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
인생 참 무겁다. 짊어진 게 아무것도 없는 주제에 이런 말 하는 게 우스꽝스럽긴 하지만, 살아있는 목숨의 무게감이 나를 짓누르는 게 사실이다. ‘그냥’ 살아간다는 건 어떻게 하는 것일까? 나는 단지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데, 사용 가능한 방법은 ‘멍하게 흘려보내듯’ 또는 ‘필사적으로’ 둘 중 하나다. 전자는 쉽지만 해롭고, 후자는 어렵지만 이롭다. 그 사이 어딘가에 있을 ‘그냥’ 살아간다는 걸 나도 언젠가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오늘 정신과에 갔다 왔다. 택시 타고, 기차 타고, 지하철 타고, 환승하고, 에스컬레이터에 몸을 맡기고, 뚜벅뚜벅 걸어서…. ‘멍하게 흘려보내듯’ 갔다 왔다. 몸이 좋지 않다. 그저께 안정제를 먹지 않아 잠을 제대로 못 잔 것이 여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단 하루 잠을 잘 자지 못하였을 뿐인데 컨디션 회복 속도가 이렇게나 느릴 일인가.
그 탓인지 기차를 잘못 탔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나는 다음 역에서 내려서 다른 기차를 다시 타고 가야 했다. 기차 환승은 또 처음 해본다.
오늘 의사는 나에게 새로운 말을 꺼냈다. 그래서 평소보다 3분 정도 더 얘기했는데, 나는 눈물을 흘렸다. 나와서 수납할 때 보니 진료비가 평소보다 더 많이 나와 있었다. 눈물이 쏙 들어갔다.
약국에서 약을 받고 난 후 올리브영에 가서 향수 시향을 했다. 시향지에 뿌려서 맡는 냄새는 어딘가 불완전했고 미약했다. 그렇다고 내 몸에다 다 뿌려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괜찮은 향이 있었지만 특출나게 마음에 드는 향은 없었다. 오늘 집에서 뿌리고 나온 향수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 티셔츠의 앞뒤에 한 번씩 뿌리고 나왔는데, 여정 내내 향이 은은하게 올라와서 좋았다.
기차를 타기 전, 역 안에 있는 롯데리아에서 햄버거를 먹었다. 미리 대충 먹고, 집에 가서 얼른 자고 싶었다. 혼자 앉아서 햄버거를 먹고 있는데 전혀 즐겁지 않았다. 집 거실에 앉아 TV를 보면서 먹으면 좀 더 좋았을 텐데.
집에 와서 한바탕 잤다. 아직도 피곤하다. 가슴은 옥죄이는 느낌이고 머리는 멍하다. 그러는 와중에 나는 한 가지 소망을 품는다. 당장 오늘부터 ‘필사적으로’ 목숨을 부지하고 싶다는 소망을. 그러기 위해서 나는 잘 자야 했고, 약 먹는 것을 생략하지 않기로 했다. 깨어있는 시간을 늘릴 것이고, 화면보다 종이를 더 많이 볼 것이고, 운동을 할 것이고, 알바 일을 더 열심히 할 것이다. 제기랄, 내가 그럴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