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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오 Jul 10. 2024

두려운 사람들 (3)

기숙사로 향하는 이다정

  다정은 산을 오르기로 했다. 집으로 돌아가봤자 불편하기만 하다. 일요일엔 아버지가 집에서 쉬기 때문이다. 언니가 4년 내내 지냈던 집 근처 대학교의 기숙사가 마침맞게 또 산 중턱에 있다는 게 오히려 좋았다. 등산에 취미는 없었지만, 나중에 집에 돌아가서 등산을 했다는 좋은 핑계를 댈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다. 다정은 아까 대운동장에서의 남자가 가리킨 산을 바라보며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산으로 갈 수 있는 것으로 보이는 길이 도무지 보이지 않았다. 길은 세 갈래였고, 그중 둘은 건물들에 가려져 있었다. 현재 서 있는 곳과 기숙사 건물을 직선으로 이어봤을 때 가장 가까워 보이는 길은 왼쪽 길이었다. 그러나 그 길은 건물을 빙 둘러서 가야 하는 것처럼 보였다. 다음으로 중간 길은 여러 개의 건물이 가로막고 있었다. 반드시 건물 내부를 통과해야 할 것 같았는데 문이 열려있는지 알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오른쪽 길은 가파른 돌계단이었다. 계단은 산과 이어져 있어서 산으로 간다는 목적에는 가장 부합했지만 기숙사 건물과 가장 멀어 보였다. 이쪽 산이 저쪽 산과 이어져 있을까? 다정은 고민했지만 역시 알 수 없었다. 산속에서 길을 잃을 가능성도 있었다. 결국 다정은 왼쪽 길로 가기로 했다.



  다정의 예상대로 왼쪽 길은 건물을 빙 둘러서 가야 했다. 문제는 건물이 꽤 커서 많이 돌아야 했다는 것이다. 다정은 한참 전부터 땀을 흘렸다. 이 날씨에 길도 잘 모르면서 산에 오른다는 건 미친 짓일지도 몰랐다. 그래도 달리 갈 곳이 없었다. 또 이미 가기로 마음먹은 이상 쉽게 접어버리고 싶지도 않았다. 건물 외벽을 따라 계속해서 걸었다.


  그런데 갑작스레 길이 끝나버렸다. 힘들게 돌아온 건물 뒤쪽은 주차장이었고, 그 오른쪽은 또 다른 큰 건물로 가로막혀 있었다. 왼쪽으로는 캠퍼스 밖으로 나가는 샛길이 나 있었다. 이상하게 자꾸 왼쪽으로 내몰리는 느낌이었다. 샛길로 나가자 길게 뻗은 길이 보였다. 그 길은 언뜻 기숙사 건물을 향해있는 듯했지만, 이번엔 무성한 나무에 가려 확실하게 알 수 없었다. 그래도 그 길이 산을 따라서 경사지어 있다는 건 분명했다. 이리로 가면 기숙사로 갈 수 있겠다는 희망이 조금 보였다.


  오르막길을 오르자 나무에 둘러싸인 돌계단이 보였다. 다정은 묵묵히 계단을 올랐다. 계단의 끝에는 흙산의 초입이 기다리고 있었다. 저 멀리 기숙사 건물이 보였는데 아직 그곳과 이어진 분명한 길은 보이지 않았다. 다정은 지쳤다. 이쯤 되자 등산이라는 게 좋은 핑곗거리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님은 이 날씨에 무슨 등산이냐며 야단을 칠 게 분명했다. 땀에 푹 젖은 교복은 또 어떻고. 그러면 다정은 아무 말도 못하고 그저 방으로 들어갈 것이었다. 그런 딸의 모습에 부모님은 언성을 높일 게 뻔했다. 다정은 더욱더 위축되어 말을 꺼내지 못한다. 부모님이 답답해한다. 다정은 말을 못하는 스스로가 답답하다. 상황은 끔찍해진다. 왜 그 생각을 못 했을까? 다정은 자기 자신이 한심했다.



  다정은 우울해진 기분으로 멍하게 몇 걸음 내디디다 이내 바위에 주저앉았다. 왜인지 기숙사 건물은 가까워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멀어지는 듯했다. 운동화 안에서 두 발이 후끈했다. 셔츠는 땀에 젖어 엉겨 붙었고 머리카락도 엉망이었다. 이제 모든 게 후회됐다. 애초에 집에서 나오지 말걸, 그 남자가 산을 가리켰을 때 바로 포기할걸. 그 남자. 다정은 아까 대운동장에서 만났던 남자에 대해서 생각하기 시작했다. 남자는 키가 크지는 않았지만 호리호리하고 머리가 작아서 비율이 좋아 보였고, 머리카락은 짧았으며 얼굴은 잘생긴 편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못생긴 것도 아니었다. 살이 좀 더 쪘다면 잘생겨보일 수도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는 좀 어려 보였는데 전체적으로 풍기는 분위기는 고학년에 가까워 보였다. 그는 인기척도 없이 어느 순간 다정의 뒤에 서 있었다. 잠깐 뒤를 돌아봤을 땐 얼굴을 찡그리고 있었다. 그는 뒤에서 다정을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친구 하나 없는 불쌍한 녀석이라고 생각하진 않았을까? 아니면 방학인데도 교복을 입고 있다고 이상하게 생각했을까? 여러 안 좋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러나 다정은 이럴 때 자신이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알고 있었다. ‘사람들은 나에게 관심이 없다.’ 보잘것없는 자신에게 신경 쓰는 사람 같은 건 없을 것이라고 되뇌면 부정적인 생각들의 꼬리를 잘라낼 수 있었다. 그 남자도 분명 멍을 때리고 있었을 것이다. 운동장을 구경하고 있었을 것이다. 햇살을 받고 있었을 것이다. 태양? 다정은 그때 자신이 나무 그늘에 앉아있었다는 걸 떠올렸다. ‘남자는 어쩌면 그늘에 들어오고 싶었던 게 아닐까? 아니다. 볼라드. 내가 입구를 가로막고 있었구나! 그 남자는 내가 비킬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던 거구나. 그래놓고 대뜸 일어서서 한다는 말이 기숙사가 어디냐는 말이었구나.’ 다정은 너무나 부끄러워졌다. 자신의 생각이 사실과는 동떨어진 망상에 불과하다는 건 꿈에도 모른 채 말이다. 다정은 다시 일어나서 걷기 시작했다.



  이쯤에서 산행에 대한 서술은 마쳐야 하겠다. 다정은 끝내 기숙사에 도착하지 못했다. 그녀는 완전히 길을 잘못 들었다. 정답은 오른쪽 길이었다. 이쪽 산과 저쪽 산은 이어져 있었고, 기숙사로 가는 길과도 이어져 있었다. 중간 길로 가도 기숙사에는 닿을 수 있었다. 그러나 다정의 걱정대로 방학의 일요일에는 건물 문이 잠겨 있기 때문에 통과할 수 없었다. 다정은 땀에 푹 젖은 채, 당도할 수 없는 기숙사 건물만 넘어다봤다. 저 앞에 기숙사가 보였지만, 정작 그곳에서는 기숙사로 갈 수 있는 길이 없었다. 그 대신 다정은 뜻밖의 건물에 도달하게 된다. 그리고 그 건물 안에서 어떤 남자와 함께 있는 자신의 언니를 발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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