기하고 싶은 밤. 나도 느꼈고 친구도 느꼈고 또 다른 1인 가구도 느꼈을 감정이다.


'불타는 청춘'을 보면서 편안한 누군가가 생기고 편안한 공간에서 얘기하는 순간들이 부러웠다. 나이가 들 수록 생활반경이 정해지고 새롭게 시작하는 일이 적어진다. 그러다보니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도 쉽지 않다. 중년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그런 중년 스타들이 모여 여행을 떠났다. 여행 특성상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고 급속도로 친해진다. 함께 자다보니 편안한 자세로 대화를 나눈다. 불을 끄고 수다를 떨며 속마음을 털어놓기도 한다.


10명에 가까운 인원 역시 한 몫한다. 사람이 많다보니 어색할 틈이 없다. 모두가 한 마디씩 하다보면 시간이 훌쩍 가는 것. 어울리지 못할까 걱정할 일도 없다. 수많은 사람이 모이다보니 나랑 비슷한 사람이 꼭 한 명 씩은 껴있다.


SBS '불타는 청춘' 방송화면 캡쳐

최근 오승은이 자신의 속마음을 강문영과 나눈 것이 그 예다. 오승은은 이혼 후 홀로 아이를 키우며 싱글맘으로서의 고충을 터놨다. 오승은은 "아이가 '싸워도 아빠가 있는 게 좋아'라고 말했다. 너무 상처다"라며 눈물을 흘렸다. 강문영은 그런 오승은에게 "힘내라"라는 상투적인 조언 대신 "나도 이혼했잖아. 나는 두 번. 너보다 더해. 근데 그건 아이가 감당해야 할 일이야. 우리 죄지은 거 아니잖아"라며 경험에 기초한 조언을 했다. 오승은은 인터뷰에서 "힘든 일을 털어놓는 성격이 아니다. 그런데 문영 언니가 편하게 해주니까 말이 나오더라"라며 고마움을 표현했다. 오승은은 동갑내기 안혜경과 대화를 나누며 즐거워하기도 했다. 수많은 사람 중 나와 비슷한 사람과 비슷한 이야기를 나누며 안정감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이다.


'나 혼자 산다'의 다음 단계

MBC 예능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는 최근 비판 받는 일이 잦다. "'나 혼자 산다'가 아니라 '나 혼자 살면서 얘랑 논다' 같다"라는 반응이 있는 것. 혼자 사는 모습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 뭔가 하는 모습을 등장시켜 시청률을 끈다는 의미다.


그런데 혼자 사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혼자 살면서 얘랑 노는' 이유는 혼자이고 싶지 않아서다. 이들이 다른 사람과 함께 하는 모습이 담기는 이유는 혼자 살면서 누군가와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 반영되는 건 아닐까.


SBS '불타는 청춘' 방송화면 캡쳐

'불타는 청춘'은 혼자 사는 이들이 외로움과 공허함을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 지 방향을 제시한다. 함께 살지는 않지만 가끔 꽤 긴 시간을 함께 보내는, 그러면서 서로 의지하는 형태. 혼자 살지만 누군가와 함께 있다는 느낌을 주는 것이다. 내게 무슨 일이 생겼을 때 알아채주고 힘들 때 옆에 있어주는 정도의 거리를 주는 프로그램이다.


'불탄다'의 또 다른 의미

전주시에는 비혼 여성 공동체인 '비비'가 있다. 혼자 살며 처리하기 힘든 일들을 서로 돕고 정서적으로 안정이 되어주며 '느슨한 연대'를 지향하는 단체다. 1인 가구는 늘어나고 이들의 외로움도 커져간다. 그러나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제도는 많지 않다. '불타는 청춘'은 어쩌면 이런 느슨한 연대를 재미있게 풀어낸 것이 아닐까. 성인 남녀가 모였지만 긴장감 없이 편안한 시간을 보내는 '청춘들'. 이들에게 불타는 것은 뜨거운 것 모닥불이 아니라 잔잔한 온돌방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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